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漢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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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漢山
南漢山
南漢山 外姓에 있는 望樓
最高點
高度 522 m (1,713 ft)
지리
남한산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남한산
南漢山
南漢山의 位置
位置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京畿道 光州市 南漢山城面 산성리, 檢福利, 불당리
城南市 中院區 은행동, 상대원동
河南市 항동, 上司창동
서울特別市 松坡區 마천동 一部(淸凉山)

南漢山 (南漢山) 은 京畿道 光州市 南漢山城面과 서울特別市 松坡區 마천동 一部에 걸쳐 있는 山이다. 주장산(晝長山), 일장산(日長山)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 私的 第57號로 指定된 南漢山城 이 位置한다.

南漢山은 一見 平凡한 山처럼 보이지만 山속이 廣大한 盆地 로 되어 있고 밖으로는 險한 傾斜를 이뤄 天惠의 要塞地로 評價되고 있다.

또한 淸凉山 482.6m, 罰俸 515m, 한封 418m, 검단산 520m [1] 으로 이어지고 있어 山勢의 區別이 模糊하다.

山城은 正確히 말하면 청량산과 南漢山에 걸쳐 있다는 것이 맞는 表現일 것이다. 청량산과 같이 南韓山脈의 地脈으로 分類되고 있다.

張警査(長慶寺:京畿文化財資料 15) 等의 査察이 있다. 酸性 北西쪽으로 淸凉山 (482.6m)이라 불리는 山쪽으로 守禦將臺가 있고 現節祀(顯節祠:京畿有形文化財 4)·淸凉展(淸凉殿)·崇烈殿(崇烈殿)·演武館(演武館)·指數當(池水堂)·침過程(枕戈亭) 等이 있다. 城안에는 南漢山 法貨四肢와 不渡가 保存되고 있다. 京畿道 文化財資料 第86號로 登錄되어 있다.

이밖에 허물어져 가는 酸性의 南門을 重修하여 保存하였고 마을 안쪽으로 賃金이 납시어 활蔚 쏘았던 行宮터와 송암정(松巖亭)·款語情(觀魚亭)·迎春定(迎春亭) 같은 亭子 等이 保存되고 있다. 1971年 3月 南漢山城 과 함께 總 36.4km 2 道立公園 으로 指定되었다.

傳해오는 이야기 [ 編輯 ]

山의 四方이 平地로 둘러싸여 밤보다 낮이 길다고 하여 일장산(日長山) 或은 주장산(晝長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高朱蒙 의 셋째 아들인 온조 (溫祚)가 南下하여 백제국 을 일으킨 곳으로도 有名하다.

元來 온조 는 現在의 서울 풍납동 에 土城을 쌓고 慰禮城 理라 하여 백제국 을 세웠으나 地勢가 不安하고 狹小하여 이곳으로 遷都했다.

또한 봉암性이라고 하는 罰俸을 둘러싸고 있는 南漢山城 의 外城에는 天惠의 要塞답게 山勢가 險해 丙子胡亂 淸太宗 과 淸軍이 이곳에서 陣을 친 다음 戰鬪는 하지 않고 人造와 朝鮮軍이 避身해 있는 南漢山城 을 내려다보면서 降伏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傳說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同門은 좌익문, 序文은 우익문, 南門은 지화문, 北門은 전승문이라고 부르는데 얼마나 守護에 對한 念願이 어려 있는지 只今도 느껴지는 듯하다.

山行코스 情報 [ 編輯 ]

南漢山城 의 最高峯인 南漢山(522m)은 서울, 분당 等 首都圈 南部 地域 住民들에게 人氣 있는 해맞이 場所다. 現在 城안에 住民들이 살고 있기에 學校와 마을이 꾸며져 있고 道路가 酸性 안쪽까지 이어져 있어 接近이 쉽고 山行도 크게 힘들지 않다. 日出을 본 뒤 酸性을 따라 이어지는 山길을 타고 各 地域으로 連結되는 山行도 可能하다. 가벼운 차림으로 挑戰해도 좋을 해맞이 山이다. 남한산성道立公園은 城郭 一圓 全體가 史跡 第57號로 指定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混同하고 있듯이 南漢山城 銀 두個의 山에 걸쳐있는 酸性이다. 남한산성의 代表的인 봉우리는 守禦將臺가 있는 淸凉山 (482.6m)이고 地形圖上의 南漢山城 最高峯은 39.4m가 더 높은 南漢山(522m)이다. 어느 곳이나 日出을 鑑賞하는 데는 支障이 없으나 아무래도 最高峯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 마련이다.

山行은 酸性 內部의 終點에서 北門으로 곧바로 올라 東將臺를 거치면 短時間에 頂上에 설 수 있다. 山行時間이 1時間도 안 되는 짧은 距離다. 運動量이 不足하다고 느끼는 이들은 城南市 方面의 南漢山城 電鐵驛에서 山行을 始作해 南門~淸凉山~序文~北門~東將臺~頂上 코스를 利用해도 좋다. 下山길로 이 코스를 利用하는 것도 無難하다.

한便 다른 山行길로 잠실역에서 河南가는 버스를 타고 춘궁동 西部農協 앞에 내려 南漢山의 첫 番째 봉우리인 客山(292m)에 오른다. 客山은 南漢山으로 連結되는 작은산이다. 이곳에서는 北東쪽으로 미사리와 漢江, 예봉산이, 그리고 北西쪽으로는 客山稜線과 맞은便 말발굽模樣의 金巖山, 異性酸 稜線 사이의 하남시가 내려 보인다.

南漢山 罰俸(515m)은 罰俸暗門에 連結된 南漢山城 의 一部이다. 暗門 밖에서 이 바위를 보면 벌처럼 생겼다하여 罰俸이라 한다. 丙子胡亂 淸太宗 이 定期가 서려 있는 罰俸을 깨트려야 酸性을 陷落시킬 수 있다 하여 이 바위를 깨트리고 酸性을 굴복시켰다는 傳說이 있다. 罰俸은 海拔 515m로 南漢山城 의 守禦將臺(497m)보다 높기 때문에 南漢山城 의 西쪽 內部와 東쪽 城壁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丙子胡亂 當時 이 地域을 淸나라 軍에 빼앗겨 敵이 性 內部의 動態를 쉽게 把握할 수 있었으며, 火砲로 城안까지 砲擊할 수 있었다.

벌봉암門을 지나면 最近 復元된 봉암成果 봉암城門이 나온다. 北門과 南漢山城 안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빠른 내림길人 성안의 現節祀를 거쳐 이곳에서 鍾路라 불리는 곳으로 내려가는 길을 만난다. 現節祀를 지나면서 南漢山城 안의 飮食店들을 볼 수 있다. 南漢山城 안의 鍾路에서 마을버스 9番을 타면 8號線의 남한산성 入口驛에 갈 수 있다.

山 周圍가 平地여서 낮이 길다는 南漢山은 서울을 지키는 4代 요새 中 하나인 南漢山城 (史跡 第57號)으로 有名한 山이다. 河南市 中村 入口나 枯骨 [2] 終點에서 景致가 좋은 法貨癌터를 지나, 暗君(岩群)李 빼어난 罰俸(頂上으로 南漢山에서는 흔치 않은 암봉(岩峰)이다)에 오르고 난 後는 城壁을 따라 걷게 된다. 山行을 겸한 私的純禮이다. 丙子胡亂의 屈辱이 되새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南漢山城 에서 가장 華麗하고 雄壯한 모습을 자랑하는 守禦將臺와 淸凉當, 침卦情 等을 들러 山行을 마친 後에도 南漢山城 歷史觀, 天主敎 殉敎聖地, 萬海記念館, 망월사, 張警査, 開元寺 等 査察, 武術을 硏磨하던 演武館 等 들러볼 곳이 많다. 歷史敎育을 겸한 家族山行地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南漢山城 外壁의 모습

서울쪽에서 가는 方法도 있다. 地下鐵 5號線 마천역 1番 出口로 나와 10餘 分 가면 남한산성 入口에 이른다. 여기서 南韓천藥水터까지는 迷路 같은 골목과 작은 고개를 넘어 40分쯤 걸린다.

藥水터는 넓은 平地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시원하게 藥水 한 盞을 들이켜고 제법 가파른 傾斜를 30餘 分 오르면 鬱蒼한 소나무숲을 通過해 淸凉山(482.6m) 頂上 아래 酸性 三거리에 닿는다.

三거리에서 酸性을 仔細히 보면 개구멍처럼 작은 巖門이 보인다. 暗門(暗門)은 大門을 달지 않고 偵察兵들을 내보냈던 門이다. 옛날에는 돌로 막아 뒀다고 한다. 허리를 굽혀 기다시피 通過하면 그 옛날로 돌아가는 氣分이다. 하지만 막상 들어서면 울긋불긋 登山服 차림의 사람들로 왁자지껄하고 널찍한 鋪裝道路가 기다리고 있다.

本格的으로 酸性길을 따르자마자 淸凉山 頂上에 자리잡은 守禦將臺를 만난다. 本來 單層으로 지은 것인데 英祖 27年(1751)에 2層 樓閣을 增築했다. 層間 높이는 낮지만, 야무지게 버티고 선 南漢山城 의 總指揮部다. 守禦將臺에서 西門으로 가는 길은 소나무와 城郭의 奧妙한 屈曲이 水平과 垂直으로 어우러져 있어 발걸음을 즐겁게 한다.

南漢山城 은 本性의 길이가 9km, 甕城은 2.7km로 고기 비늘처럼 잘 쌓았다. 18世紀 復元 記錄인 重정남한紙(重訂南漢志)를 따라 最大限 原形 그대로 復元했다고 한다.

序文은 丙子胡亂 當時 朝鮮 仁祖 淸나라 에 降伏하러 나갔던 門이다. 城門이 낮아 머리를 숙여야 했고, 길이 가팔라 말에서조차 내려야 했다고 傳해진다. 西門을 지나면 다시 巖門이 나오는데, 그곳으로 나가면 연주봉甕城이 이어진다. 甕城은 城門을 保護하고 城壁을 기어 오르는 敵을 側面에서 攻擊하기 위한 突出된 防禦施設이다. 普通 平地 邑城에 主로 設置하는데, 山城으로는 남한산성이 唯一하다고 한다. 연주봉甕城 頂上에 서니 서울 市內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언덕에 자리 잡은 북장대地(北將臺址)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長官이다. 山城 안의 나무들은 마을 住民들이 ‘金林組合’을 만들어 順産원을 두고 盜伐을 막아 保護한 德澤에 只今처럼 健康하게 살아 남았다고 한다. 東將臺暗門에서 罰俸으로 이어진 길은 南漢山城 最高의 傑作이다. 人跡이 뜸한 길은 順하면서 호젓하고, 길섶 兩쪽으로 허물어진 봉암산性이 쓸쓸한 雰圍氣를 돋운다.

다시 東將臺暗門으로 돌아와 15分쯤 내려가면 작은 巖門이 보일 듯 말 듯 숨겨져 있다. 이 暗門 밖이 張警査신지甕城이다. 悠長하게 曲線을 그리는 甕城 너머로 잘 생긴 光州의 山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제법 急傾斜를 타고 내려오면 張警査를 지나고, 同門 아래에서 道路를 만나면서 山行이 끝난다. 松坡區 마천동 남한산성 入口~南韓千藥水~守禦將臺~同門 코스 約 11km, 5時間假量 걸린다. [3]

이렇게 이곳을 가는길은 여러 갈래이지만 또다른 山行으로 좋은 길은 中部高速道路에서 만나는 길, 南漢山城 으로 가는 308番 地方道다. 이어 ‘禮堂’ 食堂 건너便으로 里程標가 보이고, 다시 山길이 이어진다. 20分쯤 가파른 된비알을 오르면 盧赤山 正常. 以後 稜線이 지루하게 이어지다 갑자기 오래된 城壁이 나타난다.

마침내 南漢山城 의 領域으로 들어선 것이다. 全혀 期待하지 않았던 참이라 반가움이 더욱 크다. 平地같이 부드러운 酸性길을 따르면 한봉성을 알리는 里程標를 만난다. 한봉성(漢峰城)은 봉암性(蜂岩城)과 함께 남한산성을 保護하는 外姓(外城) 中 하나다.

한봉성을 지나면 커다란 癌門을 통해 山城 안으로 들어가고 이어 봉암性을 따르게 된다. 한봉성과 봉암性 一帶는 옛 절터처럼 애잔한 雰圍氣가 넘쳐나는 좋은 길이다. 이어 남한산성에서 가장 큰 바위인 罰俸에 올라서면 검단산과 용마산 줄기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지나온 山줄기를 바라보는 맛은 縱走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特權이다.

罰俸에서 호젓한 길을 따르면 守禦將臺 건너便, 東將臺暗門을 통해 남한산성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제는 하산만 남았다. 張警査신지甕城에서 저물어 가는 山河를 바라보고, 느긋하게 내려오면 張警査와 同門을 次例로 만나면서 山行은 끝이 난다. 버스停留場으로 가는 길, 張警査의 梵鍾 소리가 어둑어둑한 하늘에 긴 餘韻을 남긴다. [4]

南漢山城 은 서울 松坡區 京畿道 河南市 , 光州市 , 城南市 等 4個 地域에 걸쳐 있어 登山路가 거미줄처럼 많다. 그 中 서울 松坡區 마천동에서 守禦將臺(守禦將臺)에 올라 酸性을 타고 序文~北門~東將臺暗門에 이르고, 여기서 眺望이 좋은 罰俸(봉암·515m)을 다녀와 同門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아 보자. 이 길은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고, 酸性에 서린 歷史의 痕跡도 反芻할 수 있다.

  • 河南市 A코스 (約 3時間20分) 하남시 춘궁동 西部農協 - 客山(292m) - 南漢山罰俸 - 暗門 - 北門 - 序文 - 守禦將臺 - 어정약수 - 침卦情 - 酸性終點
  • 河南市 B코스 (約 3時間15分) 河南市 枯骨終點 - 法貨癌터 - 南漢山罰俸 - 暗門 - 北門 - 序文 - 守禦將臺 - 어정약수 - 침卦情 - 酸性終點
  • 河南市 C코스 (約 1時間30分) 河南市 中村入口 - 고개三거리 - 280稜線三거리 - 南漢山罰俸(上行 片道)
  • 이밖에 서울市 송파구 거여동과 京畿道 성남시에서 가는 方法이 있다.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南漢山城 道立公園 登山路探訪 - 全體指導” . 2017年 9月 4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7年 5月 23日에 確認함 .  
  2. 枯骨은 춘궁동, 항동, 上司창동, 下士倉洞, 교산동을 아루르는 地域名稱으로, 光州官衙가 있던 곳이라는 意味에서 '古邑'으로 불리다가 '고고을'을 거쳐 '枯骨'로 變遷된 것으로 推定된다.
  3. 진우석 旅行專門作家 (2009年 2月 19日). “南漢山城 序文~同門” . 서울新聞 . 2010年 5月 15日에 確認함 .  
  4. 진우석 旅行專門作家 (2010年 3月 11日). “검단산~南漢山 宗主” . 서울新聞 . 2010年 5月 15日에 確認함 .  

參考 文獻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