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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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오
出生 1967年 1月 27日 ( 1967-01-27 )
全羅北道 井邑市
性別 女性
國籍 大韓民國
學歷 중앙대학교 文藝創作學科 學事
職業 記者
活動 期間 1991年 ~

김대오 ( 1967年 1月 27日 ~ )는 大韓民國 記者 이다. 1991年 言論界에 進出한 以來 스포츠 新聞, 女性雜誌 等 演藝 記事를 다루는 거의 모든 媒體에 몸담았다. 演藝界에는 배국남 記者, 김대오 記者, 徐昞基 記者 等 影響力있는 演藝 記者 3人의 이름을 組合한 ‘배때(大)기’라는 造語(造語)가 널리 퍼져있기도 하다. [1] [2] [3]

學歷 [ 編輯 ]

媒體 經歷 [ 編輯 ]

活動 [ 編輯 ]

演藝 저널리즘 具現 [ 編輯 ]

2003年 11月 創刊된 노컷뉴스 민경중 部長과 2004年 새로 擴充된 放送演藝팀의 김대오 팀長 主導로 演藝 저널리즘 에 關한 實驗을 했다. 旣存의 煽情的 報道를 排除한 채 社會 問題라는 視角에서 演藝 記事를 다뤘고, 이니셜 報道를 삼갔으며, 演藝 産業을 특수한 領域으로 여겨 一般 記事보다 낮은 水準의 記者 倫理를 適用하는 慣行도 排除했다. 한便, 韓國自殺豫防協會는 無分別한 演藝人 自殺 報道가 一般人의 自殺 衝動을 부추길 수 있다는 點 때문에 2008年에 報道 準則을 提示한 바 있는데, 노컷뉴스는 演藝人 自殺 技士에 每番 '韓國自殺豫防協會의 報道 準則을 遵守합니다'라는 標語를 붙이며 演藝人 自殺 記事를 다룸에 있어 다른 言論社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위해 努力하였다. [3]

2011年 創刊된 오마이스타 는 김대오 局長의 主導로 저널리즘의 基本을 지키는 演藝 뉴스를 志向했는데, 김대오는 '個人的 復讐의 칼' 等이 되어버린 演藝 言論의 잘못된 報道 行態를 指摘하며 그런 演藝 言論 地形을 바꾸고자 努力하였다. [6] [7] [8] [9]

동방신기 問題 [ 編輯 ]

2009年 8月 14日 , '동방신기 事態를 통해 본 演藝 매니지먼트시스템의 問題와 代案 摸索' 緊急討論會가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會館에서 文化連帶 主催로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대오 노컷뉴스 放送演藝팀 팀長, 김원찬 韓國歌手協會 事務總長, 김은아 동방신기 팬클럽 會員 等 各界 人士 5 名이 參席해 동방신기 事態에 對한 自身의 見解를 밝혔다. 김대오는 세 名의 동방신기 멤버들이 SM엔터테인먼트를 相對로 專屬契約 效力停止 假處分 申請을 낸 것과 關聯하여 "동방신기가 맺었다는 13年이라는 契約期間에 準備生 期間과 軍服務 期間을 合하면 契約期間이 18年 以上이 되기도 한다. 言論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問題로 自殺試圖를 한 아이돌 멤버가 두 名이나 된다. 平凡한 學生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契約期間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境遇도 많다. (동방신기 事態는) 이미 豫見이 된 事案이다. 동방신기 멤버들이 맺은 契約도 苛酷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스타志望生들이 自身의 꿈을 抵當 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동방신기가 맺었던 것과 類似한 契約書에 사인하는 靑少年들이나 父母들은 또 나타난다. 第2, 第3의 동방신기가 나오지 말란 法은 없다"는 意見을 내놓았다. [10]

장자연 問題 [ 編輯 ]

2009年 3月 13日, KBS1 《9時 뉴스》는 이른바 < 장자연 文件 複寫本>을 公開했다. 當時 該當 文件의 原本을 撮影한 言論社가 두 곳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노컷뉴스 였고, 노컷뉴스 放送演藝팀 팀長은 김대오였다. 노컷뉴스는 KBS와 달리 文件 內容을 公開하지 않았고 代身 그 文件의 存在 事實만을 알렸다. 이에 對해 김대오는 文件 內容을 公開하는 것은 遺族이 決定해야 할 問題라고 判斷했고, 다만 文件의 存在에 對해서는 뉴스 價値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노컷뉴스 記事에는 장자연이 記入한 主民登錄番號와 支障 部分을 손으로 가린 文件 寫眞이 실렸다. 以後 김대오는 '장자연을 暴行한 嫌疑 等으로 不拘束 起訴된 장자연의 所屬社 代表 金 某 氏'와 '장자연 文件의 存在를 世上에 알려 名譽毁損 等의 嫌疑로 起訴된 某 企劃社 代表 兪 某 氏'와 關聯된 法廷에서 證人으로 採擇되기도 하였다. 2011年 3月 6日 , SBS <8 뉴스>는 이른바 <장자연 便紙>를 特種 報道했는데, 2年 前에 發見된 <장자연 文件>의 原本을 確認한 적이 있는 김대오는 國立科學搜査硏究院 의 筆跡鑑定이 있기 前에 이미 이 便紙들이 僞作임을 豫測하기도 하였다. 김대오는 <장자연 便紙 僞作 事件>과 關聯하여, "2009年에 이어 2年이 지난 只今까지 이러한 混亂이 反復되는 것은 莊子年 事件의 本質에 對한 疑惑이 말끔히 解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자연 氏가 남긴 文件의 模糊性을 勘案하더라도 警察과 檢察이 意志만 있었다면 장자연을 籠絡한 演藝界의 權力集團을 充分히 把握해낼 수 있었다. 搜査當局은 嫌疑點이 있는 權力層 人士들을 제대로 調査하지 않았다. 僞作 便紙같은 混亂이 反復되지 않기 위해서, 아니 무엇보다 演藝界 權力集團의 貪慾에 짓밟힌 장자연과 같은 演藝人이 다시 나오지 않기 위해서 只今부터라도 徹底한 再搜査가 必要하다"라고 論評하기도 하였다. [11] [12]

俳優 최진실 에 對한 輿論造作 [ 編輯 ]

김대오는 2010年 11月 20日 SBS 《그것이 알고 싶다》, 2013年 5月 24日 MBN 《아궁이》, 2014年 9月 30日 TV朝鮮 《大讚人生》, 2016年 10月 24日 채널A 《風聞으로 들었소》 等에 出演하여 최진실의 名譽를 毁損하는 行動을 했다고 主張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 根據를 正確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關聯 書籍 [ 編輯 ]

  • 이여영. 《一等이 아니어도 괜찮아》. 브레인스토어. 2010年. ISBN   9788994194127

各州 [ 編輯 ]

  1. 金相万. 오마이뉴스 '演藝 媒體' 創刊한다 .미디어오늘.2011年2月17日.
  2. 최성진. 進步 온라인媒體 ‘演藝뉴스’ 바람 .한겨레新聞.2011年4月19日.
  3. 이여영. “최진실氏 죽었을 때는 演藝 記者 된 거 正말 後悔했어요” .미디어오늘.2009年7月1日.
  4. 이대호. 오마이, 演藝뉴스 '오마이스타' 創刊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 韓國記者協會. 2011年 9月 7日.
  5. 조태성. 名作·巨匠의 숨겨진 이야기 들춰보기 .서울新聞.2011年1月6日.
  6. 김대오. "한성주, 이미숙 그리고...그 곁에 오마이스타가 있습니다" . 오마이스타. 2012年 8月 24日.
  7. 이정민·이미나. (特輯①)'소셜테이너' 김미화의 告白…"李 稱號, 負擔된다!" . 오마이스타. 2013年 2月 8日.
  8. 이정민·이미나. (特輯②)都合 '演藝 經歷 50年'…이들의 '演藝言論에 對한 앞談話' . 오마이스타. 2013年 2月 8日.
  9. 이정민·이미나. (特輯③)최진실을 비롯한 '나쁜 그들'…'그럼에도 삶은 살아가는 것' . 오마이스타. 2013年 2月 13日.
  10. 서유진. "동방신기가 물어야 할 違約金은 4000億원" .오마이뉴스.2009年8月14日.
  11. 이지현. 故 장자연 文件 最初 報道한 CBS 노컷뉴스 記者 證人 採擇 .노컷뉴스.2009年9月30日.
  12. 김대오. 장자연 僞作便紙,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오마이뉴스.2011年3月18日.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