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녕鄕校 大成殿

신녕鄕校大成殿
(新寧鄕校大成殿)
대한민국 慶尙北道 文化財資料
種目 文化財資料 第102號
( 1985年 8月 5日 指定)
數量 1棟
位置
신녕향교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신녕향교
신녕鄕校
신녕鄕校(大韓民國)
住所 慶尙北道 永川市 신녕면 큰골길 30-7 (화성리)
座標 北緯 36° 2′ 55″ 東京 128° 47′ 28.5″  /  北緯 36.04861° 東京 128.791250°  / 36.04861; 128.791250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신녕鄕校 大成殿 (新寧鄕校 大成殿)은 慶尙北道 永川市 신녕면 화성리, 신녕鄕校 에 있는 建築物이다. 1985年 8月 5日 慶尙北道의 文化財資料 第102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鄕校는 孔子와 여러 聖賢께 祭祀를 지내고 地方民의 敎育과 敎化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敎育機關이다.

신녕鄕校는 지은 時期를 正確하게 알 수 없지만, 朝鮮 宣祖 25年(1592)에 불이 나서 없어졌다. 光海君 7年(1615)에 처음 세웠던 곳에서 500m 떨어진 地點에 다시 지었는데, 肅宗 12年(1686) 只今 있는 자리로 옮겨 지었다.

大成殿은 孔子를 비롯하여 中國과 우리나라 儒學者의 位牌를 모시고 祭祀지내는 곳이다. 앞面 3칸의 規模이며, 동무·庶務가 없이 우리나라 成俔들도 모두 大聖殿에 모셨다.

朝鮮時代에는 나라에서 土地와 奴婢·冊 等을 支援받아 學生을 가르쳤으나, 只今은 敎育 機能은 없어지고 祭祀 機能만 남아 있다.

現地 案內文 [ 編輯 ]

이 鄕校가 지어진 年代는 正確히 알 수 없으나 朝鮮 明宗 6年(1551) 황준량(黃俊良) 縣監 在任時 지어졌다고 傳해지며 元來는 火山 아래의 明川 위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

그後 壬辰倭亂때 消失되어 광해군 (光海君) 7年(1615)에 現 鄕校 뒤便에 再建되었다가 肅宗 (肅宗) 12年(1686)에 現在의 位置로 옮겼다. [1]

大成殿은 이 鄕校 내 가장 안쪽에 南向으로 자리잡고 있는 建物이다. [1]

이 곳은 성현을 奉獻하는 곳으로 東方 27絃을 配享하고 있다. [1]

緩慢한 傾斜地에 外三門, 明倫堂, 大聖殿을 同一 軸線上에 配置한 轉學後妙 形式이다. 大成殿은 막돌로 만든 基壇 위에 둥근 지붕을 세워 構成한 正面 3칸, 側面 3칸의 겹처마 맞배집으로 正面 各 칸살을 側面보다 넓게 잡았다. [1]

各州 [ 編輯 ]

  1. 現地 案內文 認容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