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籠球 天才는 墜落하고 얼굴 붉히는 訴訟만 남았다|주간동아

週刊東亞 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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籠球 天才는 墜落하고 얼굴 붉히는 訴訟만 남았다

김승현 vs 오리온스 數年째 感情對立…初期부터 袖手傍觀 KBL도 問題

  • 金鍾奭 東亞日報 스포츠레저部 記者 kjs0123@donga.com

    入力 2011-01-03 1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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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구 천재는 추락하고 얼굴 붉히는 소송만 남았다

    2009年 7月 年俸 調整委員會에서 所見을 밝힌 김승현이 KBL을 나서고 있다.

    2002年 4月 19日. 프로籠球 東洋(現 오리온스)은 大邱에서 열린 챔피언決定戰 最終 7次戰에서 한 新人 가드의 猛活躍에 힘입어 SK를 75代 65로 꺾고 처음으로 頂上에 섰다. 그해 10月 14日. 釜山 아시안게임 男子籠球 決勝戰에서 韓國은 競技 終了 25.5秒 前 7點差로 뒤져 敗色이 짙었다. 하지만 그의 손끝에서 연이어 가로채기가 나오면서 奇跡 같은 逆轉 드라마 끝에 20年 만에 金메달을 땄다. 그로부터 8年 뒤인 2010年 11月 11日 서울 江南區 論峴洞 한국농구연맹(KBL)센터. 1997年 프로 出帆 後 처음으로 KBL이 直接 特定 選手에 對한 任意脫退 措置를 내리면서 事實上 選手 生命에 마침標를 찍게 했다. 다음 날 中國 광저우에선 아시안게임의 幕이 올랐다.

    짧다면 짧을 수 있는 8年 歲月. 國內 스포츠 舞臺에 이런 浮沈을 겪은 스타가 또 있을까. 오리온스 김승현(32). 그가 仁川 송도고와 동국대에 다닐 때부터 有心히 지켜봤기에 끝 모를 墜落이 더욱 안타깝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는 대목에서는 답답함마저 交叉한다. 김승현은 2010年 9月 오리온스 球團에 未支給 保守(12億 원) 問題로 民事訴訟을 提起했다는 理由로 KBL의 任意脫退 處分을 받았다. KBL 理事會는 選手가 保守와 關聯한 契約에 不服할 境遇 이런 措置를 내리도록 規定하고 있다. 選手와 球團의 葛藤이 法廷으로 飛火된 것은 이番이 처음이다.

    FA 年俸 協商 뒷돈 두고 葛藤 始作

    都大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時計를 過去로 돌려보자. 김승현은 동국대 卒業 後 2001年 프로籠球 新人 드래프트에서 全體 3順位로 뽑혔다. 學窓時節 個人技가 뛰어난 왼손잡이 가드로 注目받은 김승현을 選拔한 김진 監督은 “꼭 必要한 選手”라며 높은 期待感을 드러냈다. 김승현과 함께 마커스 힉스라는 當代 最高의 外國人 選手를 迎入한 東洋은 前年度 꼴찌에서 一躍 正規시즌 優勝에 이어 챔피언決定戰까지 휩쓸어 統合 챔피언에 登極했다. 김승현은 新人王과 正規시즌 最優秀選手를 同時에 거머쥐었다. 2002年 釜山 아시안게임에서 김승현은 代表팀 司令塔을 맡은 김진 監督과 呼吸을 맞춰 頂上에 섰다. 金메달로 兵役 惠澤도 받았다. 날개까지 달게 된 김승현의 時代가 활짝 열리는 듯했다.

    그렇게 5시즌이 흘러 2006年 김승현은 自由契約選手(FA)로 풀렸다. FA는 돈方席의 保證手票다. 프로籠球 出帆의 背景에는 過度한 몸값에 對한 改革 意志가 크게 作用했다. 1990年代 아마추어 籠球大잔치 時節 特級 大學 選手가 實業팀에 入團할 때 數十億 원의 契約金을 챙기기도 했다. 프로 出帆 後 드래프트 制度와 샐러리캡(年俸 總額 上限制度) 等의 導入으로 一切의 契約金이 禁止됐다. 그러나 몇몇 球團에서 뒷돈 疑惑이 끊이지 않았다.



    조금 일찍 태어났더라면 天文學的 金額을 손에 쥐었을 김승현이 FA라는 絶好의 機會를 놓칠 理 없었다. 게다가 그는 最高의 포인트가드로서 如前히 上限價였다. 김승현은 5年에 年俸 4億3000萬 원으로 오리온스에 殘留했다. 單年 契約이라 해마다 다시 年俸 協商을 하는 條件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球團 發表 內容일 뿐이다. 年俸이 10張(10億 원)에 이른다는 所聞이 茂盛했다. 實際로는 5年 동안 해마다 成跡에 相關없이 年俸 10億5000萬 원을 保障받는 總額 規模 52億5000萬 원에 이르렀다. 김승현 1名의 年俸이 12名 全體 選手의 年俸과 맞먹었다.

    김승현 契約 直後 오리온스 球團의 團長이 바뀌었다. 새롭게 赴任한 심용섭 團長에게는 前任者가 남겨둔 김승현과의 契約書가 눈엣가시였다. 原則主義者를 自處한 沈 團長은 就任 一聲으로 “오리온스라는 會社는 財界 序列 70位 밖이다. 작다 보니 뭘 하든 關心이 없을 程度다. 籠球團 運營하면서 無理하게 돈을 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强調했다. 葛藤의 씨앗이 徐徐히 싹트고 있었다.

    妙하게도 FA 契約 後 김승현은 잦은 허리 負傷과 自己管理 疏忽로 不振하기 始作했다. 私生活이야 어떻든 運動만 잘하면 그만 아니냐는 게 김승현의 생각이었지만 코트에서도 漸漸 잊혀갔다. “한 시즌 54競技를 全部 뛰겠다”고 公言했지만 그는 新人 때를 除外하고 前 競技에 나선 적이 없다. 競技에 出戰하지 못할 程度로 허리가 아프다면서 餘暇生活을 즐겨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 時期에 오리온스는 監督 2名이 시즌 途中 辭退했다. 오리온스의 成績이 바닥을 헤매게 된 主犯으로 김승현이 指目되고 있었다. 及其也 球團에서는 辯護士의 諮問을 받아가며 旣存 契約의 破棄 可能性을 알아봤으나 한 番 찍은 圖章을 물릴 수는 없었다.

    “돈 내놔라’ vs “괘씸한 것”

    농구 천재는 추락하고 얼굴 붉히는 소송만 남았다

    2002年 新人時節 김승현은 팀을 優勝으로 이끈 데 이어, 그해 열린 釜山 아시안게임에서도 연이은 가로채기로 奇跡 같은 金메달을 일궈냈다.

    KBL은 球團마다 規定을 어기고 締結한 裏面契約이 論難이 되자 2008年 뒷돈 根絶을 위한 子正宣言을 했다. 김승현의 過多한 保守에 戰戰兢兢하던 오리온스는 든든한 支援軍을 얻은 듯했다. 2008~2009시즌 終了 後 김승현과 오리온스는 年俸을 둘러싼 摩擦을 빚었다. 김승현은 6億 원을 提示한 球團에 맞서 8億5000萬 원을 要求했다. KBL은 뒷돈 波紋과 裏面契約書 公開 論難 等 진흙탕 싸움까지 벌인 김승현과 오리온스에 重懲戒를 내렸다.

    暫時 봉합된 듯했으나 2009~2010시즌 終了 後 雜音은 더 커졌다. 오리온스는 15勝 39敗로 最下位에 그쳤다. 18競技 出戰 停止 懲戒가 9競技로 減免됐던 김승현은 25競技에 나와 平均 8.8得點, 5.7어시스트의 平凡한 成跡에 그쳤다. 年俸 協商 테이블에서는 如前히 異見이 甚했다. 김승현은 6億 원을 要求해 3億 원을 提示한 球團과 合意에 失敗했다. 다시 KBL의 調整을 거쳐 前年度 6億 원에서 半 토막이 난 3億 원의 保守(年俸과 인센티브를 合한 金額)에 사인했다. 이마저도 年俸 2億1000萬 원을 뺀 9000萬 원이 인센티브. 이 中 6000萬 원은 팀 順位에 따라 差等 支給되는데 8位 以下면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나머지 3000萬 원 中 1200萬 원은 訓鍊 態度 等에 따라 주어지며, 1800萬 원은 1∼6라운드마다 5勝 4敗 以上을 해야 받는다. 김승현에게는 自尊心이 傷할 수밖에 없는 條件이다.

    球團에 對한 背信感이 더욱 커진 김승현은 代表팀 訓鍊 過程이나 知人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리온스에 對한 反感을 露骨的으로 드러냈다. “오리온스만 아니라면 어디서든 熱心히 運動하겠다”는 말까지 떠들고 다녔다. 狀況이 이런데도 오리온스 球團의 最高位層은 “트레이드 計劃은 全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괘씸罪에 걸린 김승현을 다스리기 위해 球團에 붙잡아두면서 발목을 잡을 意圖라는 指摘도 나왔다.

    結局 김승현은 選手 生命을 擔保로 當初 契約에 따른 未支給 保守 12億 원(2009年 4億5000萬 원, 2010年 7億5000萬 원)에 對한 訴訟을 提起하는 强手를 뒀다. 김승현은 이미 오리온스에서 마음이 떠난 데다 運動에 對한 未練도 사라져 이제 實益이라도 챙기겠다는 意志로 보인다. KBL은 第3의 機關이라는 理由로 袖手傍觀하다 어설픈 規定의 虛點을 番番이 드러냈다는 指摘에서 自由로울 수 없다.

    平行線을 달리는 김승현과 오리온스. KBL은 김승현 側에 未支給 保守 12億 원 請求 訴訟을 取下할 것을 勸告했다. 一旦 김승현이 한발 물러서면, 오리온스度 그가 願하는 他 球團 이적의 길을 열어주는 方式으로 KBL의 任意脫退 決定 撤回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어떻게든 結論은 나겠지만 勝者와 敗者 모두 深刻한 傷處를 받게 됐다. 벌써 몇 年째 되풀이되는 感情 對立에 팬들 亦是 큰 失望만 떠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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