李船長
(李善長,
1314年
~
1390年
)은
中國
明나라
初期 政治家이자 開國功臣이다. 者는 百室(百室)이며, 奉養縣(鳳陽縣, 只今의
安徽省
詛呪視
딩위안縣
) 出身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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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4年
(怨 指定 14年),
朱元璋
이 蹶起하자, 그 麾下에 들어가 뛰어난 計略을 내놓아 朱元璋의 尊敬과 信任을 얻었으며
1368年
明나라가 建國되자, 招待
丞相
에 就任, 韓國共(韓國公)의 爵位를 받았으며, 最高의 開國功臣으로 權勢를 누렸다.
그러나
1380年
에 自身의 後任이자 後輩였던 左丞相
호유용
이
北元
및
日本
과 內通을 했다 하여 호유용을 비롯한 많은 功臣들이 大逆罪로 죽게 되자, 李船長 亦是 連坐의 疑惑이 있었으나 洪武帝는 李船長이 年老하며 最高의 開國功臣인 點을 들어 連坐의 可能性을 排除하고 이 일을 묻어두었다.
하지만
1390年
에 洪武帝는 호유용의 玉을 再搜査를 命하였는데 李船長의 조카
이존의
가 호유용과 몰래 密通한 것이 드러나자 自決했다. 以後 明나라의 宰相制는 完全히 廢止됐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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