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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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왕
右渠王
第3代 衛滿朝鮮 國王
戴冠式 우거왕(右渠王)
前任 (1代) 위만 (衛滿)
(2代)不明
後任 滅亡
父王 不明
在位 紀元前 2世紀 ~ 紀元前 108年
이름
우거(右渠)
異稱 位寓居(衛右渠)
別號 未詳
廟號 未詳
시호 未詳
年號 未詳
身上情報
出生日 紀元前 160年
出生地 未詳
死亡日 紀元前 108年
死亡地 未詳
王朝 古朝鮮 (古朝鮮)
家門 未詳
父親 不明
母親 不明
配偶者 不明
子女 張沆 (長降)
宗敎 未詳
墓所 未詳

우거왕 (右渠王, 紀元前 160年 ~ 紀元前 108年 , 在位: 不明 ~ 紀元前 108年) 또는 位寓居 (衛右渠)는 古朝鮮 의 마지막 王으로 위만 (衛滿)의 孫子이다.

生涯 [ 編輯 ]

朝鮮은 위만 臺에 數千里의 領土를 차지하고 東北과 半島에 位置한 勢力들과 한나라 사이의 中繼 貿易을 獨占하여 强力한 勢力을 構築하였다. 衛滿의 孫子 寓居는 春秋戰國 의 여러 避難民들을 많이 받아들이고 (辰) [1] 等 周邊 國家들이 漢나라와 直接 交涉하는 것을 막았다. 漢나라는 紀元前 109年 섭下(涉何)를 보내 寓居를 달래려 하였으나 寓居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2]

歸國하던 섭하는 成果가 없이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여 국경인 浿水 (浿水)에서 餞送을 나온 朝鮮의 碑王(裨王) [3] 腸(長)을 죽였다. 無題 (武帝)는 '朝鮮의 將帥를 죽였다'는 섭下衣 報告를 받고 섭下를 꾸짖지 않고 요동(遼東)의 동부도位(東部都尉)로 임명하였다. 섭下를 怨望한 寓居는 軍士를 일으켜 그를 죽였고 [4] 武帝는 朝鮮 征伐을 宣言하였다. [5]

한무제의 征伐軍이 朝鮮을 攻擊하자 寓居는 險難한 地形에 依支하여 對抗하였다. 左將軍(左將軍) 順遞 (荀?)의 卒情(卒正) 다(多)의 軍隊를 擊破하였으며, [6] 淚腺將軍(樓船將軍) 洋服 (楊僕)李 王儉城 (王儉城)을 攻擊하자 이를 擊破하고, 浿水 西쪽에서 左將軍 順遞 의 軍隊를 沮止하였다. [7]

이에 武帝는 위山(衛山)을 보내 寓居와 交涉하였고 寓居는 降伏하고 太子를 人質로 보냈다. 그러나 胃酸과 順遞가 武裝 解除를 要求하니 太子가 믿지 못하고 되돌아옴으로써 [8] 戰爭이 다시 始作되었다. 征伐軍은 王儉城을 包圍하고 攻擊하였다. 朝鮮이 城을 굳게 지키는 가운데 征伐軍度 順遞와 洋服이 內紛을 일으켰기 때문에 [9] 城은 몇달이 지나도록 陷落되지 않았다. [10] 그러나 順遞가 洋服을 잡아 가두고 軍隊를 統合하는데 成功하면서 攻擊에 拍車를 加하였다. [11] 危機를 느낀 朝鮮의 大臣들은 寓居에게 降伏할 것을 慫慂하였으나 寓居는 이를 拒否하였고 一部 大臣들이 漢나라에 降伏하였다. 紀元前 108年 6月, 尼谿相 (尼谿相) (參)李 刺客을 보내 右渠王을 殺害했다. [12] [13] 우거왕 死後에도 王儉城은 右渠王을 代身한 性器 (成己)의 指揮 아래 繼續 抗戰하였는데 順遞 가 牛車의 아들 張沆 (長降)과 宰相 老人(路人)의 아들 崔(最)를 시켜 性器를 죽임으로써 衛滿朝鮮은 滅亡하였다. [14] [15]

家計 [ 編輯 ]

  • 祖父 : 위만 (衛滿)
  • 조某 : 不明
    • 아버지 : 不明
    • 어머니 : 不明

우거왕이 登場한 作品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三國遺事 》 〈 勸第1-기이 上篇 衛滿朝鮮條 〉 “ 顔師古가 말하기를 진국은 진한을 말한다. ”/“ 師古曰辰謂辰韓也
  2. 司馬遷 “아들을 거쳐 孫子 우거(右渠)에 이르러, 한(漢)나라의 亡命者를 漸漸 더 많이 꾀어들였고, 아직 들어가 天子를 뵙지도 않았다. 眞番(?番) 옆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天子를 뵙고자 하였으나, 또한, 寓居가 가로막아 통하지 못하였다. 圓峯(元封) 2年(紀元前 109年), 漢나라는 섭下(?何)를 보내 寓居를 꾸짖고 懷柔하였으나, 마침내 寓居는 調書(詔書)을 받들기를 拒否하였다.” / “傳子至孫右渠,所誘漢亡人滋多,又未嘗入見;?番旁?國欲上書見天子,又擁閼不通。元封二年,漢使涉何?諭右渠,終不肯奉詔。”
  3. 碑王은 官職名이다.
  4. 司馬遷 “섭하가 물러나 國境에 이르러 浿水(浿水)에 닿자 馬夫(馬夫)를 시켜 섭下를 餞送하러 온 自認 朝鮮 碑王(裨王) 腸(長)을 찔러 죽이고 卽時, 江을 건너 말을 달려 要塞로 들어가, 드디어 天子에게 歸國 報告를 하기를, ‘朝鮮의 將帥(將帥)를 죽였나이다’라 하였다. 天子는 그 名分이 좋다고 여긴 卽, 꾸짖지 아니하였고, 섭下를 搖動 동부도位(遼東 東部都尉)로 삼았다. 朝鮮은 섭下를 怨望하고, 兵士를 내어 섭下를 攻擊하여 죽였다.”/“何去至界上,臨浿水,使御刺殺送何者朝鮮裨王長,?渡,馳入塞,遂歸報天子曰「殺朝鮮將」。上?其名美,?不詰,拜何?遼東東部都尉。朝鮮怨何,發兵襲攻殺何。”
  5. 司馬遷 “天子는 罪人을 뽑아 朝鮮을 쳤다.”/“天子募罪人擊朝鮮。”
  6. 司馬遷 “寓居는 軍士를 풀어 險한 곳에서 막았다. 左將軍의 卒情(卒正) 다(多)가 搖動(遼東)의 兵士를 이끌고 먼저 放縱(放縱)하다가, 敗하여 흩어지고,”/“右渠發兵距險。左將軍卒正多率遼東兵先縱,敗散,”
  7. 司馬遷 “그 해 가을, 淚腺將軍(樓船將軍) 洋服(楊僕)을 派遣하여, 옛 第(齊)나라 땅으로부터 보하이 해〔渤海〕를 건너니 軍士가 5萬에 達했다. 左將軍(左將軍) 順遞(荀?)는 우거(右渠)를 討伐하고자 搖動(遼東)에서 나왔다. [...] 淚腺將軍은 옛 제나라 땅 出身의 兵士 七千名을 거느리고 먼저 王儉(王險)에 到達하였다. 寓居는 城(城)을 지키다가 淚腺將軍의 軍士가 적은 것을 알고 꾀를 내어 淚腺將軍을 물리치니 淚腺將軍은 敗하여 달아났다. 將軍 洋服은 무리를 잃고 산(山) 속에서 十餘日을 숨었다가, 漸次, 흩어진 兵卒을 救하고 거두니, 다시 갖추어졌다.좌장군은 朝鮮 패수의 西쪽 軍을 攻擊하였으나, 능히 깨뜨리지 못했다.” / “其秋,遣樓船將軍楊?從齊浮渤海;兵五萬人,左將軍荀?出遼東:討右渠。[...] 樓船將軍將齊兵七千人先至王險。右渠城守,窺知樓船軍少,?出城擊樓船,樓船軍敗散走。將軍楊?失其?,遁山中十餘日,稍求收散卒,復聚。左將軍擊朝鮮浿水西軍,未能破自前。”
  8. 司馬遷 “天子는 두 將帥가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以內, 胃酸(衛山)을 보내어 軍隊의 威嚴으로써 가서 寓居를 타일렀다. 寓居는 사자(使者)를 뵙고 寓居는 머리를 땅에 닿도록 꾸벅이며 謝罪하여 말하기를, “降伏을 願하였으나, 두 將帥께서 詐術을 써서 저를 죽이실까 두려웠습니다. 只今 믿을 만한 徵標를 뵈옵고, 降伏하기를 請하나이다.” 하였다. 太子(太子)를 보내어 入朝(入朝)하여 謝罪하고, 말 오천필을 바쳤고, 또한 軍糧(軍糧)를 보냈다. 사람들 萬餘 名이 武器를 들고 패수를 막 건너려 하자, 獅子 胃酸과 左將軍은 變故가 있을 것을 疑心하여 太子에게, 이미 降伏했으니 사람들이 마땅히 武器를 所持하지 말라고 말했다. 太子 亦是 獅子(使者)와 左將軍이 詐術을 써서 그를 죽이지 않을지 아닐지 疑心하여 마침내 패수를 건너지 않고 다시 軍士를 이끌고 돌아갔다. 胃酸이 돌아가 天子에게 이를 알리니, 天子가 胃散의 목을 베어 죽였다.”/“天子?兩將未有利,乃使衛山因兵威往諭右渠。右渠見使者頓首謝:「願降,恐兩將詐殺臣;今見信節,請服降。」遣太子入謝,獻馬五千匹,及饋軍糧。人?萬餘,持兵,方渡浿水,使者及左將軍疑其?變,謂太子已服降,宜命人毋持兵。太子亦疑使者左將軍詐殺之,遂不渡浿水,復引歸。山還報天子,天子誅山。”
  9. 司馬遷 “左將軍은 元來 市中(侍中)이었고, 天子의 寵愛를 받았으며, 年(燕)과 臺(代)의 兵卒을 거느렸고, 사나웠으며, 勝勢를 타고 있었고, 그의 軍士들은 많이 驕慢(驕慢)했다. 淚腺은 第(齊) 地方의 兵卒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들어왔는데, 이미 여러 番 敗하여 逃亡했었으니, 그에 앞서 寓居와의 戰鬪에서 侮辱을 當함으로 인하여 兵卒을 잃었으니, 兵卒들이 모두 두려워했고, 將軍의 마음은 부끄러웠다. 寓居를 包圍하고는 있으나, 恒常 强化(講和)가 들어맞기만을 依支하고 있었다. 그런데, 左將軍이 이를 急하게 치니, 朝鮮의 代身(大臣)은 이에, 몰래 아랫사람을 시켜 淚腺(樓船)에게 降伏을 約束하였고 往來하며 論議하였으나, 如前히 肯定的으로 決定(決定)하지 못하였다. 左將軍은 淚腺과 여러 次例 戰爭을 치를 것을 期約하였으나, 淚腺은 急하게 그 朝鮮大臣의 約束을 成就(成就)하려 하였으므로, 意見이 一致되지 않았다. 左將軍 亦是 아랫사람을 시켜, 그 사이, 朝鮮을 물리치고 降伏시키려 했으나, 朝鮮은 首肯(首肯)하지 않았고, 朝鮮 大臣의 마음은 淚腺을 따랐다. 이런 理由로 두 將帥는 서로 協力이 不可能했다. 左將軍의 마음 속에는 淚腺이 예전에 軍士를 잃은 罪가 있다는 事實이 있었고, 只今 朝鮮과 사사로이 親하니, 또한 朝鮮이 降伏하지 않으므로, 그 어떤 배반하려는 計劃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으나, 敢히 드러내지는 않았다.” /“左將軍素侍中,幸,將燕代卒,悍,乘勝,軍多驕。樓船將齊卒,入海,固已多敗亡;其先與右渠戰,因辱亡卒,卒皆恐,將心?,其圍右渠,常持和節。左將軍急擊之,朝鮮大臣乃陰閒使人私約降樓船,往來言,?未肯決。左將軍數與樓船期戰,樓船欲急就其約,不會;左將軍亦使人求閒?降下朝鮮,朝鮮不肯,心附樓船:以故兩將不相能。左將軍心意樓船前有失軍罪,今與朝鮮私善而又不降,疑其有反計,未敢發。”
  10. 司馬遷 “左將軍은 浿水 上流의 軍을 擊破하고, 곧 나아가 性 아래에 이르러 그 西北쪽을 包圍하였다. 淚腺將軍도 亦是 가서, 모여서 性 南쪽에 자리잡았다. 寓居가 마침내 數個月을 堅固하게 지켜내니 능히 없애지를 못했다.”/“左將軍破浿水上軍,乃前,至城下,圍其西北。樓船亦往會,居城南。右渠遂堅守城,數月未能下。”
  11. 司馬遷 “天子가 이르기를, “將帥들이 能力이 없어 예전에 胃酸(衛山)을 보내어 寓居를 降伏하도록 懷柔(誨諭)하자, 寓居는 太子(太子)를 보냈다. 胃酸(衛山)李 行하였으나, 스스로 決定할 能力이 없었고, 左將軍과 일을 꾀하였으나, 서로 그르쳐, 마침내 約束을 깼다. 只今 兩(兩) 장수가 城(城)을 包圍하고는 있으나 또한, 서로 맞지 않고 달라서, 오래되도록 決定이 나지 않았다.” 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天子는 이를 바로잡게 하려고 濟南(濟南) 태수(太守) 公孫樹(公孫遂)를 보내어, 便宜(便宜)를 가지고 이로써 일을 맡기에 이르렀다. 公孫樹가 到着하니 左將軍이 이르기를, “朝鮮이 當然히 降伏하여야 함이 오래이나, 降伏하지 아니함에는 어떤 情況이 있습니다.”라 하였다. 淚腺에게 여러 次例 期約(期約)을 말하였으나, 淚腺과의 意見이 一致되지 않았고, 元來 뜻하던 바에 依하여 一一이 公孫樹(公孫遂)에게 故(告)하여 이르기를, “이제 이와 같이 取하지 아니하니, 큰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淚腺은 혼자가 아니고 또한, 將次 朝鮮과 함께 우리 軍을 滅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公孫樹 亦是 이를 그렇다고 여기고 나서, 不絶(符節)로서, 淚腺將軍을 左將軍 陳永(陣營)에 들어 오도록 召喚(召喚)하여 일을 꾸몄다. 卽, 左將軍 麾下(麾下)에게 淚腺將軍 및 그의 軍事(軍士)의 逮捕를 執行하도록 命하였다. 이를 天子에게 報告하자, 天子는 公孫樹를 죽였다. 左將軍은 그 後 얼마되지 아니하여 梁君(兩軍)을 아우른 卽, 朝鮮을 急히 쳤다. ”/“天子曰將率不能,前(及)[乃]使衛山諭降右渠,右渠遣太子,山使不能?決,與左將軍計相誤,卒沮約。今兩將圍城,又乖異,以故久不決。使濟南太守公孫遂往(征)[正]之,有便宜得以從事。遂至,左將軍曰:「朝鮮當下久矣,不下者有狀。」言樓船數期不會,具以素所意告遂,曰:「今如此不取,恐?大害,非獨樓船,又且與朝鮮共滅吾軍。」遂亦以?然,而以節召樓船將軍入左將軍營計事,?命左將軍麾下執捕樓船將軍,?其軍,以報天子。天子誅遂。左將軍已?兩軍,?急擊朝鮮。”
  12. 司馬遷 “朝鮮 上(朝鮮相) 老人(路人)·上 한음(相韓陰)·니界 上 참(尼谿相參)·將軍 왕겹(王?)李 서로 參與하여 일을 꾸며 이르기를, “當初에 淚腺에게 降伏하고자 하였으나, 淚腺은 只今 잡혀있고, 홀로 左將軍이 아우르고 거느리니, 戰爭은 漸次 急해지고 있고, 더불어 싸우지 못할까 두려운데, 王은 또한 降伏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하였다. 한음·왕겹·老人은 모두 도망쳐 한(漢)나라에 降伏하였다. 老人은 途中(道中)에 죽었다. 圓峯(元封) 3年(紀元前 108年) 여름, 니界 上 참은 아랫사람을 시켜 王 寓居를 죽이고 와서 降伏하였다.”/“朝鮮相路人、相韓陰、尼谿相參、將軍王?相與謀曰:「始欲降樓船,樓船今執,獨左將軍?將,戰益急,恐不能與,(戰)王又不肯降。」陰、?、路人皆亡降漢。路人道死。元封三年夏,尼谿相參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13. 우거왕(右渠王) - 두산百科
  14. 司馬遷 “王儉城(王險城)李 降伏하지 않으니, 고(故)로, 牛車의 代身(大臣) 性器(成己)가 또한 謀反하여, 다시 벼슬아치를 攻擊하였다. 左將軍은 牛車의 아들 張沆(長降)과 老人의 아들 崔(最)를 시켜 그 百姓을 하소연하고 타일러, 性器를 죽이니 이로써 마침내 朝鮮을 平定하고 四郡(四郡)李 되었다.”/“王險城未下,故右渠之大臣成巳又反,復攻吏。左將軍使右渠子長降、相路人之子最告諭其民,誅成巳,以故遂定朝鮮,?四郡。”
  15. 우거왕(右渠王) - 韓國民族文化大百科

參考 文獻 [ 編輯 ]

全代
(1代) 위만
(2代) 未詳
第3代 衛滿朝鮮 國王
不明 ~ 紀元前 108年
後代
(滅亡)
( 漢四郡 設置)
前任
(1代) 위만
(2代) 未詳
韓半島 의 國家 元首
不明 ~ 紀元前 108年
後任
동명성왕
온조왕
赫居世 居西干
수로왕
伊珍阿豉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