癌바팔리
(
팔리어
:
Ambap?l?
,
산스크리트語
:
?mrap?l?
,
漢字
音域 : 菴摩羅、菴?羅 等, 意譯: ?女、柰女、非?護 等. 生沒年 未詳)는
釋迦牟尼
部處의 女性 弟子(
比丘尼
) 가운데 한 사람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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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샬리
(毘?離) 사람으로
바이샤
出身이었다. 어려서 바이샬리 城밖의
망고
숲에 버려져서 그곳 管理人에 依해 길러졌는데 癌바팔리라는 이름도 卽 망고 숲 管理人의 子息이라는 뜻이다. 자라서는 먼 마을에까지 재色으로 그 이름이 알려졌고, 南前佛敎의 經典인 《
마하朴哥
》(代품大品)에는 그女의 美貌로 인해 漸漸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들어 바이샬리 城內가 축축해졌다고 한다.
周邊 일곱 나라의 王들이 모두 그女에게 求婚하겠다며 와서 서로 戰爭까지 벌이게 되었다. 이에 癌바팔리는 "제가 萬若 한 王子를 고르면 다른 王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저를 차지하지 못한 王子는 自身의 權威가 흔들렸다고 생각하여 憤怒할 것이고 王子들의 憤怒는 수많은 사람들을 苦痛에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차라리 저는 모두의 女人이 되고 누구의 女人도 되지 않겠습니다."라며 自請해서 遊女가 되었다고 한다. 遊女가 된 癌바팔리는 美貌나 性格뿐 아니라 춤, 노래, 音樂에도 뛰어나서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舞臺를 돌며 莫大한 돈을 벌었다.
《
大般涅槃經
》(大般涅槃?)에는 里車費族(二次族離車族)의 公子들보다 먼저 釋迦牟尼 부처를 招待하였는데, 이들 公子들은 癌바팔리에게 數萬 兩의 金貨를 줄 테니 釋迦牟尼 부처 代身 自己들을 招待해 달라고 請했으나 癌바팔리는 數萬 兩이 아니라 바이샬里 全域을 모두 준다고 해도 그럴 수 없다고 對答했고, 이들은 다시 釋迦牟尼 부처를 찾아가 供養을 모레로 미루어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지만 釋迦牟尼 부처는 이미 受諾하였으니 飜覆할 수 없다고 對答하셨다. 그리고 釋迦牟尼 부처를 만난 자리에서 그女는 自身이 所有하고 있던 망고 숲인 菴摩羅樹園(菴摩羅樹苑)을 釋迦牟尼 부처의 敎壇에 寄贈하였다. 이곳이 後날 天竺 5代 情事(天竺五精?)의 하나인 癌魔手圓正師(菴羅樹園精?)이다.
《장로니게주》(長老尼偈註, ThigA.206-7)에 따르면 出家해서 高明한 長老가 된 自身의 아들 飛馬라와 콘鍛冶의 說法을 듣고 그女 自身도 出嫁해 比丘尼가 되었고, 阿羅漢果(阿羅漢果)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1]
佛敎 經典에서 言及되는 癌바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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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리카打》 1020에는 그女의 美貌에 마음을 빼앗긴 比丘들에게 釋迦牟尼의 弟子
아난다
(阿難)가 警戒하기 위해서 지었다는 偈頌이 실려 있다.
- 《나녀기역인연경》(?女祇域因??)에는 그女는 바이샬里의 婆羅門이 王에게서 下賜받아 심은 拿囚(?樹)에 맺힌 열매에서 태어났으며 美人으로 자라나 15살 때 일곱 名의 王이 와서 求婚했지만 모두 拒絶했다. 슈마나(Suman?, 須漫)와 파드마(Padum?, 波曇)라는 이름의 두 女人도 그女와 마찬가지로 各其 나무에 핀 꽃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세 女性은 모두 5百 名의 女性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釋迦牟尼 부처의 說法을 듣고 出家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傳하고 있다.
- 《
잡아함경
》(?阿含?) 24.20 및 《帳簿週》(長部註, DA.ii.545)에 따르면 菴摩羅樹園에 그女가 오는 것을 보고 釋迦牟尼 부처는 弟子들에게 그女의 美貌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四念處
라는 修行法을 마련했다고 한다.
[1]
- 法顯 驛 《大般涅槃經》 商圈(上卷)에도 그女가 釋迦牟尼의 涅槃을 앞두고 供養을 올리기 위해 찾아오자 弟子들에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說하고 있다는 部分이 나온다.
大衆媒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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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의 小說家
細土憂恥 者쿠初
의 小說 《釋迦牟尼》에도 主要 人物로 登場한다.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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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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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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