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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淸 止哭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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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淸止哭사지
(山淸智谷寺址)
대한민국 慶尙南道 記念物
種目 記念物 第225號
( 2000年 8月 31日 指定)
面積 39,680.4m 2
管理 山淸郡
住所 慶尙南道 山淸郡 산청읍 내리 772-4番地 外 一圓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山淸止哭사지
(山淸智谷寺址)
대한민국 慶尙南道 記念物 (解止)
種目 記念物 第194號
( 1997年 12月 31日 指定)
( 1999年 12月 27日 解止)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山淸 止哭사지 (山淸 智谷寺址)는 慶尙南道 山淸郡 산청읍 내리에 있는 절터이다. 1997年 12月 31日 慶尙南道의 記念物 194號로 指定되었으나, 指定 當時 正確한 文化財 區域을 특정하지 않은 채 漠然히 指定하고, 正確한 境界測量이 이루어지지 않는 等의 問題로 1999年 指定 解除되었으나 [1] 2000年 8月 31日 慶尙南道의 記念物 第225號로 再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止哭社는 新羅 應眞 스님이 처음 지어 國泰사라 이름하였다가 高麗 慧月禪師를 거쳐 진관선社에 이르러 다시 고쳐 지었다고 傳한다.

高麗 大覺國師 義天이 天台宗을 다시 세울 때 基盤이 된 腺腫 5散文 가운데 하나가 지곡사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高麗 佛敎界에 重要한 位置를 차지했던 寺刹로 斟酌된다. 朝鮮時代에 들어서도 止哭社에 對한 記錄이 各種 地理書에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如前히 中心寺刹로서 役割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12年∼1913年 사이에 朝鮮總督府에서 査察에 對해 申請 認可할 때 止哭社의 이름이 빠진 것과 城안스님과 鴻儒스님의 비와 廟塔이 朝鮮 憲宗 2年(1845)에 세워진 것을 보아 20世紀 初盤에 寺刹로서의 運命을 다한 것으로 推定된다.

止哭社 터는 當時의 建物은 남아 있지 않으나 建物址의 礎石을 비롯하여 築臺, 우물, 塔의 材料, 石水槽, 廟塔 10餘機, 拜禮席 等 佛敎關聯 遺構들이 곳곳에 分布하고 있으며, 땅속에도 關聯 遺構 및 遺物이 있을 것으로 推定된다.

參考 文獻 [ 編輯 ]

  1. 第39回 國務總理行政審判委員會. “경상남도문화재지정처분등무효확인등청구” (99-05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