寶篋印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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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篋印石塔
(寶?印石塔)
(Stone Pagoda of Casket Seal Dharani)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國寶
種目 國寶 第209號
( 1982年 12月 7日 指定)
數量 1期
時代 高麗時代
所有 東國大學校
住所 서울特別市 別試 中區 필동로1길 30-0 (장충동2街, 東國大學校)
情報 文化財廳 國家文化遺産포털 情報

寶篋印石塔 (寶?印石塔)은 高麗時代 石塔 이다. 1982年 12月 7日 大韓民國의 國寶 第209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寶篋印塔이란 『보협人陀羅尼經』을 그 안에 安置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韓國에서는 唯一한 石造 寶篋印塔이다.

中國 五月(吳越國)의 마지막 王인 衝義王 전홍숙은 印度의 아소카王이 부처의 眞身舍利를 8萬 4賤妓의 塔에 나누어 奉安하였다는 故事를 본따 金, 洞, 鐵 等의 材料로 小塔 8萬 4天機를 만들고 그 속에 一一이 『보협人陀羅尼經』을 安置한데서 由來한 것으로 보인다.

現在 5個의 돌만 남아있어 緩刑은 아니지만 韓國에 하나밖에 없는 매우 貴重한 價値를 지니고 있고, 塔의 形式은 韓國 石塔의 一般形式과 全혀 달라서 基壇과 塔身의 區分이 뚜렷하지 않고 完全한 形態를 斟酌하기도 어렵다.

뚜껑을 덮은 듯한 네모난 箱子模樣의 돌 2個를 포개어 놓은 後, 그 위로 귀를 세운 머리裝飾을 얹어 놓은 모습이다. 佛像이 새겨진 六面體 爲替 4角形의 받침돌을 놓고 다시 그 위에 六面體가 놓이는데 4面에 부처님의 前生說話가 새겨 있다. 이 塔몸돌 윗面 中央에는 『보협人陀羅尼經』을 安置했던 것으로 보이는 둥근 事理구멍이 남아있다.

忠淸南道 天安市 東南區 北面 대평리 탑골의 절터(구룡사로 傳해진다)에 있던 것을 1967年 에 동국대학교 博物館으로 옮겨 세웠다.

基壇石 角面에 2柩씩의 羅漢像이 彫刻되어 있으며, 塔身怪臨席에는 唐草紋(덩굴무늬)과 양연文이 彫刻되어 있고, 塔身 角面에 釋迦本生圖 조각과 舍利공이 있다. 뚜껑돌에는 덩굴무늬와 48個 蓮꽃무늬를 새겼고, 相輪部에는 말의 귀 模樣을 한 蓮꽃무늬 판을 네 귀퉁이에 彫刻했다.

參考 資料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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