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세라핌 허윤진이 페미? 論難 自體가 터무니없다!|신동아

르세라핌 허윤진이 페미? 論難 自體가 터무니없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페미니즘 = 이 時代 敎養人이 갖춰야 될 ‘常識’

  • 노정태 經濟社會硏究院 專門委員·哲學

    jeongtaeroh@ries.or.kr

    入力 2024-03-10 09:00:01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르세라핌 허윤진 가방 속 冊이 일으킨 페미 論難

    • 文化 遲滯 狀態 빠진 大韓民國 靑年들

    • 페미니즘, 새 指摘?道德的 基準으로 자리 잡아

    • 허윤진 冊, 모든 10?20代가 읽어야

    1월 6일(현지시간) 르세라핌 허윤진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38회 골든디스크 어워즈 with 만디리’ 레드카펫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1月 6日(現地時間) 르세라핌 허윤진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38回 골든디스크 어워즈 with 萬디리’ 레드카펫 行事에서 포즈를 取하고 있다. [뉴스1]

    “眞짜 많아요, 읽는 冊이.”

    2月 24日 放映된 MBC ‘全知的 參見 時點’에 登場한 걸그룹 르세라핌의 리더 김채원이 메인 보컬 허윤진의 讀書 趣味에 對해 한 말이다. 메이크업을 받으면서도 冊에서 눈을 떼지 않는 허윤진의 가방엔 여러 卷의 冊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畵面에 登場한 冊의 目錄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올 어바웃 러브’(벨 훅스, 冊읽는수요일), ‘Ways of Seeing’(John Berger, Penguin, 原書. 韓國 飜譯書 ‘다른 方式으로 보기’), ‘世上을 어떻게 理解할 것인가’(프리드리히 니체, 해누리企劃), ‘Breasts and Eggs’(가와카미 미에코, Picador, 英譯本. 韓國 飜譯書 ‘여름의 文’).

    ‘全知的 參見 時點’李 放映되자 인터넷에선 작은 騷亂이 發生했다. 이른바 ‘페미 論難’이 始作된 것이다. 特히 허윤진이 읽고 밑줄 치는 모습까지 登場한 日本 小說 ‘여름의 文’李 論難의 對象이 됐다. ‘82年生 김지영’처럼 象徵的 地位를 가지고 있는 페미니즘 冊은 아니기에 單番에 ‘彼我識別’을 하지 못한 이들이, 인터넷 書店이나 檢索 結果로 나오는 內容을 놓고 “이게 페미냐 아니냐”라며 說往說來를 벌였다. 結局 이番 페미 論難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2월 24일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공개된 르세라핌 허윤진의 가방 속 책들. [MBC]

    2月 24日 MBC 藝能프로그램 ‘全知的 參見視點’에서 公開된 르세라핌 허윤진의 가방 속 冊들. [MBC]

    페미니즘, 이미 敎養人 ‘常識’

    事態의 展開를 보며 筆者의 마음은 錯雜했다. 페미 論難이 또 생겼다는 事實이 첫 番째 理由지만 그게 全部는 아니다. 허윤진의 讀書 目錄은 英語圈의 平凡한 大學生 或은 大卒者가 읽었거나 읽을법한 冊, 英語圈의 敎養人들이 常識線에서 받아들日法한 冊으로 이루어져 있다. 니체를 除外하면 그 各各에 明白히 페미니즘的 論議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 英美圈 敎養 大衆에게 페미니즘은 이미 常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어떤 페미니즘’이냐, ‘어느 程度의 페미니즘이냐’와 같은 次元에서 論爭이 오갈 뿐이다.



    韓國의 大衆은 아이돌이 읽는 冊으로 페미 論難을 불러일으키고 이른바 ‘史上 檢證’을 하려 든다. 하지만 아이돌이 읽고 있는 冊이 무엇인지 스스로 理解하지 못하고 마는 水準에 머물고 있다. 大韓民國, 特히 大衆文化의 活潑한 消費層인 靑年들이 一種의 文化 遲滯 狀態에 빠져 있다는 意味다.

    허윤진이 放送에서 읽고 밑줄 치는 모습까지 보여준 冊의 表紙에는 ‘Breasts and Eggs’라는 題目이 쓰여 있었다. 事實上 모든 인터넷 言論에서 그 題目을 그대로 ‘젖과 알’이라고 옮겼다. 作家 가와카미 미에코가 아쿠타가와상을 殊常한 短篇小說 ‘젖과 알’의 韓國語版 飜譯本이 있으니 그것이리라고 쉽사리 推測한 結果다.

    허윤진에 대한 ‘페미 논란’을 일으킨 책 ‘Breasts and Eggs’. [Picador]

    허윤진에 對한 ‘페미 論難’을 일으킨 冊 ‘Breasts and Eggs’. [Picador]

    實狀은 그렇지 않다. 英語版 ‘Breasts and Eggs’는 2008年에 發表된 短篇小說 ‘젖과 알’이 아니다. 그것의 內容을 擴張해 새로 쓰고, 日本에서 2019年 出刊된 長篇小說이다. 日本語 原題를 直譯하면 ‘여름 이야기(夏物語)’인데, 韓國 出版社는 2022年 그 題目을 ‘여름의 文’으로 옮겨 내놓았다. 허윤진이 읽은 冊을 韓國語로 읽고 싶다면 ‘젖과 알’이 아니라 ‘여름의 文’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短篇 ‘젖과 알’에 基盤하고 있기에 ‘여름의 文’은 그것과 같은 이야기로 始作한다. 短篇에선 ‘나’로만 言及되는 小說家 나츠코. 도쿄에 사는 그에게 언니 미에코와 조카 미도리코가 놀러 온다. 시들어가는 젊음을 아쉬워하는 언니는 가슴 手術을 해야겠다며 外貌에 執着한다. 한便 初經을 始作할 나이가 된 미도리코는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筆談으로만 周邊과 疏通한다. 나츠코는 언니와 沐浴湯을 가고, 미도리코와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月經, 出産, 性愛, 官能, 孤獨, 疏外 等 女性性과 關聯된 苦悶을 始作한다.

    이 簡略한 內容만 놓고 보더라도 페미 論難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분명해진다. ‘여름의 文’은 (英語版의) 題目부터 登場人物 構成과 展開까지 모든 面에서 女性을 中心으로 女性性을 探究하는 冊이다. 마치 물 속 물고기가 물을 의식할 必要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름의 文’을 읽는 사람은 페미니즘을 따로 의식할 必要가 없다. 말하자면 이 冊의 存在 自體가 페미니즘인 것이다.

    東西洋을 莫論하고 페미니즘 以前의 文學이 女性과 女性性을 取扱하는 方式은 비슷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머니에 對한 崇拜로 向하거나, 男子의 마음을 빼앗고 籠絡하는 ‘妖妄한’ 女性을 欲望하면서도 미워하는 屈折된 心理를 드러냈다. 페미니즘 以前 文學이 女性과 女性性을 그런 式으로 다룬 理由는 簡單하다. 大部分의 글을 男子들이 쓰고 있었고, 女性이 直接 펜을 잡는다 해도 男子들이 女子를 바라보던 視線을 고스란히 踏襲하는 境遇가 頻繁했기 때문이다.

    너무 얄팍한 우리 社會 페미니즘 理解度

    勿論 이 冊에서 언니 미에코와 나츠코가 스스로와 다른 女性의 身體를 바라보고 내놓는 描寫 等을 “男性的 視線”이라고 批判하는 일이 不可能하진 않다. 하지만 그런다 해도 ‘여름의 文’李 가슴과 子宮을 지닌 女性의 몸에 對해서, 女子가 女子의 觀點에서 이야기하는 冊이라는 事實 自體가 달라지진 않는다.
    이제 文學的 遂行이 얼마나 ‘最新 페미니즘’ 乃至는 ‘젠더 理論’에 符合하느냐는 또 다른 論議거리가 될 순 있다. 하지만, 文學의 歷史와 脈絡에 조금이라도 關心이 있다면 ‘여름의 文’李 페미니즘 小說인지 아닌지를 두고 論難을 벌일 수는 없을 것이다.

    허윤진의 冊가방에서 눈에 띈 또 다른 冊 ‘올 어바웃 러브’ 亦是 마찬가지다. 韓國뿐 아니라 願書를 發行한 美國 出版社 亦是 페미니즘에서 벗어나 最大限 普遍的 冊으로 포지셔닝하기 위해 努力했지만 그럼에도 不拘하고 이는 亦是 페미니즘 도서다.

    一旦 著者의 履歷부터 確認해 보자. 벨 훅스(Bell Hooks)는 1952年 태어나 2021年 世上을 떠난 글로리아 眞 왓킨스의 筆名이다. 벨 훅스는 平生 30卷 以上의 冊을 썼고 칼럼 等 수많은 公的 글쓰기를 했는데, 그 大部分이 페미니즘을 前提로 했다. 進步的 社會 運動家이며 黑人 女性으로서 政治, 人種, 文化 等에 對해 여러 意見을 表出했지만 그 基底에는 언제나 페미니즘이 깔려 있었다는 뜻이다.

    벨 훅스의 冊 가운데 가장 大衆的이고 읽기 쉬운 作品으로 評價받는 ‘올 어바웃 러브’ 亦是 마찬가지다. 사랑이라는 感情과 그로 인한 個人的, 社會的 現象의 모든 側面을 살피는 에세이인데, 著者의 事由는 페미니즘의 基本 틀 위에서 움직인다. 假令 젊은이들의 冷笑主義에 對해 慨歎하며 사랑의 힘을 說破하는 渦中에도 그는 페미니즘을 잊지 않는다.

    “나는 美國 곳곳을 돌며 人種主義와 男女 差別主義를 없애자는 講演을 자주 하는데, 그럴 때마다 社會正義를 위한 運動을 펼치는 데도 사랑이 아주 重要하다고 强調한다. 그러면 聽衆 가운데 젊은이들이 唐慌스럽다는 反應을 많이 보인다. 여태까지의 偉大한 社會運動들은 恒常 사랑의 倫理를 運動의 中心에 놓았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은 사랑에 社會를 바꾸는 힘이 있다는 말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17쪽)

    ‘올 어바웃 러브’는 페미니즘의 代表格 冊이 아니다. 이 冊은 우리가 書店에서 接할 수 있는 페미니즘 關聯 圖書 가운데 가장 ‘부드러운’ 축에 屬한다. 훅스는 사랑이라는 問題 앞에 선 女性들의 態度에 對해서도 積極的으로 指摘하고 있다. 假令 男子를 내 것으로 사로잡기 위해 相對와의 合意 없이 아이를 갖고 낳아버리는, 이른바 ‘妊娠攻擊’에 對해 峻嚴한 叱咤를 하는 대목이 登場하는 것이다.

    “異性愛者 女性 가운데엔 男子를 利用하기 위해 經驗 많은 다른 女性에게 거짓말하는 技術을 배우는 境遇도 많다. 大槪 어떤 男子와 結婚하려 하거나, 아기를 가지려고 할 때 그런 助言을 많이 求한다. 이런 行動은 當然히 옳지 않다. 相對方을 속이는 일일 뿐 아니라, 태어날 아기의 權利, 卽 父母 모두가 願하는 子息으로 태어날 아이의 權利 따위는 깡그리 無視하는 일이기 때문이다.”(78~79쪽)

    自己 利益을 위해 男子를 속이는 女子들도 있고, 그런 거짓말을 다른 女子에게서 배운다니. 인터넷 커뮤니티를 通해 ‘퐁퐁남’이니 ‘설거지론’이니 하는 男性 被害 敍事를 生産하고 消費하는 이들이 반색하고 歡迎할 법한 引用文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훅스는 페미니즘이 美國 社會를 한 次例 휩쓸고 지나간 後 男性들이 마초이즘에서 벗어났지만 少年으로 남아버리는 現象이 벌어졌다고 指摘한다.

    “이 새로운 美國 男性들은 페미니즘이 招來한 文化革命을 겪은 世代다. 그들 가운데 多數가 어릴 때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자랐다. 또한 그들은 ‘더는 마초 같은 男子는 必要없다’는 페미니스트들의 主張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傳統的 마초가 되지 않기 위해 그들이 選擇한 길은 아예 男子가 되지 않는 것, 卽 少年으로 그대로 남는 것이다.”(194쪽)

    이와 類似한 論議는 ‘올 어바웃 러브’의 곳곳에서 確認 可能하다. 훅스는 女性의 美德뿐 아니라 惡德에 對해서도 認定하고 注目하며 페미니즘이 새로운 知的?道德的 基準으로 자리 잡은 後 發生하고 있는 男性性의 失踪에 對해서도 眞摯한 關心을 보인 것이다.

    筆者는 벨 훅스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主張하는 게 아니다. 우리 社會가, 特히 페미 論難을 일으키는 네티즌들이 가지고 있는 女性主義에 對한 關心이 얼마나 얄팍한지, 그 理解의 水準이 얼마나 皮相的인지 指摘하기 위해 美國을 代表하는 페미니스트 作家 벨 훅스의 主要 著書에 登場하는 論議를 立體的으로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페미니즘 除外 觀點 不可能해진 時代

    2월 24일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르세라핌 허윤진이 독서하고 있다. [MBC]

    2月 24日 MBC 藝能프로그램 ‘全知的 參見視點’에서 르세라핌 허윤진이 讀書하고 있다. [MBC]

    존 버거의 ‘다른 方式으로 보기’로 들어가 보자. 이 冊은 人類가 傳統的으로 美術 作品을 만들고 봐온 方式을 넘어서는 여러 方法들을 主題로 한다. 1972年 英國과 美國에서 出刊된 後 美術?디자인 等 視覺藝術 關聯 大學生에게 1學年 1學期 주어지는 讀書 目錄에 빠지지 않고, 빠져선 안 되는 必須 敎養 圖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方法들로 提示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페미니즘이다. 우리가 오늘날 博物館이나 美術館에서 보는 수많은 古典 名畫 가운데 相當數는 그런 그림을 注文, 依賴할 수 있던 權力層의 눈療飢감으로 製作됐다. 女性의 裸身을 그려놓고 性的인 視線으로 鑑賞하기 위함이다.

    버거는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1583年作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에두아르 마네의 1863年作 ‘올랭피아’를 比較한다. 두 女性 모두 알몸을 내놓고 있지만 비너스는 얼굴에 紅潮를 띈 채 고개를 살짝 꺾고 있다. 誘惑的 態度와 表情이다. 反面 올랭피아는 얼굴을 꼿꼿이 들고 正面을 凝視한다. 男子를 誘惑한다기보다 制壓할 듯한 눈빛이다. 르네상스 時代만 해도 露骨的이던, 女性을 바라보는 視線이 近代化 過程에서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事例다. 존 버거는 讀者들에게 ‘미러링’을 勸하기까지 한다.

    “이 冊에서 傳統的 누드畫를 아무 作品이나 하나 고른 다음, 그림 속 女子를 男子로 바꿔 보자. 머릿속에서 생각만 해도 좋고 直接 그려봐도 좋다. 그리고 그런 轉換이 얼마나 暴力的인 것인지 살펴보기 바란다. 이미지 自體에 對한 暴力이 아니라, 觀客들이 가지고 있는 旣存 觀念에 對한 暴力 말이다.”(77쪽)

    ‘다른 方式으로 보기’가 穩全히 페미니즘에 傾倒된 冊은 아니다. 總 7個의 章에서 3個는 이미지로, 4個는 텍스트로 構成돼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페미니즘이고, 다른 대목에선 마르크스주의的 批評을 다룬다.

    重要한 건 ‘現代의 古典’이라 해도 遜色이 없는 冊, 美術學徒와 敎養人들의 必讀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다른 方式으로 보기’에서 페미니즘이 적잖은 比重을 차지하고 있다는 事實 그 自體다. 勿論 美術作品을 보는 方式에 페미니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21世紀를 살아가는 우리가 페미니즘을 除外하고 美術을 鑑賞하는 것이 事實上 不可能해진 것 또한 事實이다.

    ‘여름의 文’은 女性의 몸, 身體的 變化, 月經 等을 美化하지 않는다. 沐浴湯에서 보이는 할머니의 늘어진 가슴, 生理穴의 質感, 냄새 같은 要素가 거리낌 없이 登場한다. 19世紀나 20世紀 初까지 ‘敎養人’이라면 입에 담지도, 글로 적지도 않았어야 할 內容들이지만 現代 페미니즘은 女性의 肉體를 女性 스스로의 觀點에서 바라보고 描寫하고자 한다. 冊을 읽고 말고는 個人 趣向이겠지만 오늘날의 敎養 讀者라면 著者의 筆力에 感歎해야지 “어떻게 이런 內容을 冊에 쓰느냐” 같은 소리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올 어바웃 러브’는 異性愛者 女性으로 살아온 한 페미니스트의 人生 歷程과 指摘 履歷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冊이다. 사랑을 主題로 삼으면서 자연스럽게 女性의 美德뿐 아니라 惡德에도, 男子들의 剛함뿐 아니라 弱함까지도 다룰 수 있게 된 作品이다. 理論의 餘地가 없는 페미니즘 冊이지만 現 時代를 살아가는 敎養人의 눈높이에서 받아들이지 못할 內容도 딱히 없어 보인다.

    ‘다른 方式으로 보기’ 亦是 마찬가지다. 美術 批評 分野에서 現代의 古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冊은 女性을 性的 對象으로 바라보는 視線이 어떻게 美術 作品에 담겨 있었고, 後代의 畫家들이 그것을 어떻게 克服해왔는지, 到底히 反駁할 수 없는 생생한 事例를 통해 說明한다. 이 冊을 페미니즘 圖書로만 여길 순 없지만 그렇다 해서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違和感 없이 페미니즘 읽고, 말할 수 있어야

    告白하자면 筆者는 아이돌 그룹에 큰 關心이 없다. 이 글을 쓰기 爲해 허윤진에 對해 檢索했고, 그가 美國 大學 合格證을 받았지만 入學하지 않고 韓國에 와서 아이돌 活動을 하고 있다는 事實을 알게 됐다. 그러고 나니 허윤진의 가방에 담겨 있던 冊들의 正體가 쉽게 理解됐다. 아이비리그 或은 美國 주립대 出身 大學生 或은 大卒者, 말하자면 ‘敎養 對中’으로서 큰 負擔 없이 接할 법한 冊인 것이다.

    大衆文化든 이른바 ‘高級文化’든 그것을 만들고 즐기는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常識이 된지 오래다. 先進國에서 태어나고 자라 大學生 以上 學歷을 지닌 사람이라면 學校에서 授業을 듣지 않았더라도 ‘敎養必修’ 次元으로 어느 程度는 當然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이들을 敎養 大衆이라고 부른다면, 허윤진의 가방에 담긴 冊들은 敎養 大衆의 必讀書 或은 推薦書 目錄에 正確히 符合하는 것이다. 이 程度 冊은 아이돌뿐 아니라 모든 10代와 20代가 읽어야 마땅하다.

    이 글의 目的은 르세라핌의 허윤진이 ‘찐페미’라고 主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鄭 反對일 수도 있다. 또 나왔다가 사그라진 페미 論難은 어처구니없고 荒唐하지만 비웃고 지나갈 일도 아니다. 우리는 平凡한 大學生 乃至 卒業生 水準의 敎養人이라면 이 程度 페미니즘 書籍은 아무 違和感 없이 읽고, 討論할 수 있는 世上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