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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州 영모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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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州 영모情 (羅州 永慕亭)은 大韓民國 全羅南道 羅州市 다시면 회진리에 있는 建築物이다. 1987年 6月 1日 全羅南道의 記念物 第112號 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영모情은 임붕 (1486∼?)李 中宗 15年(1520)에 지은 亭子로 처음에는 그의 號를 따서 귀래정 이라 하였으나 明宗 10年(1555)에 後孫이 다시 지으면서 영모情 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또한 林崩의 孫子인 朝鮮時代 名文章家 百號 林悌가 詩를 짓고 사람을 사귀었던 곳이기도 하다.

只今 있는 建物은 1982年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建物은 앞面 3칸·옆面 2칸 規模로, 지붕은 옆面에서 볼 때 여덟 팔(八)字 模樣인 八作지붕이다. 왼쪽 1칸은 溫突房, 오른쪽 2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영모情은 比較的 오래前에 지었고 程子의 建築 規範을 보여 주고 있다.

現地 案內文 [ 編輯 ]

귀래정공 임붕(林鵬, 1486~1553)은 者(字) 衝거(沖擧), 號(號) 귀래정으로 文科에 及第, 벼슬이 承旨를 거쳐 慶州府尹에 이르고 光州牧使 在任 中 作故하신 분인데 文學과 德望으로 世上에 이름이 높았다. 공의 父親 參判公(參判公) 휘(諱) 坪(枰)께서 돌아가심에 이 자리에서 居廬(居廬)를 하시고 이곳에 亭子를 세울 뜻을 가졌으나 미처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시었다. 그때 共의 子弟들 中에 맏 아드님인 將帥功 휘(諱) 益(益)은 돌아가신 뒤라 精子공(正字公) 휘(諱) 福(復)李 竊盜공 휘(諱) 陳(晉), 僉知공 휘(諱) 몽(蒙)과 함께 亦是 이 자리에서 거려하여 3年 喪期를 마친 다음 드디어 이 亭子를 세웠다. 元來 建物은 丁酉再亂 時(1597) 消失되었던 바 光海君 14年(1622) 重建했으며 以後 累次 補修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只今도 每年 陰曆 10月 1日 이곳에서 羅州 林氏 大宗中의 朔晦가 열리고 있다. 이 亭子는 回診 마을을 옆으로 하고 榮山江을 굽어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建物의 構造는 기와 八作지붕에 4街 3間인데 西便으로 1間은 房, 나머지 2間은 大廳이다. 여기는 예로부터 名勝으로 이름이 알려져 찾는 이들의 발길이 잦았으며, 이 亭子를 두고 읊은 詩篇들 또한 많이 傳한다. [1]

各州 [ 編輯 ]

  1. 現地 案內文 認容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