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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賢 (前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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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賢 (石顯, ? ~ ?)은 傳한 後期의 官僚로, 군방 (君房)이며 第南軍 사람이다. 원제 의 信任을 얻어 원제 時節의 政治를 左之右之했으나, 원제 事後 성제 에게 버림받아 沒落하고 自決했다.

生涯 [ 編輯 ]

젊을 때 罪를 지어, 宮刑 을 받고 宦官이 되었다. 重皇門(中黃門)李 되어 中서(中書)에 拔擢되었고, 先制 는 中서 宦官을 重用하여 宦官 鴻功 을 中書令(中書令)에, 昔賢을 中書僕射(中書僕射)에 임명하였다.

先制가 昇遐하고 원제 가 卽位하였다. 原題는 政務보다 音樂을 즐겨, 昔賢 等의 宦官을 믿고 政治를 맡겼다. 이에 前將軍 소망지 · 宗正 有更生 · 光祿大夫 酒酣 等이 昔賢을 逐出하려 하자, 昔賢은 謀略으로 소망지가 自決하게 하고, 有更生과 酒酣을 罷免시켰다.

原題가 卽位한 지 몇 해가 지나 홍공이 죽자, 昔賢이 中書令이 되었다. 태중대부(太中大夫) 壯猛 · 위軍 태수 경방 ·御史中丞(御史中丞) 津함 ·大棗(待詔) 街蓮池 等이 元帝에게 昔賢의 잘못을 아뢰어 逐出을 建議하였으나, 昔賢은 그들의 罪를 찾아내어 경방과 街연지는 處刑시키고, 壯猛은 自決하도록 하였으며, 津함은 棍刑(?刑)에 處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大臣들도 昔賢을 두려워하였다.

昔賢은 또 小部 誤錄衝種 과 中書僕射 腦梁(牢梁), 御史中丞 이가(伊嘉) 等과 交友하여 自身과 가까이 하는 者는 높은 자리에 앉혔다. 이들이 昔賢의 힘으로 地位를 얻은 것을 두고, 世間에서는

[1] 與, 席 [2] 이여, 오록 [3] 의 손님이여. 圖章은 왜 그리 많은가? 印끈은 왜 그리 긴가?

라고 노래하였다.

昔賢은 또 左將軍 風丰歲 가 아들 風野王 과 함께 代身으로서 有名한 데다가 딸이 原題의 後宮으로 寵愛를 받는 것을 두고, 自身의 便으로 끌어들이고자 風丰歲의 아들 豐蹲(馮逡)을 元帝에게 推薦하였다. 豐蹲은 昔賢이 權力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을 아뢰었고, 原題는 크게 怒하여 그를 낭(郞)으로 되돌렸다.

以後 後任 御史大夫 를 定하는 자리에서, 大臣들이 風野王을 推薦하였다. 原題가 昔賢에게 묻자, 昔賢은 이렇게 答하였다.

寵愛하는 後宮의 오라비인 風野王을 고르면, 後世 사람들은 陛下께서 後宮의 親族을 밀어주어 三貢으로 삼으셨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原題는 結局 風野王 代身 壯談 을 임명하였다.

昔賢은 일부러 宮門이 닫힌 밤에도 드나들 수 있도록 元帝에게 許諾을 求하였는데, 以後 昔賢이 밤에 멋대로 宮門을 열고 드나든다고 常駐한 者가 있었다. 昔賢은 元帝에게 아뢰었다.

저를 시샘하여 謀略하는 者가 있습니다. 크신 分付를 받들면서 모두를 기쁘게 하지 못하고 天下의 怨望을 사니, 職責에서 물러나 宮闕 뒤뜰에서 비를 쓸며 목숨을 扶持하게 된다면 多幸이겠습니다.

原題는 昔賢을 同情하여, 그를 慰勞하고 賞을 내렸다.

世間에서 儒學者 소망지를 죽인 것으로 自身을 非難하자, 昔賢은 儒學者들의 歡心을 사기 위해 留學者 공우 와 親分을 맺고 그를 薦擧하여 御史大夫까지 승진시켰다. 이에 世間에서는 昔賢을 稱頌하였고, 소망지를 시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原題의 晩年에, 程度王 이 寵愛를 받아 皇太子( 성제 )의 地位를 威脅하였다. 昔賢은 皇太子를 支持하였으나, 皇太子는 卽位한 後 昔賢을 장신중太僕(長信中太僕)으로 左遷시켰고, 몇 달 後에는 丞相 광형 과 御史大夫 壯談이 昔賢의 예전 罪를 告發하였다. 昔賢과 腦梁·陳淳(陳順) 等은 罷免되고, 昔賢은 妻子와 함께 故鄕으로 돌아가던 中에 근심으로 인하여 穀氣를 끊고 죽었다. 또 오록충종은 玄도 태수 , 이가는 안門 都尉 로 左遷되어 世間에서는

[4] 는 안門으로, 綠 [3] 은 現道路. 腦와 陳 [5] 은 쓸모가 없어 내쳐졌구나.

라고 노래하였다.

各州 [ 編輯 ]

  1. 腦梁.
  2. 昔賢.
  3. 誤錄衝種.
  4. 이가.
  5. 陳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