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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孝貞 (獨立運動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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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孝貞 (李孝貞, 1913年 7月 28日 ~ 2010年 8月 14日)은 日本 帝國 强占期 에 韓半島에서 活動한 社會主義系 勞動運動家이자 抗日運動家이다.

生涯 [ 編輯 ]

日本 帝國 强占期 活動 [ 編輯 ]

1913年 慶尙北道 奉化郡에서 獨立運動家 家門에서 태어났다. [1]

以後 京城府 로 올라와 同德女子高等普通學校 에 다녔다. 作家를 꿈꾸는 文學少女 李孝貞은 全國 書藝大會에서 優勝한 人災였다. 光州學生運動 이 일어나자 여기에 同調하여 박진홍 等과 함께 運動場으로 나아가 萬歲를 부르고 鍾路警察署 에 잡혀가기도 했고 3學年 때는 試驗을 拒否하는 白紙同盟을 主導해 無期停學當했다. 박진홍은 이 일로 退學당했다.

卒業 後 學院 先生을 하던 李孝貞은 東大門 밖 種연방직 女性勞動者들의 祕密 指導를 맡았다. 同德女高 切親인 박진홍 과 함께 이재유 가 指導하는 京城트로이카 에 加擔하여 勞動運動에 參與하였다. 京城트로이카는 1930年代 國內 左翼獨立運動의 中心이었다. 두 사람은 女性 勞動者를 組織하는 役割을 맡았다. 이를 위해 그들은 工場으로 들어갔다. 女性勞動者의 人權 向上과 反日 鬪爭을 勢力化하기 위해 ‘僞裝就業’했던 것이다.

1933年 9月 21日 , 種연방직 祭祀工場(鍾淵紡織 製絲工?)에서 罷業 鬪爭이 일어나자 李孝貞은 이재유에게 指導받아 女性 勞動者들을 說得하여 總罷業 을 指導하였다. 勞動爭議 擴大를 꾀해 工場 內 組織을 擴大하고 이를 土臺로 産業別 赤色 勞動組合을 結成한다는 計劃下에 罷業 鬪爭을 指導하였다. 種연방직 罷業 鬪爭 以後 1933年 10月 17日 工場 罷業을 指導한 嫌疑로 청량리에서 逮捕돼 東大門警察署에서 拷問을 當했다. 또 母校인 同德女高에 몰래 들어가 抗日檄文을 넣고 나오다 數次例 日本 警察에 逮捕돼 苦楚를 겪었다. 1935年 勞組活動 嫌疑로 붙잡혀 13個月間 西大門刑務所에 收監됐다. [2]

1935年 11月, 京城에서 이재유와 권우성 이 主導하여 組織한 '京城地方左翼勞動組合 組織準備會'에 加擔하여 同志 糾合과 抗日 意識 鼓吹에 注力하다가 警察에 檢擧되어 約 13個月間 서대문형무소에서 獄苦를 치렀다.

出所 後 李孝貞은 拷問 後遺症으로 치료받다가 蔚山의 寶城學校 敎師로 勤務했다. '敎員 勞組 事件'으로 2年間 投獄됐던 社會主義系 抗日運動家 박두복 과 婚姻하여 媤宅인 蔚山 에서 解放을 맞았다.

光復 以後 [ 編輯 ]

解放 以後 建國準備委員會 蔚山 支部에서 活動하였다. 解放 後 故鄕에서 敎師 生活을 始作했지만 男便의 左翼 活動 때문에 敎員職에서 쫓겨났다. 男便 박두복은 1945年 建國準備委員會 蔚山 代議員으로 活動하다가 後日 '남로당 事件'에 連累돼 收監되기도 했다. 6·25 戰爭 以前 西大門刑務所에 收監됐던 男便은 戰亂 中 越北했다.

李孝貞은 北韓을 選擇하지 않았다. 北韓 體制의 硬直性을 經驗한 革命同志와 親戚의 影響이 컸다. 그는 南韓을 選擇했지만 緣坐制의 굴레는 至毒했다. 子女 2男 1女와 함께 大韓民國에 남겨진 李孝貞은 '빨갱이 家族'으로 烙印 찍혀 生計를 어렵게 꾸려 가야만 했다. 1950年代 末 男便이 南派 間諜으로 活動하다가 거듭 越北한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오좌불 間諜事件 이다. [3]

다시 要視察 人物이 다시 된 李孝貞은 隨時로 査察 機關에 連行되어 拷問當하고 取調當한다. 令狀 없이 끌려가기를 數十 次例 反復하고 拷問으로 팔목이 부러지면서 抑鬱한 獄살이도 堪耐하여야 하였다. 1987年 ' 6.10 民主抗爭 '으로 民主化가 이뤄지자 李孝貞을 對象으로 한 査察도 수그러들기 始作한다. 老年에 李孝貞은 詩集 『回想』(圖書出版 慶南, 1989)과 『여든을 살면서』(도서출판 慶南, 1995)를 出刊하면서 文學人으로 지냈다.

2006年 大韓民國 行政府가 社會主義系 獨立運動家를 再照明하면서 先生은 93歲에 獨立有功者로 指定되어 建國褒章 을 받았다. 2010年 8月 14日 他界하였다.

各州 [ 編輯 ]

  1. 親庭 側 家門은 親家와 外家 모두 獨立運動家 家門으로 有名하다. 曾祖父 때부터 義兵將이 여러분 나왔고 是認 李陸史 도 李孝貞하고는 親戚 아저씨뻘 關係다. 以後 李孝貞을 包含해 社會主義 勞動運動家도 여러분 나왔다. ( 이종희 , 이종국 , 李丙琪 )
  2. “다·만·세 100年, 獨立에 목숨 건 두 女人…解放 뒤 不運했던 그들의 삶 [新年企劃]” . 京鄕新聞. 2019.01.22.  
  3. “[人物로 읽는 蔚山類似(148)]越北했던 박두복, 間諜으로 浸透했다 警察에 쫓겨 다시 北으로” . 經常日報. 2015.04.26.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作品 [ 編輯 ]

  • 『回想』(圖書出版 慶南, 1989)
  • 『여든을 살면서』(도서출판 慶南,1995)

같이 보기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