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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畫 ‘追擊者’ 警察 卑下에 참을 수 없는 憤怒 느꼈다”|주간동아

週刊東亞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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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畫 ‘追擊者’ 警察 卑下에 참을 수 없는 憤怒 느꼈다”

유영철 잡은 前職 刑事 강대원이 본 ‘追擊者’의 虛와 實

  • 강대원 前 서울地方警察廳 機動搜査隊腸

    入力 2008-03-05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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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추격자’ 경찰 비하에 참을 수 없는 분노 느꼈다”
    映畫 ‘追擊者’가 話題라고 한다. 開封 13日 만에 200萬 觀客을 넘겼다는 言論報道가 나왔고, 프랑스 等 外國에 팔렸다는 消息도 들린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보는 大박 韓國 映畫가 아닐 수 없다.

    ‘追擊者’가 興行하면서 이젠 잊혀진 人物이 돼버린 ‘殺人魔 유영철’도 다시 世間에 話題를 뿌리고 있다. ‘追擊者’의 모티프가 된 事件이 바로 유영철의 連鎖殺人이기 때문이다.

    나는 2004年 7月, 서울地方警察廳 機動搜査隊(以下 기수대) 隊長으로 在職할 當時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유영철 連鎖殺人事件을 맡아 解決했다. 當然히 ‘追擊者’에 關心이 갈 수밖에 없었다. 都大體 어떤 映畫일까? 映畫 속에서 유영철을 잡았던 내 모습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하는 궁금症으로 映畫 開封을 기다렸다. 大韓民國 觀客 가운데 나보다 더 이 映畫를 기다렸던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映畫를 본 所感은 한마디로 ‘失望’이었다. 아니 正確히 말하면 憤怒가 치밀었다. 特히 “놈을 잡은 건 警察도 檢察도 아니었다”는 等의 警察 卑下 發言이 서슴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當時 超人的인 精神力으로 유영철을 逮捕해 陳述을 받아내며 事件을 解決했던 나와 同僚 刑事들의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 없었다. 映畫를 만든 나홍진 監督이 試寫會場에서 記者들에게 던진 “네, (警察을) 卑下했습니다”라는 말도 내 마음에 匕首로 꽂혔다.

    “前職 刑事가 잡았다는 設定은 지나친 픽션”



    映畫라는 장르의 特性은 認定한다. 픽션(fiction·#44224;繩?을 加味해야 劇의 緊張感을 높이고 興味를 더한다는 事實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實話에 바탕을 둔 映畫라는 點을 製作陣이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이 事件에 모든 것을 걸었던 刑事들이 있었고 그들이 어떤 苦悶을 했는지를 좀더 考慮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事件을 解決해야 한다는 信念 하나로 밤을 새워가며 搜査했던 나와 기수대 同僚들이, 그리고 緊迫했던 유영철과의 頭腦 싸움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이다.

    ‘追擊者’는 事件의 眞實을 많은 部分에서 歪曲하고 있다. 앞서 言及한 “놈을 잡은 것은 警察도 檢察도 아니었다”는 大使 外에도 “殺人魔 유영철을 1次 檢擧했지만 證據 不充分으로 풀어줬다”는 部分에 이르러서는 더 以上 말이 나오질 않는다. “前職 刑事가 追跡해 檢擧했다”는 式의 設定이야 映畫的 興味 要素로 본다고 해도, 그 事件을 搜査했던 刑事들이 如前히 活動하고 있는 狀況에서 이런 式의 貶毁는 자칫 韓國 警察의 이미지를 損傷시키고 全國 警察의 士氣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世界에서 몇 番째 안에 드는 治安 水準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位相도 땅에 떨어뜨릴 素地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굳이 4年이나 지난 事件을 再論하기 위해 펜을 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유영철은 富裕層과 女性에게 敵對感을 가진, 그야말로 社會不適應者였다. 2003年 9月 强姦 等 嫌疑로 服役 後 出所했지만 보름도 안 돼 서울 江南區 新沙洞의 單獨住宅에 侵入해 칼과 해머로 집에 있던 盧敎授 夫婦를 殺害한 人物이 바로 유영철이다. 그의 殺人行脚은 舊基洞 三成洞 東大門으로 이어졌고, 老弱者와 女性 等 8名이 殺害됐다. 出所 後 채 두 달도 안 되는 期間에 벌어진 ‘묻지마식 連鎖殺人’이었다.

    그의 犯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僞造한 警察官 身分證과 手匣을 가지고 警察官을 詐稱하고 다녔던 그는 不法娛樂室에서의 金品喝取는 勿論, 高級 乘用車를 運轉하는 女性을 相對로 한 金品喝取와 强姦도 저질렀다. 또 2004年 3月부터는 ‘職業女性’에 對한 輕蔑을 理由로 電話房과 出張마사지 女性들을 自身의 오피스텔로 誘引해 化粧室에서 殺害한 뒤 死體를 토막 내고 臟器를 꺼내 먹는 等 人間으로서는 想像할 수 없는 殘酷한 犯罪를 저질렀다. 警察에 檢擧된 2004年 7月까지 約 4個月에 걸쳐 그가 殺害한 職業女性은 12名에 達했다. 유영철은 죽은 女性의 死體를 切斷해 묵은 김치와 함께 묻는 緻密함도 보여 當時 搜査陣을 놀라게 했다.

    “영화 ‘추격자’ 경찰 비하에 참을 수 없는 분노 느꼈다”

    지난해 5月13日 金昇淵 韓華그룹 會長 報復暴行 事件의 搜査狀況을 브리핑하고 있는 강대원 前 서울市警 機動搜査隊腸.

    그러나 ‘追擊者’에서는 住宅街 殺人事件이 全혀 다뤄지지 않았다. 團地 出張마사지 女性 2名을 相對로 殺人行脚을 벌인 內容만 刺戟的으로 描寫돼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追擊者’는 前職 刑事인 報道房 業主가 犯人을 잡아서 警察에 引繼한 것으로 描寫하고 있으나, 事件 當時 유영철을 檢擧한 가장 큰 힘은 報道房 業主의 申告를 받고 발 빠르게 움직인 警察官들이었음을 强調하고 싶다.

    勿論 유영철 檢擧過程에서 報道房 業主가 큰 구실을 한 건 事實이다. 逮捕 當時 유영철을 처음 發見한 사람도 報道房 業主였다. 하지만 事件의 深刻性을 看破하고 總力을 다해 檢擧에 나섰던 西江地區隊 警察官과 기수대 隊員들이 없었다면 유영철 事件은 迷宮에 빠졌을 게 分明하다. 當時 나와 기수대 隊員들은 처음부터 유영철이 서울 西南部地域 連鎖殺人事件의 容疑者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事件에 臨했다.

    “犯人 檢擧 後 名譽 못 누리고 左遷 經驗 맛봤는데…”

    犯行 全貌가 밝혀지는 過程에서도 ‘追擊者’는 失望스러웠다. ‘追擊者’는 警察이 유영철을 證據 不充分으로 풀어준 뒤 2名의 女性이 犯人의 집 近處 가게에서 犧牲되는 것으로 그렸다. 이 過程에서도 報道房 業主는 유영철의 집으로 찾아가 格鬪 끝에 그를 檢擧해 犯行 全貌를 밝힌 것으로 描寫됐다. 그러나 이는 作家가 그려낸 픽션임을 넘어 當時 事件을 解決한 警察에 對한 冒瀆에 가깝다.

    當時 搜査팀은 期數대로 유영철을 押送한 뒤 犯行을 頑强히 否認하는 유영철을 相對로 엄청난 頭腦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 過程에서 決定的인 端緖가 된 것은 이미 言論에도 報道됐던 女性用 金발찌였다. 當時 유영철을 調査했던 나는 ‘어떻게 始作해야 하나’를 두고 苦悶하던 中 偶然히 유영철의 紙匣에 달려 있던 노란色 禁줄(18k)을 發見했다. 그리고 이를 端緖로 對話를 풀어갔다.

    강대원:이 쇠줄이 뭐냐?

    유영철:紙匣이 떨어지지 않도록 바지 끈에 묶어놓는 것입니다.

    淸溪川 황학동에서 1000원 주고 샀습니다.

    강대원:내가 只今 카드에서 1000萬원을 빼줄 테니 이거 1萬個만 사와라. 그러면 나 오늘 여기서 그만두고 돈이나 벌란다. 한 1億원 以上 벌 테니까.

    유영철:… 率直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강대원:惠化洞 住宅街 殺人 容疑者와 모습이 비슷하다. 뒷모습 좀 찍어보자.

    유영철:大將님 모든 것을 털어놓겠습니다. 어머님을 불러주시면 良心告白을 하겠습니다.

    “영화 ‘추격자’ 경찰 비하에 참을 수 없는 분노 느꼈다”

    映畫 ‘追擊者’의 한 場面.

    유영철은 現場檢證 過程에서도 아주 知能的으로 警察 搜査를 妨害했다. 엉뚱한 곳을 殺人現場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그 집에 侵入할 때 大門을 어떻게 열고 들어갔느냐”고 물으면 “事件 發生 後 TV 뉴스에 나온 것을 보니 그 집 앞에 警察이라고 쓰인 줄을 걸어놨던데요”라고 泰然히 對答하는 式이었다. 當時 한 同僚는 내게 “어이, 大將. 헛 다리짚었어”라고 말했을 程度다.

    비록 유영철이 警察의 放心을 틈타 逃走한 탓에 事件이 또다시 迷宮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이 部分은 搜査팀의 失手였음을 率直히 認定한다), 그보다는 逃走 11時間 만에 人口 1000萬名이 넘는 서울에서 그를 다시 逮捕할 수 있었던 警察의 努力도 제대로 評價받고 싶은 게 率直한 心情이다. 當時 서울地方警察廳長이던 허준영 前 警察廳長도 내게 “오늘 中으로 못 잡으면 辭表 쓸 覺悟해”라며 事件 解決에 意欲을 보였다. 하늘이 도왔는지, 아니면 偶然인지 유영철은 내 생각대로 영등포역에 나타났고 結局 逮捕됐다. 實로 反轉에 反轉을 거듭한 ‘刑事 25時’였다.

    ‘追擊者’는 싸움으로 일그러진 報道房 業主의 모습과 敎會를 비추면서 幕을 내린다. 하지만 實際 調査 및 檢察 送致過程의 에피소드와 記者會見 途中 警察의 발차기 해프닝은 映畫 內容보다 훨씬 드라마틱했다.

    다시 잡혀 들어온 유영철이 내게 끌려와 “大將님, 제 運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무릎을 꿇던 때를 생각하면 只今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가 털어놓는 事件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衝擊 自體였다. 調査過程에서 追加 犯罪에 對해 입을 열지 않는 유영철에게 내가 “여기서 다 불고 가. 그러지 않으면 땅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調査할 거야”라고 했던 말도 記憶에 남아 있다. 그가 처음 自白을 하던 날, 영등포警察署 留置場에서 유영철과 하룻밤을 지내며 이런저런 對話를 통해 餘罪를 追窮한 일도 只今은 追憶이 됐다.

    하지만 알려진 바와 같이 유영철 事件을 搜査한 나와 同僚들은 큰 事件을 解決했다는 使命感이나 名譽를 누리지 못했다. 檢察 送致 過程에서 遺族들에게 발길질하는 場面이 고스란히 放送을 타면서 名譽는 사라졌고 昇進은커녕 左遷 되는 經驗도 맛봤다. 한마디로 運이 없는 事件이었다. 勿論 抑鬱한 部分도 있다. 나중에 안 事實이지만, 日本 후지TV와 契約한 韓國 側 뉴스 供給業體인 某 프로덕션이 被害者 遺族을 찾아가 “記者會見場에서 유영철의 帽子를 벗기면 謝禮하겠다”고 한 일이 발차기 事件의 發端이 된 事實을 알고는 火도 났다. 하지만 이젠 모두 지난 일이 아닌가. 누구도 怨望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나를 包含해 當時 事件을 解決하기 위해 東奔西走했던 同僚 刑事와 警察 關係者들이 이 映畫를 보고 傷處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꼭 傳하고 싶다. 비록 失手도 많았지만 ‘殺人魔’를 잡으려 애썼던 警察의 努力이 ‘追擊者’로 因해 헛되이 取扱되지 않길, 또 유영철 事件이 單純한 映畫 素材가 아니라 우리 社會에 如前히 警鐘을 울리는 事件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을 懇切히 傳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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