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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진의 ‘破砌’ 誕生地 京畿道 水原 華城|여성동아

連載記事

LITERATURE TRAVEL

이규진의 ‘破砌’ 誕生地 京畿道 水原 華城

平和가 깃든 새로운 世上 꿈꾸었던 百姓의 都市

글&寫眞·남기환 旅行作家

2015. 03. 05

明確하지 않은 理由로 世子의 자리에 있던 아비를 祖父의 손에 잃은 悲運의 王은 運命的이게도 너무나 뛰어난 君主였다. 權門勢家의 끊임없는 牽制와 숱한 暗殺의 威脅 속에서도 歷代 朝鮮의 王들 가운데 最高의 聖君으로 손꼽힐 만한 業績을 남긴 王, 離散. 王權과 목숨이 威脅받는 時間을 버티느라 不眠症에 걸린 王은 自身의 모든 꿈을 實現할 以上 都市를 꿈꾸게 된다. 그곳은 自身을 지켜주면서도 百姓은 選定의 洗禮를 받아 풍요롭기 그지없는, 그야말로 平和(破砌·Pace)의 都市였다.

새로운 世上을 만들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王은 선비의 服裝을 한 채 저잣거리를 둘러보는 일을 즐겼다. 볕이 유난히 뜨거웠던 어느 午後, 華城留守附議 長距離를 걷던 그는 사람들의 魂을 쏙 빼놓을 만큼 뛰어난 이야기 솜씨를 지닌 한 사내를 보게 된다. 그의 사람됨을 看破한 선비는 水原에 戶籍을 둔 이들을 特別 採用하는 過去가 곧 있을 거란 情報를 슬쩍 흘리고 사라진다. 대여섯 달 後 實際로 過去가 열리고, 2等과 큰 點數 差로 壯元을 차지한 이야기꾼 김태윤은 王을 謁見한 자리에서 선비의 正體를 뒤늦게 알아차리고 깜짝 놀란다.

半쪽 兩班이라는 出身 背景 때문에 수많은 冊을 讀破하고 뛰어난 文章을 가졌음에도 過去로 立身할 생각은 진작에 抛棄했던 김태윤과 正祖(1752~1800)의 關係는 이렇게 始作된다. 豫想했던 것보다 김태윤이 훨씬 더 깊고 넓은 學識을 지닌 事實을 알게 된 正祖는 태윤에게 莫重한 ‘試驗’을 또 한 番 내린다. 그것은 只今껏 없던 튼튼하고 아름다운 城을 쌓는 國家的 偉業을 태윤이 設計하고 進行하는 일이었다. 留學뿐만 아니라 西學(天主學을 中心으로 한 西洋의 科學 技術과 學問), 建築, 數學 等에 두루 밝은 태윤이야말로 正祖가 꿈꾸는 새로운 世上을 함께 열어줄 適任者였다.

여기에 正祖의 信任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또 한 名의 젊은이가 登場한다. 王의 護衛武官이자 朝鮮 最高 無關 家門의 아들인 차정빈. 몇 臺의 王을 모시면서도 政治的 中立을 지키며 信任을 얻은 그의 父親 次元일 外에는 武藝로 이길 者가 朝鮮에 없다고 알려진 그는 無關이면서도 學問의 水準이 相當했으며, 빼어난 容貌로 都城 百姓들과 調整 重臣들 사이에서 羨望과 時機를 한 몸에 받았다. 正祖의 軍事 改革 象徵인 壯勇營의 首長이면서 王命을 除外하고는 누구에게도 굽힘이 없는 얼음張 같은 차가운 性格도 世間의 話題거리였다.

그런 그가 특별하게 생각하고 보살피며 아끼는 單 하나의 사람은 유겸이다. 남모를 事緣을 안고 次元일의 大邸宅人 무원당으로 흘러들어와 正賓의 수발을 들며 사는 奴婢. 그러나 유겸은 여느 奴婢들과는 風貌와 雰圍氣부터 달랐다. 正賓은 마치 親兄弟처럼 그를 가까이 두고 待接(?)해주었고, 이는 무원당의 不文律이기까지 했다. 유겸은 그에 對한 報答인 듯 眞心을 다해 正賓의 시중을 들고, 무원당의 庭園을 아름답게 가꾸며 숨어 살고 있다.



小說은 王과 태윤, 그리고 正賓과 유겸을 中心으로 火星 築城과 華城留守附議 蕃盛, 그리고 當時 權勢를 휘두르던 老論과의 熾烈한 對立 等을 그려간다. 그런데 이야기의 큰 흐름을 쥐고 있으면서, 유겸과 태윤 그리고 正祖의 새로운 世上에 對한 꿈을 一貫되게 묶어놓는 要素가 있으니, 바로 ‘天主學’이다. 태윤은 立身하기 前 自身의 才能을 알아챈 上段의 大行首 者芸香을 통해 숱한 書籍을 耽讀하다 ‘西學’을 接하고 感化된 人物이며, 유겸은 胎生的으로 天主敎人의 집안에서 자랐고 司祭가 되는 꿈을 안고 살아간다. 正祖는 天主敎의 人本主義와 西歐의 科學 技術에 깊은 關心을 두며 태윤의 知識的 性向을 默認한다. 正賓은 이 모든 걸 알면서 王을 輔弼하고 유겸을 돌보는 人物이다.

그리고 이들의 앞날은 宗敎와 사랑 그리고 政治라는 主題가 婚材되면서 決코 順坦치 않은 時間에 휩쓸려가게 된다. 歷史는 政治의 틀로 셈해지기 마련이지만, 後날 그 時間을 돌이켜 記錄하는 태윤의 글은 時間 속에서 잊힌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을 일러주고 있다.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水原 華城의 正門인 長安門. 서울의 四大門과 다르게 北門인 長安門이 正門 구실을 한 것은 서울에서 내려온 王이 처음 當到하는 門이었기 때문이다.

‘열린 冊 읽기’의 즐거움, 歷史小說과 만나다

지난해 發表된 이규진의 첫 小說 ‘破砌’는 水原 火星이 築造되던 時點인 1794年 直前부터 完工 後 火星 一帶가 蕃盛하던 어느 時點까지, 小說의 事件들로 미루어 斟酌하면 1801年 辛酉迫害 즈음까지의 時間을 담고 있다. 事實 歷史小說이 갖는 長點인 無限한 想像力은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의 ‘作家的 自由’를 膳賜하곤 한다. 實存 人物들의 속내와 ‘어쩌면 그러했을 법한’ 事件을 加工해가며 興味를 더하지만 자칫 歷史的 事實을 誤讀하는 危險度 共存한다. 小說 ‘破砌’ 亦是 그 危險을 아슬아슬 넘나드는 作品인 듯하다.

于先 正祖와 天主敎의 聯關性이 그러하다. 歷史的으로 正祖는 性理學의 根幹을 굳건히 하면 西學은 自然히 消滅될 것이라는 自信感으로 執權 初期 ‘西學’에 對한 穩健策을 폈는데, 小說의 ‘왕’은 이보다 훨씬 더 깊고 애틋한 關心과 好感을 지닌 人物로 描寫된다. 甚至於 가까이 둔 이들이 天主敎人이라는 事實을 알고도 默認하며 敎理의 具體的인 部分까지 詳細히 알고 있을 程度다. 여기에 유겸의 出生 祕密에 正朝와 한 宮女의 因緣을 設定하고 있는데, 아무리 장르的 許容을 勘案하더라도 한 番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小說 ‘破砌’를 읽는 즐거움 亦是 여기서 비롯된다. 旣存 人物들에 對한 새로운 接近法과 感情 移入을 통해 讀者들이 興味를 느낄 만한 要素가 더 豐富해졌다. 어찌 보면 實存 人物의 이름과 當時의 歷史的 背景 等만을 따오고 小說의 中心이 되는 이야기의 相當 部分은 作家의 創作에서 비롯되다 보니 歷史小說이라는 장르가 가진 열린 構造를 限界로서가 아니라 豐盛한 이야기가 孕胎되는 出發點으로 삼은 惠澤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洪水 調節을 擔當하는 북水門人 華虹門. ‘破砌’에서는 天主敎徒였던 主人公 김태윤이 여러 宗敎的 象徵을 숨겨둔 곳으로 描寫된다.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1 八達山에서 出發해 鍊武臺를 오가는 화성행궁列車를 利用하면 水原 華城의 곳곳을 便하게 둘러볼 수 있다. 2 洞2砲樓와 桐2치 사이에 位置하는 鳳돈. 現存하는 奉化 施設로는 가장 發達된 形式이다.

同時에 ‘破砌’가 안겨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歷史小說답게 여러 情況들과 實際 歷史的 證據 사이의 差異點과 一致點을 하나씩 發見해 나가는 ‘知的 推理’에 있다. 于先 小說 어디에도 正朝와 거의 한 雙으로 聯想되는 그 사람, 丁若鏞은 登場하지 않는다. 代身 여러모로 보아 丁若鏞을 떠올리게 하는 人物인 김태윤이 火星을 設計하고, 正祖의 뜻을 받아 百姓을 복되게 하는 여러 民本主義 政策을 提案하는 이로 그려진다. 天主敎에 일찌감치 歸依한 點 亦是 丁若鏞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다.

여기에 김태윤이 火星 設計 當時 性 곳곳에 숨겨둔 것으로 描寫되는 여러 宗敎的 象徵도 興味롭다. 火星의 主要 施設 가운데 洪水 調節을 擔當하는 북水門人 ‘華虹門’의 水門이 7個인 理由를 天主敎의 7가지 成事(一生을 살면서 敎人으로서 履行해야 하는 7가지 儀禮들)에서 따왔고, 水門의 形象이 무지개를 닮은 理由는 舊約聖經의 一大 事件인 노아의 洪水 以後 하나님이 다시는 물로 벌하지 않겠다는 徵標로 무지개를 띄워 보여준 데서 비롯되며, 亦是 訪花隨柳亭의 亭子 樓閣이 十字로 된 것, 亭子 아래와 주춧돌 사이 甓돌에 86個의 十字形 무늬를 새긴 것 等에도 敎理는 어김없이 登場한다.

그리고 火星의 同門인 蒼龍文에 14個의 銃眼(性 밖의 敵을 向해 銃을 쏘도록 만든 구멍)을 둔 理由가 예수의 苦難을 象徵하는 14處를 말하는 點, 蒼龍文 안쪽의 攻擊型 돈대인 ‘東北空心墩’李 둥근 模樣인 點은 天主敎 미사에 쓰이는 聖體를 象徵한다는 것 等 華城 設計에 ‘信仰’李 매우 깊숙이 介入되었음을 ‘詳細히’ 일러주고 있다. 이러한 設定이 쉬 익숙하지 않다 보니, 歷史小說이라 해도 ‘좀 過하지 않나’ 싶은 讀者들도 적지 않겠지만, 조금만 好奇心을 갖고 接近해보면 實際 丁若鏞이 火星을 設計할 當時 앞서의 例들처럼 相當히 많은 宗敎的 象徵을 性 곳곳에 남겨두었음을 認定하는 資料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丁若鏞은 天主敎에 일찌감치 눈을 떠 洗禮까지 받았으며(세례명은 요한), 그의 삶에서 宗敎的 聯關性을 無視할 수 없다. 天主敎人임을 理由로 流配의 길에 오르기도 했다. 1801年의 辛酉迫害 以前에 背敎를 하고, 이 迫害 當時 황사영 等 周邊人들을 發告하는 等 그의 態度는 急變했지만, 적어도 火星 設計 當時만 해도 信心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一部 學者들은 그가 末年에 背敎의 罪를 뉘우치며 살아갔다고도 傳한다.

勿論 丁若鏞을 두고 天主敎와의 聯關性을 剛하게 否定하는 漢文學이나 韓國史 專門家들도 적지 않다. 特히 華城 設計에 宗敎的 象徵이 폭넓게 適用됐다는 點은 더욱 펄쩍 뛸 만한 일일지 모른다. 結局 火星에 남겨진 丁若鏞의 痕跡은 이를 證明할 飼料가 없으니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多分히 달리 解釋될 可能性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天主敎界의 境遇 性 안팎에 담긴 宗敎的 象徵과 더불어 主要 迫害 當時 숱한 信者들이 목숨을 잃었던 現場이라는 點 等을 理由로 火星을 重要한 天主敎 聖地들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어 興味롭다.

이렇듯 ‘破砌’는 小說의 主要 時空間的 背景은 正祖 時代와 水原 華城에 두고 있긴 하지만, 事件과 人物을 한 줄기로 엮어가는 이야기의 짜임은 宗敎에 依支하고 있다. 平和를 뜻하는 라틴語 ‘破砌(Pace)’를 題目으로 지은 것도 그러하고, 天主敎의 敎理와 이에 感化된 이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前面에 내세운 點도 그러하다. 그래서 오히려 宗敎小說이라는 특정한 장르에 스스로를 가두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또한 4百30쪽이 넘는 厖大한 分量에 比해 登場 人物의 規模가 단출한데, 이는 이야기 構造에 集中力을 불어넣고 人物의 劇的인 狀況을 限껏 끌어 올려주는 長點을 지니지만 劇 中 人物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고 있는 듯한 아쉬움을 남긴다.

世界 城郭 建築士에서도 돋보이는 酬酌을 만나는 길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1 外部의 動向을 監視하는 4個의 敵對 가운데 하나인 北東敵對. 2 水原 華城의 북水門人 華虹門 東쪽에 隣接한 높은 벼랑에 세워진 訪花隨柳亭. 精巧한 아름다움으로 注目받는 곳이다.

우리나라에는 ‘性(城)’이라고 할 만한 造形物이 그다지 많지 않고, 或如 있더라도 그 痕跡만 겨우 남아 現代的인 建築 技法에 推測을 더해 어설프게 復元한 것이 大部分이다. 이에 反해 水原 華城은 비록 1975年부터 1979年 사이 復元을 한 것임에도 不拘하고 築城 當時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우리나라 最高의 建築物 가운데 하나로 評價받는다. 그러나 지난 1997年 유네스코 世界文化遺産 登載 當時, 現代에 復元했다는 點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고 한다. 그런 審査團의 마음을 單番에 사로잡은 것은 規格과 建物의 特徵, 材料의 加工과 公法, 人力과 豫算의 投入 等 華城 築造의 ‘모든 것’을 그림과 數値 等의 記錄으로 남긴 ‘華城聖域儀軌(1801)’였다. 이처럼 正確한 記錄에 따라 만든 것이니 現代에 復元됐더라도 그 價値는 如前하다는 意味로 떠난 곳이 ‘破砌’의 現場인 ‘華城(華城)’이다.

水原 華城은 水原 都心을 旅行하는 동안 어디서건 한 番 異常은 마주하는, 水原의 象徵과도 같은 곳이다. 全 世界 18世紀 城郭 建築物 가운데서도 이처럼 아름답고 科學的인 곳은 드물다고 讚辭를 받은 5.52km의 이 城은 正門인 長安門(北門)과 蒼龍文(同門)·화서문(序文)·팔달문(南門) 等 4個의 大門을 두고 4個의 높다란 監視대인 敵對(敵臺), 城 밖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와 監視와 攻擊을 容易하게 한 치(雉), 城壁을 따라 或은 城壁 안쪽에 높게 쌓은 攻擊型 構造物인 4個의 空心墩, 5個의 砲樓 等을 두루 갖춰 軍事的으로 매우 效果的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效率性을 極大化하면서도 外觀이 아름다워 “性이 아름다워 敵이 攻擊할 意志를 잃고 두려워하게 만들라”는 正祖의 意志를 잘 反映하기도 했다.

水原 華城은 城郭을 따라 크게 한 바퀴 걸어서 旅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만큼 秀麗한 建築美를 자랑한다. 大門, 齒와 空心墩, 그리고 城 안의 여러 樓閣과 訓鍊 施設 等을 하나하나 다 챙겨 본다면 하루를 꼬박 걸어도 不足할지 모른다. 이 旅行의 出發點은 어디서건 상관없지만, 수원역에서 接近한다면 水原 華城의 南門인 팔달문에서 始作하면 조금 더 便하다. 팔달문에서 始作해 南치와 南浦루, 그리고 八達山 줄기를 따라 비죽이 난 西南角樓에서 다시 西南値로 이어지는 길인데, 조금 가파르기는 하나 水原 火星이 元來의 地形을 얼마나 卓越하게 活用하고 있는지 온몸으로 體驗할 수 있다. 卽, 우리나라의 여러 城들은 邑城(城郭 안에 마을이 形成된)이나 酸性(마을의 機能은 없이 防禦와 待避 目的) 等 둘 中 하나의 구실만을 했는데, 水原 華城은 八達山의 山勢를 그대로 活用하는 한便, 北西쪽은 平地로 이어지게 지은 山城과 邑城의 特徵을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砲樓와 치 等에서 軍事 施設인 銃眼(銃眼)과 懸案(懸眼) 等과 더불어 堅固한 誠意 面貌를 더듬어가는 동안 城壁 너머 시원하게 펼쳐지는 水原 市內의 모습은 사뭇 都市를 새로운 風景으로 다가오게 한다. 이렇게 西南쪽을 둘러보다 보면 八達山 頂上의 樓閣인 西將臺에 이른다. 王이나 將軍이 指揮하기 위한 곳으로 세워진 望樓이자 指揮所인데, 果然 이곳에서는 火星 一帶와 水原의 風景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높은 建物이 많지 않았을 2百20餘 年 前에는 더욱 卓越한 展望을 膳賜했을 것이다.

旅程은 序文인 화서문과 西北空心墩을 지나 水原 華城의 正門인 北門, 長安門으로 이어진다. 서울의 四大門과 다르게 水原 華城은 北門이 正門 구실을 하는데, 그 理由는 서울에서 내려온 王이 처음 當到한다는 點을 생각해보면 쉽게 理解가 된다. 特히 불룩하게 城 밖으로 模樣을 낸 甕城 構造는 우리나라 城郭에서 보기 드문, 攻擊과 防禦 모두에 容易하면서 바람을 막는 구실까지 하는 매우 科學的인 施設이다. 長安門을 비롯해 主要 四大門은 이러한 甕城을 둘러 美學的인 完成度를 높였다. 水原 華城을 象徵하는 많은 寫眞에 단골로 登場하는 곳이 바로 長安門이다.

長安門 옆 北同胞루 아래로 華虹門과 東北角樓인 訪花隨柳亭이 이어진다. 一一이 水原 華城을 다 챙겨 볼 겨를이 없는 旅行者들이 長安門을 中心으로 그 周邊을 둘러보고 가는 것도 長安門과 東北角樓, 華虹門 等이 유난한 魅力을 내뿜기 때문이다. 華虹門을 넘어 수원천을 건넌 旅程은 軍士들이 訓鍊을 하던 鍊武臺와 優雅하고 堂堂한 外觀이 視線을 사로잡는 東北空心墩으로 向한다. 空心墩 亦是 水原 火星이 아니고서는 우리나라에서 쉬 보기 힘든 城郭의 構造物인데, 우뚝 솟은 威容과 美麗한 外觀은 正말이지 敵들도 넋을 잃고 봤을 것이 분명하다는 感歎이 절로 들 地境이다. 이윽고 小說에서도 登場한 蒼龍文(同門)을 지나 東便을 푸근히 감싸는 城郭을 따라가면 出發點이었던 八達門으로 되돌아온다.

事實 이 水原 華城을 따라 오로지 걸음으로 모두 둘러보고 헤아려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앞서 言及했듯 性은 團地 要塞의 役割이 아니라 華城留守部라는 새로운 都市를 둘러서 百姓을 安全하게 保護하려는 目的으로 지어졌기에, 當時 都市 하나를 넉넉히 감쌀 程度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西將臺 아래, 行宮 위에서 ‘화성행궁列車’라는 移動 手段을 運行하고 있어 水原 華城 觀覽에 도움을 준다. 當然히 아이들에게 人氣 滿點이고, 性 안팎을 오가며 西쪽에서 東쪽에 이르는 城郭의 곳곳을 便하게 둘러볼 수 있다. 列車의 終着點에 이르러 鍊武臺 한쪽에 마련된 鞠躬體驗場에서 활쏘기도 體驗해볼 수 있으나, 워낙 水原 華城을 찾는 이들이 많다 보니 週末이면 鞠躬을 體驗해보기가 如干 어려운 일이 아니다. 城郭 안便宜 너른 들판은 봄이면 푸른 잔디가 올라 그림같이 푸근한 丘陵이 펼쳐지는 듯한 風景까지 膳賜할 것이다.

現實과 理想鄕의 境界로 남았던 城壁

水原 華城은 그 自體로 빼어난 建築物이지만 그보다 正祖가 꿈꿨던 새로운 世上의 實在와 마주하는 妙한 感動을 傳하는 곳으로 더 意味 있을 것이다. 黨派 政治를 일삼고 王權을 威脅하는 이들이 득실대는, 그리고 抑鬱하게 죽은 아비의 記憶이 트라우마로 남은 漢陽을 벗어나 百姓이 國家의 든든한 보살핌 속에서 자유로이 商業과 生業에 從事하며 풍요롭게 살아가는 理想的인 ‘新都市’가 城邑 안에서 試圖됐던 것으로 傳해진다. 强力하면서도 暴壓的이지 않은 王權이 百姓을 먼저 向하는 마음으로 다져지고, 그야말로 사람의 삶이 먼저인 평화로운 世上. 小說 ‘破砌’가 말하는 理想鄕에 가까워지려 했으며, ‘平和’로 가득한 새로운 朝鮮을 세우기 爲한 ‘인프라’가 됐던 水原 華城은, 그때의 못다 이룬 王의 꿈을 곳곳에서 만나는 듯해 더 큰 애잔함으로 現在의 우리와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 Travel Information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水原 華城 觀覽 情報

觀覽 時間 夏節期(3~10月) 午前 9時~午後 6時

觀覽 料金 어른 1千원, 靑少年 7百원, 어린이 5百원

問議 八達門 賣票所(031-228-2765)

화성행궁

水原 華城 內에 正祖가 지은 行宮으로, 城 안의 最大 規模이자 代表 建築物로 꼭 둘러보기를 勸한다.

觀覽 時間 夏節期(3~10月) 午前 9時~午後 6時

觀覽 料金 어른 1千5百원, 靑少年 1千원, 어린이 7百원

問議 화성행궁 賣票所(031-228-4677)

화성행궁列車

運行 時間 午前 10時~午後 5時 50分(하루 12回 運行하며, 運行 時間을 꼭 確認할 것)

運行 區間 八達山(성신사) - 화서문 - 장안공원 - 長安門 - 華虹門 - 鍊武臺(3.2km)

搭乘 料金 어른 1千5百원, 靑少年 1千1百원, 어린이 7百원

問議 八達山 賣票所(031-228-4683), 鍊武臺 賣票所(031-228-4686)

綜合 利用 情報 問議 031-290-3600, www.swcf.or.kr

天主敎 聖地 巡禮 徒步 體驗

天主敎에서 水原 華城과 周邊의 옛 殉敎地 等을 聖地로 指定, 걸어서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運營하고 있다. 特히 ‘달빛 巡禮’라는 이름의 夜間 踏査 코스가 人氣 있는데, 촛불을 들고 自願奉仕者 或은 司祭의 案內로 水原 華城 곳곳에 남겨진 宗敎的 象徵을 찾아본다. 모두 3個 코스로 構成돼 있고, 每月 첫 金曜日마다 코스를 달리해 進行된다. 小說 ‘破砌’의 背景과 실마리를 보다 直接的으로 따라가볼 수 있는 旅行이기도 하다.

問議 031-246-8844, http://suwons.net

推薦 맛집 : 水原 통닭거리

프라이드치킨보다 ‘통닭’이라는 말이 더 그립다면 찾아가볼 만한 곳. 화성행궁 건너便 水原川邊에는 말 그대로 숱한 ‘통닭집’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맛집 거리를 채우고 있다. 통째로 튀겨내 바삭한 食感을 자랑하며, 고소하고 刺戟的인 냄새가 가득해 오히려 그 ‘덜 세련됨’이 반가운 곳들. 水原의 代表 맛집으로 손꼽히는 곳들이 여럿 있고, 통닭뿐만 아니라 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 等도 人氣 메뉴다. 價格은 1마리에 1萬4千원 線.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남기환 旅行作家

月刊誌 ‘Travel&Culture’ ‘CASA Bistro’ 等을 거쳐 旅行 專門地 ‘The Beetle Map’ ‘across’ 等에서 編輯長을 지냈다. 現在 編輯 디자인 業體 ‘아쉬’의 代表이자 美國系 流通業體 ‘코스트코’가 發行하는 멤버십 매거진 ‘The Costco Connection’ 韓國판의 編輯人이다.



디자인·박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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