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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陵 신복사지 三層石塔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本文으로 移動

江陵 신복사지 三層石塔

江陵 신복사지 三層石塔
(江陵 神福寺址 三層石塔)
(Three-story Stone Pagoda at Sinboksa Temple Site, Gangneung)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寶物
種目 寶物 第87號
( 1963年 1月 21日 指定)
數量 1期
時代 高麗時代
管理 江陵市
位置
강릉 신복사지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강릉 신복사지
江陵 신복사지
江陵 신복사지(大韓民國)
住所 江原特別自治道 江陵市 內谷洞 403-2番地
座標 北緯 37° 44′ 33″ 東京 128° 53′ 7″  /  北緯 37.74250° 東京 128.88528°  / 37.74250; 128.88528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江陵 신복사지 三層石塔 (江陵 神福寺址 三層石塔)은 江原特別自治道   江陵市 內谷洞 신복사지에 있는, 高麗時代 三層石塔 이다. 1963年 1月 21日 大韓民國의 寶物 第87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神福寺의 옛 터에 남아있는 塔이다. 神福寺는 統一新羅 때 범일국사(梵日國師)가 創建한 절로, 創建과 關聯된 說話가 傳해지고 있다. 卽 新羅의 한 處女가 우물에 비친 햇빛을 보고 그 물을 마셨는데 곧 아이를 배어 낳게 되었다. 집안 사람들이 아이를 내다버렸으나, 아이의 周圍로 빛이 맴돌아 怪異하게 여겨 다시 데려와 길렀는데, 그 이름을 犯(梵)이라 하였다. 범이 出家하여 僧侶가 된 後 故鄕에 돌아와 神福寺와 掘山寺(掘山寺)를 創建하였다고 한다. 創建 以後의 記錄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塔은 2層의 基壇(基壇)을 쌓고 3層의 塔身(塔身)을 올린 것으로, 各 部分의 모습들이 特異하다. 바닥돌의 윗面에는 蓮꽃이 엎드려 있는 듯한 模樣의 彫刻을 하여 둘렀고, 아래層 基壇의 4面에는 眼象(眼象)을 3個씩 새겨 넣었다. 塔身 各 層의 몸돌과 지붕돌은 各各 하나의 돌로 새겨 얹어 놓았다. 塔身에는 부처의 舍利나 佛經 等을 모셔두는데, 1層의 몸돌에 이를 安置하는 房인 龕室(龕室)模樣의 조각이 있다. 1層의 몸돌에 比해 2·3層은 갑자기 그 크기가 줄어들어 매우 얇다. 지붕돌 亦是 얇아서 귀퉁이끝은 치켜올림이 稀微하며, 지붕돌 밑面의 받침數는 3段이다.

꼭대기에는 드물게 머리裝飾이 穩全히 남아있는데, 各 部分의 높이에 비해 幅이 넓어 安定感을 준다.

塔의 앞쪽에는 한 쪽 무릎을 세우고, 두 손을 받치듯이 들고 있는 江陵 신복사지 石造菩薩坐像(寶物 第84號)李 있다. 이러한 모습은 같은 江原道 內의 平昌 月精寺 八角 區層石塔(國寶 第48號)과 비슷하여 이 地方의 特色이 아닐까 斟酌된다. 塔의 基壇과 몸돌의 各 層 밑에는 널돌로 괴임을 넣었는데, 이러한 樣式은 高麗時代에 자주 보이는 모습 中 하나이다. 또한 아래層 基壇에 眼象이 새겨진 것이나, 지붕돌 밑面의 받침酬價 3段으로 되어있는 點도 考慮 前期의 石塔樣式을 잘 따르고 있다.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