槐山 미륵산性
(槐山 彌勒山城)은
忠淸北道
槐山郡
청천면
에 있는, 華陽洞 南쪽에 있는 낙영산과 성암部落 東쪽에 있는 道名山 中턱을 둘러싼 城터로 ‘도명산性’이라고도 한다. 1997年 12月 16日
大韓民國의 史跡
第401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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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陽洞 南쪽에 있는 낙영산과 성암部落 東쪽에 있는 道名山 中턱을 둘러싼 城터로 ‘도명산性’이라고도 한다.
只今은 무너져 本來의 모습을 確認하기 어렵지만, 現在 남아있는 壁은 길이 700m에 높이가 約 2m이다. 城 안에서 新羅 土器조각과 高麗 前期의 기와조각이 發見되었다. 또 建物터를 中心으로 陶器조각, 瓷器彫刻, 돌로 만든 절구, 숫돌이 發見되었는데, 遺物들의 性格으로 보아 高麗時代 때 쌓은 城으로 보인다. 이 城은 4가지 工法을 使用하여 쌓은 點이 特徵이다. 現在는 中心性과 바깥誠意 城壁이 部分的으로 남아 있다.
성안의 頂上附近 바위에
도명산 磨崖佛
이 陰刻되어 있고 문터, 建物터 8곳, 性 안팎으로 물을 통과시키는 裝置인 水門터, 우물터 4곳이 남아 있어 매우 重要한 遺跡이다.
現地 案內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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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城은 낙영산과 도명산의 頂上을 南北으로 하여 稜線을 따라 城壁을 쌓고 두 山의 頂上部分에는 自然巖壁을 利用하였다. 全體 둘레는 5.1km에 이르며, 石築 部分만도 3.7km가 넘는 大規模 城으로 句麗視臺 防禦用 酸性의 典型을 보여주는 性이다.
[1]
城壁은 自然石을 깨서 쐐기돌을 많이 使用하여 쌓고, 城壁 안쪽으로는 2~3段의 階段模樣으로 쌓아 高麗 後期에서 朝鮮時代로 이어지는 築造技術의 變貌를 잘 보여주고 있다. 城 안에는 여러 個의 建物터가 있고, 화양계곡과 사담溪谷, 度名骨 溪谷 쪽으로 門을 내었다.
[1]
이 城은 姓이 있는 山 이름을 따라 '도명산性'이라고도 불리며, 傳說에 依하면 홀어머니를 서로 모시려던 男妹가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고 누이는 城을 쌓아, 먼저 끝내는 사람이 어머니를 모시는 내기를 하였다하여 '男妹性'이라고도 한다.
[1]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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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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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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