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城 무양省

무양省
(無陽城)
대한민국 安城市 鄕土遺跡
種目 鄕土遺跡 第2號
( 1986年 5月 22日 指定)
數量 길이 約 120m, 높이 2m, 幅 1m
管理 運輸癌
參考 土築
位置
안성 무양성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안성 무양성
安城 무양省
安城 무양省(大韓民國)
住所 京畿道 安城市 양성면 방신리 산42
座標 北緯 37° 2′ 13″ 東京 127° 10′ 12″  /  北緯 37.03694° 東經 127.17000°  / 37.03694; 127.17000

安城 무양省 (安城 無陽城)은 京畿道 安城市 양성면 방신리에 있는 城이다. 1986年 5月 22日 안성시의 鄕土遺跡 第2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이 城은 고성산 稜線에 둥글게 쌓은 城으로, 耐性 區間이 石築으로 築造되어 있다.

新增東國輿地勝覽 (新增東國輿地勝覽) 양성현 古跡組 및 聖地朝에는 "無限性(無限城) 現 南쪽 12里 地點에 있는데, 石築이다. 둘레는 1千 3百5尺이며, 誠意 안에 못 하나가 있다."고 했고, 光武 3年(1899)에 刊行한 陽性邑誌 에는 無限性(無限城) [고성산 西쪽 修理(數里) 地點에 있다. 傳해오기를 百濟(百濟)가 쌓은 것이라 하는데 只今은 다만 둘레가 남아 이고 가운데에 못이 있는데 俗稱 용추(龍湫)라고한다. 그 위에 祈雨祭團(祈雨祭壇)이 있다. 梧亭(梧亭) 박란(朴蘭)의 時에, "아홉 마리의 龍이 구름을 타고 樓閣위로 올라갈 때 性(城)을 지나가는 비가 내리는데, 백제의 옛 나라는 없어졌네??하였다.] 고 記錄되어 있다.

이 城郭의 祝聖連帶는 正確히 알 수 없으나 記錄과 酸性 內에서는 三國時代의 기와나 土器篇이 出土되는 것으로 보아 三國時代에 超軸된 後 高麗와 朝鮮時代에 補强된 것으로 推定된다.

城안에는 運輸癌이라는 庵子가 있는데, 說話에는 運輸癌(雲水庵)을 保護하기 위하여 武揚(無陽)이라는 사람이 築城했다는 이야기도 傳한다.

現在 殘存城壁은 北壁 상면 幅이 約 2.8m, 外壁 높이가 4m, 內壁 높이가 約 0.8~1m이며, 西壁은 外壁 높이가 約 4m 以上, 상면 幅이 2.2m, 內壁 높이는 2m 內外이다.

以外에도 南壁, 東壁, 耐性壁, 門址 等이 一部 남아있다.

現地 案內文 [ 編輯 ]

이 城은 算定(山頂) 高原地에 둥글게 쌓은 石城(石城)으로서 이러한 山城은 古代(古代)에 많이 築城(築城)해온 形態이다. [1]

理性은 一名 무양省(無陽城)이라고도 불려오는데, 新增東國輿地勝覽 (新增東國與地勝覽) 양성현 古跡組(古蹟條)·聖地兆(城池條)에 '現(縣) 南쪽 12里 地點에 있으며, 石築이고 둘레는 1千 305隻(尺)이며 城안에 못 하나가 있다'고 하였다. 光武(光武) 3面(1899) 刊行된 陽性邑誌(陽城邑誌)에도 '無限性 南端(南端) 아래 高聲(古城)이 있어 俗稱 옛 고을터가 完泳하다'고 記錄되어 傳하고 있다. 姓은 山의 頂上部에 쌓은 테뫼式 酸性으로 一部 破損되기도 하였지만 城壁이 比較的 잘 남아있다. 또한 酸性 內에 建物址의 痕跡과 기와便이 發見되고 있다. 이 酸性의 築城 時期는 具體的으로 傳하지는 않지만 出土되는 遺物들로 보아 三國時代에 쌓은 것으로 推定된다. [1]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現地 案內文 認容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