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곡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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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곡시고
(雪谷詩藁)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寶物
種目 寶物 第709號
( 1981年 3月 18日 指定)
數量 2卷1冊
時代 高麗時代
所有 조동기,조성은,조영기,조왕기
住所 서울特別市 中區 世宗大路21길 22,
성암고서박물관 (태평로1街)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설곡시고 》(雪谷詩藁)는 서울特別市 中區 에 있는 高麗時代의 木版本 冊이다. 高麗 後期 文臣이었던 鄭誧(鄭? 1309∼1347)의 個人 詩集이다. 1981年 3月 18日 大韓民國의 寶物 第709號로 指定되었다. [1]

槪要 [ 編輯 ]

鄭誧는 文科에 及第하여 左司議大夫의 벼슬을 지냈으나 37歲의 나이로 목숨을 다하였다. 詩와 글짓기에 뛰어났으며, 글씨로도 이름이 높았다.

詩集에는 이제현(李齊賢)과 異色(李穡)의 서(序)가 있었는데 이 冊에는 첫머리의 6張이 떨어져서 서(序)의 部分이 다 없어졌으나 『益齋亂藁(益齋亂稿)』와 『목은문고(牧隱文稿)』에 다 실려 있으므로 그 內容을 알 수 있으며, 冊 끝에 安東大都護府社 이방한(安東大都護府使 李邦翰)의 발(跋)에 依하면 抛(?)의 아들인 公權(公權)(初名:秋(初名:樞))李 先親의 遺稿를 整理하여 굉讚辭(宏贊師)에 附着하여 高麗 禑王(禑王) 2年(1376)에 板刻한 것에서 찍은 後刷本(後刷本)이다.

冊머리 序文 다음에 鄭誧의 詩와 글씨 等이 1, 2卷으로 나누어 收錄되어 2卷 1冊으로 만들어졌다. 冊끝에는 이방한이 쓴 跋文에 紅무(洪武)의 무(武)字가 빠져있는데 이것은 高麗 惠宗의 이름을 避하기 위한 것으로 考慮本에서 흔히 보이는 特徵의 하나이다. 現在 이 冊은 序文에서 本文 6張까지는 漏落되어 있는 狀態이다.

그의 作品은 高麗時代 異色의 글에서 評價하였듯이 簡潔하고 優雅하며 예스러운 것이 特徵이다. 하지만 個人 家門에서 發刊한 冊이라 글字새김이 뛰어나지 못하고, 글字가 많이 깎여 나간 便이며, 印刷가 깨끗하지 못하다. 그러나 高麗 後期에 發刊된 詩集으로서 稀貴本이며, 文獻學 硏究와 高麗文學 硏究에 아주 貴重한 資料이다.

各州 [ 編輯 ]

  1. 문화공보부長官 (1981年 3月 18日). “文化公報部考試制489號(文化財指定)” . 1981年 3月 20日 官報 第8784號. 11-13쪽. 12쪽.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