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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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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凉 文王 短業 (北? 文王 段業, ? ~ 401年 , 在位: 397年 ~ 401年 )은 中國 五胡十六國時代 北凉 (北?)의 招待 君主이다. 저거몽손에게 시해당했다.

生涯 [ 編輯 ]

短業은 慶弔(京兆 : 長安) 出身의 한족(漢族)으로 餘光 (呂光)의 部下 두진(杜進)의 部下였다. 餘光이 前震 (前秦) 苻堅 (?堅)의 命을 받아 西域 征伐에 나서자 痘疹을 따라 出征하였다.

以後 餘光이 後涼 (後凉)을 建國한 뒤 健康(建康 : 간쑤省 주취안 時 )太守로 任命되었다. 397年 , 各地에서 叛亂이 일어나 後涼은 混亂에 빠졌는데, 健康에서는 저거男性(沮渠男成)李 叛亂을 일으켜 健康을 包圍하였다.

저거男性은 籠城하고 있는 短業을 推戴하여 首長으로 삼고 健康 및 酒泉(酒泉) 一帶를 掌握하고자 하였다. 短業은 이를 拒否하며 20日 가까이 籠城하였으나 救援軍이 오지 않자 結局 城門을 열고 저거男性을 받아들여 大都督·龍陽大將軍·양주목·健康공(大都督、龍?大將軍、?州牧、建康公)에 推戴되었다. 一般的으로 이때부터 北量이 建國된 것으로 본다.

短業은 저거男性 및 저거男性의 親戚 저거몽손 (沮渠蒙遜) 等에 依해 推戴되어 實質的인 權力은 가지지 못하였으며 저거男性이 報國將軍(輔國將軍), 저거몽손이 眞書將軍(鎭西將軍)에 任命되어 國家의 모든 實權을 掌握하였다.

저거몽손 等은 短業의 밑에서 西方을 攻略하여 西域 大部分을 影響圈에 넣었으며 後梁의 漿液(張掖)을 攻擊하여 占領하였다. 短業은 漿液 占領 直後 獨自的으로 軍士를 움직이다가 크게 敗北하기도 하였다.

399年 , 短業은 양왕(?王)을 自稱하였고 後涼과 持續的으로 對立하였다. 그러나 400年 에 敦煌(敦煌 : 간쑤 省 둔황 時 )에서 이고 (李暠)가 叛亂을 일으켜 西域 大部分을 喪失하여 北凉의 勢力은 크게 弱化되었다.

短業은 저거몽손의 힘을 두려워하여 저거몽손을 代身하여 自身의 部下 馬券(馬權)을 漿液太守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저거몽손의 힘에 밀려 馬券을 處刑해야만 했다.

이로 因해 不滿을 품은 저거몽손은 401年 , 저거男性을 推戴하여 謀反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저거男性이 이를 拒否하였다. 이에 저거몽손은 短業에게 저거男性이 叛亂을 일으키려 한다고 謀陷하였으며 短業은 저거男性을 處刑하였다.

저거몽손은 短業이 저거男性을 處刑한 것을 빌미로 群衆을 煽動하였고 軍隊를 모아 短業을 攻擊하였다. 結局 短業은 敗北하여 사로잡혔고 나머지 목숨을 哀乞하였으나, 저거몽손이 마침내 短業의 목을 베었다.

評價 [ 編輯 ]

"短業은 儒學者로 平素에 어른스러운 사람이었지만 다른 權謀와 策略이 없고 威嚴으로 禁令을 施行하지 않아서 部下들이 命令을 제멋대로 하고, 더욱이 점치는 것과 巫覡(巫覡)을 믿었기 때문에 敗北하기에 이르렀다."

? 司馬光(司馬光)

參考 文獻 [ 編輯 ]

前 代
-
第1代 北凉
397年 ~ 401年
後 臺
저거몽손 (沮渠蒙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