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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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직 (安秉直, 1936年 6月 28日 慶南 咸安郡 ~ )은 韓國의 經濟學者로 서울大學校 經濟學部 名譽 敎授이자 社團法人 時代精神  理事長,  自由韓國黨 汝矣島硏究院  理事長이다. 서울大學校 經濟學科를 거쳐 同 大學에서 碩士 學位를 授與 받았다.

活動 [ 編輯 ]

專攻分野는 韓國經濟社로 特히 日帝 植民地 時代에 關한 硏究를 많이 했다. 그는 日帝 植民地 時期 經濟와 生活의 變化에 關한 硏究論文을 發表해 旣存 學界에 相當한 衝擊을 주었고 많은 甲論乙駁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1945年 以後 獨立된 韓國의 資本主義와 市場經濟의 要素들이 日帝 時期에 어떻게 形成되었는가에 關한 그의 論文 內容은 以後 植民地 近代化論 이라고 불리기 始作하였으며, 이에 對해 안병직 敎授는 統計와 歷史的 資料를 基礎로 한 事實이라고 主張하였다. 또한 旣存 國史學界의 抵抗과 侵略의 二分法的 視角으로는 그 時代의 變化狀을 제대로 說明할 수 없으며 資本主義와 市場經濟, 近代的인 制度와 要素들이 解放 以後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日帝 時期 形成된 것들이 있다며 이를 外面하는 것은 植民地라는 아픔 때문에 우리 歷史가 創造한 것을 外面하는 것이라고 批判하였다. [1] 다만 學界에선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弟子이기도 한 허수열 敎授 等이 이에 對해 統計와 根據 資料를 바탕으로 虛構가 많다고 反駁하기도 했다.

本人 主張에 依하면, 1960年에 터진 4.19 革命 以後 마르크스 經濟學 에 心醉해 마오쩌둥 의 理論을 參考하여 韓國社會 性格을 '植民地 反封建社會'로 認識하고 '植民地 反封建社會論'를 著述해 民族解放(NL) 運動圈에 많은 影響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땐 韓國經濟를 美國과 日本의 植民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는데, 80年代 以後 韓國經濟成長을 보면서 旣存 理念과 理論을 代身할 硏究에 沒頭하였다고 한다. 허나 이에 對해 批判論者들은 그가 이런 말을 하기 始作한 80年代 後半부터 이미 日本企業人 도요타財團의 支援을 받아 日本 學者와 共同硏究를 遂行한 事實 等을 言及하며, 結局 日本 右翼들의 論理를 韓國人 學者라는 그럴듯한 포지션 아래 忠實히 代辯해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指摘도 한다. 그러나 이런 批判은 오히려 左派쪽의 學者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는데 왜냐하면 代表的인 左派學者 한홍구와 挺對協 前 幹部 정진성 敎授等이 도요다 財團의 硏究支援費로 硏究를 遂行했고 文在寅 政府 外交安保特報 문정인 敎授는 甚至於 戰犯 사사카와 財團의 理事長을 歷任했기 때문이다. [2]

何如튼 이 過程에서 英國 等 先進資本主義의 發展樣式과 西歐의 從屬理論을 韓國에 機械的으로 適用해 온 問題點을 認識하고, 韓國과 같은 低開發國家들은 先進國의 資本과 技術을 吸收하여 發展한다는 캐치업(catch-up) 理論을 接하게 된다. 그리고 以後 韓國資本主義는 世界資本主義와 聯關되어 從屬性을 띄면서도 獨自的 發展過程을 걷는다는 '重鎭資本主義論'으로 旋回하게 되었다.

그의 弟子인 李榮薰 等이 進行한 一名 '代案敎科書 韓國 近現代史' 執筆에 參與하였다.

論難이 된 發言 [ 編輯 ]

  • 1992年 月刊 사회평론에서 <從軍慰安婦와 勤勞挺身隊를 區別해야> 라는 題目의 글에서 "從軍慰安婦와 勤勞挺身隊는 서로 다른 制度로 挺身隊에 徵發되어 勞動力만을 提供한 사람들이 誤解를 받을 수 있고 이로 인해 精神的 被害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둘을 區分해야한다"고 主張했다. [3] [4]
  • 2006年 12月 6日 그는 MBC <뉴스現場> '뉴스초점' 코너에 出演해 皇憲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發言해 論難이 있었다. “日帝時代 公公然한 土地收奪은 없었다.", "慰安婦 强制動員했다는 客觀的인 資料는 하나도 없다.", "慰安婦 營業者의 折半은 朝鮮 사람이었다. 그들이 무슨 權力이 있어 動員했겠느냐.", "支配는 支配高 硏究는 硏究다. 强制支配를 하니까 硏究가 안된다 그러면 말이 안되니까….", "오늘날 우리가 幸福할 條件을 過去에 侵略한 사람이 해주면 拒否할 理由는 없다." 等의 發言을 하였다. [5]
  • 2008年 에는 獨島 에 對해 "事實 日本도 日本 것이라고 主張할만한 그들 나름대로의 根據를 가지고 있다. 그럼 現在 狀況은 우리나라가 반드시 日本보다 法律的, 史料的 證據가 많다고 꼭 主張할 수가 없다." 라고 發言하였다. [6]
  • 또한 그는 傷害 大韓民國 臨時 政府 에 對해 " 나라 의 構成 要素인 主權, 領土 等이 없었다며 大韓民國 臨時 政府 는 그저 獨立團體였을 뿐이고 眞짜 建國은 1948年 이다"라는 主張을 펼치기도 했다.

主要 經歷 [ 編輯 ]

  • 1936年 慶尙南道 咸安 出生
  • 1965年 ~ 2001年 서울大學校 社會科學大學 經濟學部 敎授
  • 1986年 ~ 1987年 東京大學 經濟學部 敎授
  • 1990年 ~ 1992年 서울대학교 經濟硏究所 所長
  • 2001年 ~ 서울대학교 經濟學部 名譽敎授
  • 2002年 日本 후쿠이 縣立大學 大學院 特任敎授
  • 2006年 뉴라이트財團 理事長
  • 2007年 9月 ~ 2008年 5月 한나라黨 汝矣島硏究所 理事長
  • 2006年 4月 ~ 2010年 系間 時代精神 發行人, 社團法人 時代精神 理事長 (2008年에 뉴라이트 財團과 自由主義連帶 統合)
  • 2014年 10月 自由蝸瘡醫敎育원 碩座敎授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