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여완
(成汝完, 1309年 ~ 1397年)은 高麗 末 朝鮮 初의 文身이다. 本貫은
昌寧
(昌寧). 初名은 성한생(成漢生), 號는 이헌(怡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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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校
門下侍中
(門下侍中)으로 昌寧府院君(昌寧府院君)에 封해졌다. 諡號는 문정(文靖)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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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6年(
高麗 忠肅王
復位 5年)에 文科에 及第하여 軍部 正郞(軍簿正郞), 楊廣道 按廉使(楊廣道按廉使), 上書 優勝(尙書右丞), 地形府使(知刑部事), 御史 中丞(御史中丞), 戰法 判事(典法判事), 海州(海州)·忠州(忠州) 牧師(牧使), 尖鼠밀職(僉書密直) 等을 歷任하고, 1378年(禑王 4年) 政堂文學(政堂文學)으로 昇進하였다.
[2]
朝鮮이 個國되자 岐路(耆老)로서 檢校
門下侍中
(門下侍中)에 任命되고 昌寧
府院君
(昌寧府院君)에 封君되었다. 1397年(朝鮮 太祖 6年) 나이 89歲에 病으로 졸하니, 太祖가 米豆(米豆) 1百 石을 내려 주고 藝場(禮葬)으로 장사하였다. 諡號는 문정(文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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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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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祖父 : 성인보(成仁輔)
- 曾祖父 : 性送局(成松國)
- 祖父 : 성공필(成公弼)
- 部 : 聖君美(成君美) - 판도총랑(版圖摠?)
- 外祖父 : 五千(吳?) - 三司左尹
墓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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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여완 先生 墓
는
京畿道
抱川市
신북면
고일리에 있다. 1986年 4月 9日 抱川市의 鄕土遺跡 第19號로 指定되었다.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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