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原 訪花隨柳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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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原 訪花隨柳亭
(水原 訪花隨柳亭)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寶物
種目 寶物 第1709號
( 2011年 3月 3日 指定)
面積 1棟
時代 朝鮮時代
所有 國有
住所 京畿道 水原市 八達區 매향동 151番地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水原 訪花隨柳亭 (水原 訪花隨柳亭)은 京畿道   水原市   八達區 매향동 에 있는 朝鮮時代 建築物 이다. 2011年 3月 3日 大韓民國 寶物 第1709號로 指定되었다. [1]

沿革 및 立地 [ 編輯 ]

水原華城에 있는 角樓(角樓)는 東北角樓, 西北角樓, 西南角樓, 東南角樓 等 넷이다. 西南角樓는 華陽루(華陽樓)라하고, 東北角樓(東北角樓)는 訪花隨柳亭(訪花隨柳亭)이라 한다. 訪花隨柳亭은 火星의 북水門人 華虹門(華虹門)의 東側 丘陵 正常 卽 龍鳶(龍淵) 南側에 불쑥 솟은 바위 언덕인 龍頭(龍頭) 위에 있다.(龍頭者卽淵上斗起之巖)

華城聖域儀軌(華城城役儀軌)에 龍鳶은 북성 밖에 있는데 半달처럼 생긴 못으로 둘레가 210報, 깊이 6尺이며 못 가운데 작은 섬이 있다고 記錄되어 있다. 못 위의 性 모서리에는 訪花隨柳亭이 있고, 못 西쪽에는 石刻吏讀(石刻?頭)가 있다고 記錄되어 있다.

訪花隨柳亭은 朝鮮 正祖 18年(甲寅,1794) 9月 4日 辰時(辰時)에 터다지기 工事에 着手하여 10月 4日 卯時(卯時)에 正初를 하고 기둥을 세웠고, 7日 오시(午時)에 上樑(上樑)하였으며, 10月 19日 完工하였다. 訪花隨柳亭 建立에 參與한 各 工場(工匠)의 編修(邊手)는 석수(石手) 서울(京) 김차봉(金次奉), 閑散 최기득(崔貴得)이며, 木手(木手) 서울 한천석(韓天石), 미장(泥匠) 서울 권옥(權玉), 蓋瓦匠(蓋匠)은 서울 摠戎廳 所屬 이흥득(李興得)이다.

訪花隨柳亭의 元來의 扁額은 前 參判 조윤형(湖 松下翁 曺允亨1725~1799)의 글씨이며, 現在 訪花隨柳亭에 걸려 있는 扁額은 書藝家 김기승(湖 原谷 金基昇 : 1909~2000)李 1956年(丙申)에 쓴 것이다.방화수류정은 宋代 정명도(程明道)의 時(詩) "雲淡風輕五千(雲淡風經午天), 放火類科田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다고 한다.

華城聖域儀軌 演說(筵說)의 記錄에는 正祖 19年(1795) 2月 14日에 華虹門을 經由하여 訪花隨柳亭에 임금과 臣下가 擧動한 記錄이 있고, 正祖 21年(1797) 1月 29日에는 訪花隨柳亭에서 賃金과 臣下가 활을 쏘았다는 記錄이 있다.

水原父系錄(1848.6.10)에 訪花隨柳亭, 팔달문, 長安門 等은 憲宗 14年(1848)에 重修되었으며, 1913年 訪花隨柳亭 保守, 1918年 訪花隨柳亭 改築, 1929~1934年 等 日帝强占期에 여러 次例 修理되었다.

光復 後의 水利는 1968年 訪花隨柳亭 保守, 1973年 訪花隨柳亭 丹靑, 1975年 訪花隨柳亭 保守, 1988年 訪花隨柳亭 退마루 밑 欄干保守, 街漆丹靑, 1993年 訪花隨柳亭 基壇 江灰다짐, 마루 및 欄干步 수, 1998年 訪花隨柳亭 기와 고르기 및 丹靑, 1999年 訪花隨柳亭 丹靑 및 甎甓돌 交替 等 訪花隨柳亭 保存을 위한 修理가 이루어져 왔다.

訪花隨柳亭에 關한 圖面 資料는 華城聖域儀軌에 東北角樓(訪花隨柳亭) 外道1(外圖一)과 外道2(外圖二), 東北角樓내도(內圖)가 收錄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934年에 作成된 訪花隨柳亭의 平面圖, 正面圖, 斷面圖, 側面도 等이 所藏되어 있다. 1980年에 發刊된 水原城復元정화지에도 訪花隨柳亭의 平面圖, 立面圖 等이 收錄되어 있으며, 2010年에 發刊된 김주태 寄贈 傳統建築設計圖面집에는 訪花隨柳亭 側淡 關聯 圖面이 收錄되어 있다.

現象 및 樣式的 特徵 [ 編輯 ]

높은 地形에 照映되어 있는 訪花隨柳亭은 石材와 木材, 前돌을 適切하게 使用하여 性의 西北角樓인 展示用(戰時用) 建物이지만 精子의 機能을 考慮하여 照映된 建物이다. 訪花隨柳亭은 初翼工 小櫨修粧에 굴도리를 使用한 五樑집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天井은 燃燈天井이다. 지붕上部에는 세 마디의 節甁桶을 세우고 龍마루와 내림마루를 設置하였다. 지붕形態는 大部分 八作지붕이고, 平面은 正面 3칸, 側面 2칸인데 北側 용연側과 東側으로 突出되게 하여 退마루를 두는 特異한 平面이다. 訪花隨柳亭의 平面은 “ㄱ”字形을 基本으로 北側 용연側과 東側은 凸型으로 突出, 튀어나오게 造營하여 四方을 볼 수 있도록 꾸몄다.

訪花隨柳亭의 南側 礎石은 方形(下部 50cm, 上部 40cm)의 민흘림 長礎石(높이 1.55m) 위에 下部(높이 90cm)는 原州(直徑 30cm)로 加工하였고 그 上部는 脚註로 加工하였다. 北側面은 높이 20cm 基壇 위에 1.08m 株礎石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南側 前面의 흙마당에 設置된 다섯단의 돌階段(石階)을 오르면 方形의 臺(臺)가 形成되어 있다. 南東側은 높은 大尉에 上層으로 오르는 木造階段이 있다. 다섯段으로 된 나무階段(木階, 下部 幅 86.5cm, 上部 幅 85cm, 디딤 幅 24cm, 높이 28cm)을 오르면 樓마루가 된다. 下層바닥에서 上層바닥까지의 높이는 2.60m程度이고, 東南側 基壇에서 上層바닥까지는 1.36m, 基壇높이는 1.23m 程度이다. 마루는 우물마루로 깔았으며 北側의 용연쪽은 平亂(平欄)을 둘렀고, 그 外는 鷄子欄干(鷄子欄干)을 둘렀다. 鷄子欄干은 위部分에 荷葉(荷葉)을 두르고, 아래에는 구름무늬를 두어 彩色하였다.

訪花隨柳亭의 西쪽 下枋담은 前돌로 쌓았으며 前돌 사이사이에는 “+”字形으로 비워 “+”字形의 三火土 甓돌을 製作하여 넣어서 調和롭게 쌓은 和談은 城郭의 展示用 建物 같지 않은 아름다운 下枋담으로 꾸몄다.

華城聖域儀軌 東北角樓內道와 1907年 獨逸人 '헤르만 산더'가 撮影한 그림에는 訪花隨柳亭에 오르는 階段이 2開所이나 現在는 1個所로 되어 있는 것 外에는 大體로 元來의 現象을 維持하고 있다.

指定 事由 [ 編輯 ]

正祖와 關聯된 많은 歷史的 事實을 간직하고 있는 訪花隨柳亭은 周邊監視와 指揮라는 軍事的 目的에 充實하면서 同時에 周邊景觀과 調和를 이루는 朝鮮時代 精子建築의 特徵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다른 精子에서 보이지 않는 獨特한 平面과 지붕 形態의 特異性 等을 土臺로 18世紀 뛰어난 建築技術을 보여주는 貴重한 資料로서 歷史的, 藝術的, 學術的으로 價値가 크다.

寫眞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文化財廳告示 第2011-60號, 國家指定文化財<寶物> 保護區域 調整 考試, 文化財廳長, 2011-03-03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