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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덩이
그날 午前 4時 25分. 慶南 진주시 가좌住公아파트 303棟. 調絃病을 앓던 이 아파트 406號 住民 안인득(45)은 이날 自身의 집에 불을 질러 집 全體에 번지게 했다. ‘朝見’(調絃)은 絃樂器의 音律을 고른다는 뜻으로 정신의 調律에 있어 어려움 및 病이 있다는 意味로 붙여졌다. 妄想, 幻覺 等의 症狀을 보인다.
안인득은 미리 準備한 凶器를 兩손에 쥐고 非常階段에서 待機하다 待避하는 住民들에게 휘둘렀다. 火災警報音에 잠에서 깨 非夢似夢으로 階段을 내려가던 住民들은 無防備 狀態에서 얼굴, 목, 가슴 等에 傷處를 입었다.
4時 32分, “누군가 凶器로 사람을 찌른다. 사람들이 待避하고 있다”는 最初 112 申告가 接受됐다. 3分 뒤인 4時 35分 警察 5名이 現場에 到着해 10分間 對峙 끝에 안인득을 檢擧했다. 5名이 숨지고 17名이 다친 뒤였다.
玄關門을 열자 뿌연 煙氣가 複道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의 悲鳴소리도 어렴풋이 들리는 듯 했다.
複道를 지나 非常階段으로 通하는 放火門을 열자 警備員이 있었다. 그는 피가 흐르는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手巾 달라”고 외쳤다. 警備員 뒤로 보이는 複道 階段이 피로 가득했다.
1層으로 내려온 그의 눈에 엄마와 지윤이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엄마도 孫女 지윤이를 지키려다 負傷을 입었다. 2層 階段에 쓰러져 있던 두 사람을 민수 氏가 1層으로 옮긴 뒤였다.
“우리 조카는 숨을 쉬고 있었어요. 근데 救助隊員들이 止血을 안 해. 止血을 안 하니 피가 펑펑 나는 거야. 목에서도 나고 팔에도 나고. 내가 ‘止血 안 하고 뭐 하냐’고 하니까 엄마 止血을 (消防隊員이) 저보고 도와 달래. 그래서 (엄마) 목을 받쳐갖고 止血을 하는데 止血이 안돼. 다리며 이마며 피가 흥건해. 엄마 눈을 봤는데 이미….”
金 氏는 稅銀 氏가 瞬間瞬間 記憶을 잃는 症狀을 가장 걱정한다. 主治醫는 PTSD로 因한 해리性 記憶障礙라고 診斷했다. 처음은 健忘症 水準이었지만 時間이 지나면서 旅行을 갔던 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程度로 狀態가 深刻해졌다.
지난해 8月에는 비 오는 날 한밤中에 두 時間동안 비를 맞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稅銀 氏는 그날을 記憶하지 못 한다. 子正 무렵 오빠 네서 밥을 먹고 代理를 불러 집에 간다던 稅銀 氏가 連絡이 되지 않았다.
稅銀 氏 知人에게 連絡을 돌리고 아파트 周邊을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새벽 두 時가 다 된 時間에야 집 近處에서 비를 맞으며 멍한 눈으로 걷는 稅銀 씨를 發見했다.
“稅銀아!”라고 불렀지만 稅銀 氏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金 氏 부축을 받아 집에 돌아온 稅銀 氏는 그날 목 놓아 울었다.
10分 사이 엄마와 조카가 목숨을 잃었다. 물웅덩이만 봐도 ‘그 날’이 떠오른다.
하루에 먹어야 하는 藥이 또 늘었다. 금세은 氏(43)는 每日 10가지의 神經精神科 藥 22알을 服用하고 있다. 追加된 藥은 抗憂鬱劑 0.5알과, 不安, 緊張, 痙攣 症狀을 緩和하는 藥 3알. 이제 稅銀 氏는 하루에 알藥 26個를 삼켜야 한다.
지난해 12月 30日 慶南 진주시 경상국립대學校病院 神經精神科 診療室에서 主治醫 金奉祚 敎授와 마주 앉은 稅銀 氏는 藥을 늘리자는 金 敎授의 말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2019年 11月 外傷 後 스트레스障礙(PTSD)와 憂鬱症 診斷을 받은 그가 하루에 먹었던 알藥은 20~30個 사이. 2年 2個月 동안 알藥 2萬 個가 그의 몸 안에 고스란히 쌓였다.
베개에 머리만 대도 목 뒤까지 저릿해지는 偏頭痛에 急激한 視力 低下까지 겹치면서 稅銀 氏는 며칠 前 같은 病院에서 腦 磁氣共鳴映像(MRI)을 찍었다. “腦에 問題는 없다”는 醫師의 말에 安堵感이 든 것도 暫時. 2年 넘게 藥을 먹었지만 ‘그날’ 以前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내 그를 덮쳤다. 藥은 順序를 바꿔가며 찾아오는 全身 떨림, 頭痛, 呼吸困難, 不眠症을 暫時 멎게 하는 臨時方便일 뿐이다.
“어떻게 이렇게 하루 終日 머리가 아플 수 있어요? 이제 내 몸한테도 火가 나.”
“副作用 問題로 抗憂鬱劑를 다 바꿨는데 2個月 넘게 期待하는 效果가 안 나와서…. 最近에 나온 藥으로 바꿔 봅시다.”
“不眠症 때문에 神經質的으로 變해서 藥을 한꺼번에 다 먹었어요.”
“肉體的이든 精神的이든 괴로운 게 解決이 안 되니 짜증 안 나는 게 異常하지. 근데 앞으로 그렇게 藥 한꺼번에 먹으면 絶對 안 돼요.”
稅銀 氏는 오늘도 속 시원한 解決策을 듣지 못했다. 診療室을 나온 그는 病院 1層 藥局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검정色 벙거지 帽子를 푹 눌러쓴 그는 藥師로부터 A4 用紙 네 張에 達하는 服藥指導서와, 藥 封套가 가득 담긴 검정色 비닐封紙를 받아 들었다. “엄청 深刻한 病 걸린 사람 같죠? 이게 2週値野, 2週値. 2週 뒤에 와서 이만큼 또 받아야 돼.”
主治醫도 그런 稅銀 氏가 안쓰럽다. 金 敎授는 “時期에 따라 患者를 甚하게 괴롭히는 症狀이 달라질 뿐 처음 診療 때와 比較해 나아진 點은 없다”며 답답해했다. “患者가 겪은 外相이 워낙 크다보니 長期間 治療에도 反應하지 않고, 다른 PTSD 患者에 비해 症狀도 다양하고 깊게 나타납니다. 예전엔 잠을 못 자는 症狀이 甚했고 最近에는 頭痛, 視野 가림 症狀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요. 藥을 바꾸며 다양한 試圖는 하고 있지만 患者나 醫師가 期待하는 效果에는 아주 못 미치는 狀況입니다.”
Chapter 1

10分 만에 달라진 삶

2019年 4月 17日 以前의 稅銀 氏는 全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일 中毒’이었다. 齒衛生學科를 나와 스물세 살 때부터 始作한 齒衛生士 일이 잘 맞았다. 患者들과 對話하는 것도 즐거웠다. 일을 始作한지 3年 만에 齒科 院長은 그에게 患者 相談도 맡겼다.
“사람 만나는 것에 對한 두려움,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게 180度 變했어. 只今은 사람을 보자마자 꺼리기부터 하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싫고 눈도 잘 못 마주치겠고. 예전의 내 모습이 그리워요. 只今은 내 自身이 바보 같아.”
‘엄마는 내 삶의 目標’라고 입버릇처럼 말할 程度로 끔찍한 孝女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3男妹를 위해 집안일만 하며 살았던 엄마가 나이 들어서는 손에 물 묻히지 않고 便히 사는 게 稅銀 氏의 所願이었다. 엄마를 위해 稅銀 氏는 스물세 살부터 마흔 살까지 17年을 한 瞬間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癌 鬪病을 하며 졌던 집안 빚도 다 갚아가고 있었다. “家族 위해서 苦生만 했던 우리 엄마 이제 親舊들하고 놀러 다니고 海外旅行도 가고 좋은 옷 입고 ‘가오’도 좀 잡길 바랐지. 우리는 零細民이잖아. 빚 갚으면서, 그 渦中에 되는대로 돈 모으면서 熱心히 살았어. ‘엄마, 이제 (通帳) 플러스 된다. 조매만 기다려라. 한두 달 안 남았다’ 했는데….” 自稱 ‘일벌레’이자 孝女였던 稅銀 氏는 2019年 4月 17日, 180度 다른 사람이 됐다.
숨진 5名 中 2名은 稅銀 氏의 家族이었다. 그는 不過 10分 사이 ‘삶의 目標’였던 어머니 金某 氏(當時 65歲)와, 딸처럼 예뻐했던 조카 禁止尹 孃(假名·當時 12歲)을 잃었다. 稅銀 氏는 晋州 放火·殺人事件의 生存者이자 遺家族이다.
Chapter 2

웅덩이에 빠진 날

딸을 피지로 留學 보낸 稅銀 氏는 엄마와 함께 아파트 303棟 304號에 살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엄마와 麥酒 한 盞을 하고 17日 새벽 3時쯤 잠에 든 稅銀 氏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의 騷亂에 눈을 떴다.
이내 “살려주세요!”라는 올케 車某 氏(44)의 외마디 悲鳴이 들렸다. 稅銀 氏 오빠 금민수 氏(假名·47)네 夫婦와 딸 지윤 量도 이 아파트 403號에 살았다. 놀란 엄마는 複道로 뛰쳐나갔다. 5分이 지나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寢臺에서 몸을 일으킨 稅銀 氏는 잠옷에 슬리퍼 차림으로 玄關으로 나갔다.
‘뭔가 사달이 났구나.’ 精神없이 집으로 돌아가 化粧室에서 손에 집히는 대로 手巾을 여러 張 챙겼다.
다시 玄關門을 열자 바로 앞에 올케 茶 씨가 피를 흘리며 서 있었다. 阿鼻叫喚 속 茶 氏의 울부짖음에 精神이 번쩍 들었다. “지윤이랑 어머니 죽는다! 申告해야 된다!” 茶 氏도 안인득에게서 딸을 保護하다 옆구리를 凶器로 찔린 狀態였다. 稅銀 氏는 떨리는 손으로 112를 눌렀다.
“只今 아파트가 피바다에요. 조카랑 엄마도 칼에 찔린 거 같아요. 빨리 와주세요!”
申告를 마치고 非常階段을 精神없이 내려갔다.
3層과 2層 사이엔 507號 住民 조某 씨가 피를 흘린 채 누워있었다. 曺 氏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3層을 지나 2層 階段으로까지 뚝뚝 떨어졌다. 그와 눈이 마주친 稅銀 氏는 몸에 手巾을 덮어줬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몸을 全혀 움직이질 못했지. 그 狀態로 나랑 눈이 마주친 거야.”
稅銀 氏는 只今도 自身의 손 안에서 차갑게 식어 가던 엄마의 體溫을 생생하게 記憶한다.
Chapter 3

빗물은 핏물이 됐다

304號에 살았던 稅銀 氏와 엄마, 403號에 살았던 오빠 민수 氏네 家族은 1週日에 두 세 番은 함께 밥을 먹었다. 비 오는 날은 틀림없이 모였다. 땡초 넣은 ‘엄마表’ 된醬찌개와 감자煎, 三겹살, 두루치기는 단골 메뉴였다.
“비 오는 날 제가 ‘언니(올케), 비와요. 땡초展 묵으까?’라고 文字 메시지를 보내면 얼마 안 있어 새언니한테 電話가 와요. “땡초 사오라.” 그럼 退勤길에 슈퍼 들러서 밀가루랑 땡초랑 麥酒 사서 가요. 비 오는 날을 참 좋아했는데…”
家族들 麥酒파티 하던 비 오는 날은 이제 稅銀 氏에게 恐怖가 됐다. 비 오는 날 물이 고인 웅덩이만 봐도 그날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파트 複道에 窓門이 없으니 비가 오면 다 들쳐요. 移徙 오고 얼마 뒤 비가 많이 내린 날이었어요. 나가려고 門을 열었는데 門 앞에 물이 가득한 거야. 그걸 보는 瞬間 그날 複道에 고여 있던 피 웅덩이가 바로 떠올랐어요.”
피에 對한 트라우마가 생긴 그는 20年 間 했던 齒衛生士 일도 그만 둬야 했다. 患者들을 治療할 때 나는 피 냄새를 견딜 수 없었다. “피 냄새를 맡으면 우리 엄마 應急處置 하면서 피가 펑펑 나던 그 모습이 當場 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해.”
事件 直前이었던 2019年 初 한 모임에서 稅銀 氏와 알게 된 同甲내기 親舊 김진석 氏(假名)는 事件 直後부터 그를 곁에서 지켰다. 呼吸困難, 全身 떨림, 해리性 記憶障礙, 不眠症, 極甚한 頭痛을 달고 사는 稅銀 氏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不治病인 것 같아요. 100미터만 걸어도 숨 차하고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듯 놀라요. 食堂 갔다 恐慌發作이 오기도 하고…. 堂堂하고 밝은 사람이었는데 모든 게 한 瞬間에 와르르 무너진 거죠.”
“證據 남기듯 寫眞을 찍는 게 習慣이 됐어요. 어디 갔었는지도 記憶 못 할 때가 있으니까 寫眞 보여주며 ‘우리 여기 갔었잖아’ 하려고. 둘 다 寫眞 찍는 것 正말 싫어하는데 繼續 練習을 해요.” (金 氏)
Chapter 4

바꾼 이름, 바뀌지 않는 삶

稅銀 씨의 오빠 민수 氏와 그의 아내, 첫째 딸은 2019年 말 이름을 바꿨다. ‘이름이 잘못 돼서 온 家族에게 이런 悲劇이 닥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心情으로 改名을 擇했다. 늘 아빠 옆에서 잠을 자던 둘째 딸 지윤이, 술 마신 다음날 解酲국 끓여놨다고 電話하던 어머니가 없다는 現實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민수 氏의 삶은 如前히 4月 17日에 멈춰 있다. 안인득은 그날 自身의 집에 불을 질렀다. 같은 層에 살았던 민수 氏네 집 玄關으로 이내 煙氣가 슬금슬금 넘어왔다. 민수 氏는 아내와 딸 지윤이를 깨워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水泳選手인 첫째 딸은 學校 寄宿舍에서 生活해 집에 없었다. 家族들을 내려 보낸 그는 옆집 門을 두드리며 사람들에게 待避하라고 알렸다. 다른 사람들 뒤를 따라 마지막에 내려왔다. 그리고 어머니와 딸이 피를 흘리며 2層 階段에 누워 있는 것을 發見했다.
“불이 나서 家族들을 내려 보냈는데 애하고 할매(어머니)가 누워 있어. 같이 내려갔으면 내가 죽었어도 아는 살렸을 거 아이가. 내가 왜 演技 빼고 窓門 열고, 불났다고 門 두드리고…. 그게 第一 큰 失手라. 내가 미친놈이지.”
언니 金毛 量(19)은 事件 1年이 지나고서야 家族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茶 氏가 金 孃을 學校에 데려다 주려던 日曜日이었다. 房에서 짐을 챙기는 金 量의 눈이 벌겠다. “울었나?” 묻는 엄마의 質問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車 안에서도 默默不答이던 금 量은 寄宿舍 앞에서 “都大體 왜, 뭐 땜에 그카노?”라는 엄마의 質問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동생이 너무 보고 싶다, 엄마. 運動場 뛸 때도 생각나고, 水泳할 때도 생각나고, 밥 먹을 때도 생각난다. 그래서 미치겠다. 너무 힘들고 너무 보고 싶다. 미치겠다, 엄마.”
Chapter 5

怨望할 수 없는 理由

민수 氏는 안인득의 兄과 高等學校 때부터 親舊였다. 一週日에 서너 番은 함께 술盞을 기울이던 사이였다. 晋州는 洞네가 좁아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알았다. 민수 氏는 빵을 사다 주기도 하며 親舊 동생을 챙겼다. 안인득 亦是 처음에는 平凡한 이웃 아저씨였다.
“가(안인득)가 애들 먹으라고 菓子를 褓따리로 사 주고 한 놈이라. 그냥 낯을 좀 많이 가리는 줄 알았어. 내가 ‘밥 묵었나’ 하면 ‘예’ 하며 지냈어. 근데 調絃病이 甚해지니 (지윤이를) 못 알아 본 기라.”
동생의 狀態가 深刻해지자 안인득의 兄은 민수 氏에게 ‘고함지르는 소리 안 들리드나?’ ‘시끄러운 일은 없었나?’라며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술자리에선 “동생이 아픈데 藥을 안 먹는다”며 걱정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事件이 發生하기 얼마 前엔 동생이 집에 있으면 連絡해달라고 付託하기도 했다. “내가 가면 門도 안 열어준다. 집에 있는지 確認해보고, 있으면 電話 좀 주라.”
兄은 걱정을 하면서도 동생이 調絃病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민수 氏는 “알겠다”고 하고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當時 兄 安 氏는 警察과 檢察, 大韓法律救助公團, 가호동 行政福祉센터를 돌며 동생을 精神病院에 입원시키기 위해 孤軍奮鬪하고 있었다.
調絃病 患者였던 안인득, 그런 동생을 입원시키기 위해 四方八方 뛰었던 안인득의 兄이자 自身의 親舊. 민수 氏는 딸과 엄마를 잃고도 누구 하나 속 시원히 怨望할 수 없었다. 憤怒와 설움은 스스로를 向했다. 하루에 燒酒를 6甁 씩 비우는 날이 許多했다. 事件 直後 1年은 술과 精神과 藥에 醉해 朦朧한 狀態로 每日을 보냈다.
“調絃病 患者가 왜 밉노? 그 사람들, 그냥 精神이 아픈 사람이다. 그렇게 될 때까지 放置돼 있었던 게 잘못이지. 藥만 먹으면 괜찮았을 사람이 犯罪者가 되고, 그 사람 家族까지 罪人이 되는 거고. 그걸 왜 못 막느냐는 거지. 안인득度 被害者다. 안인득 兄도 被害者고.”
Chapter 6

눈물의 웅덩이는 마르지 않는다

물웅덩이만 봐도 그 날이 떠오르지만 稅銀 氏는 每年 秋夕, 설날마다 事件이 發生한 가좌住公아파트 3團地를 찾는다. 엄마의 숨이 멎은 곳이지만 엄마가 마지막으로 숨을 쉰 곳이기도 해서다. “秋夕, 설날 때마다 와요. 엄마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이니까…”
지난해 11月 11日 아파트를 찾은 金 氏는 아파트 正門 入口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視線은 事件이 發生했던 303棟을 向했지만 그 앞까지 가진 못했다. “저 안에까지는 못 들어가요. 나 여기선 帽子도 絶對 안 벗어요.”
視野를 遮斷하는 검정色 벙거지 帽子를 푹 눌러 쓰고 검정色 패딩 조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稅銀 氏는 303洞과 한참 떨어진 309洞 앞 벤치로 겨우 걸음을 옮겼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한동안 303棟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끼기 始作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그는 한참 동안 畵面을 쳐다봤다. ‘그리움’이란 題目의 寫眞妾 폴더에 貯藏된 엄마의 生前 寫眞이었다.
“우리 엄마 예쁘죠? 이렇게나 寫眞이 많은데 그날 아파트 入口에 쓰러져 있던 寫眞은 없어. 나라도 찍어 놓을 걸… 엄마 마지막 모습을 記憶하게 寫眞이라도 찍을 걸…”
會社로 돌아가는 車 안, 피지로 留學을 간 딸에게서 映像通話가 걸려왔다. “머리 많이 길었네. 이제 眞짜 淑女 같다, 淑女. 다 컸네.” 稅銀 氏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깨를 훌쩍 넘긴 머리를 매만지는 딸의 모습이 稅銀 氏는 낯설면서도 대견하다. 어느덧 13살이 된 딸을 韓國으로 데려오고 싶지만 現在 健康 狀態로는 딸을 제대로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다. 稅銀 氏의 所願은 素朴하다. 딸과 함께 살면서 좋아했던 齒衛生士 일을 다시 하게 되는 것이다.
“애가 成人이 될 때까지라도 몸이 버텨줬으면 좋겠어. 只今 몸 狀態로는 運轉도 제대로 못 하니까.”
올해 2月 설 稅銀 氏는 아파트를 가지 않았다. 트라우마를 남긴 場所에 가면 病勢가 惡化될 수도 있다는 主治醫의 말 때문이었다. 代身 엄마와 조카의 遺骨函이 모셔져 있는 眞珠 응碩士를 세 番이나 찾았다. 1000日이 지나도록 눈물의 웅덩이는 마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은 繼續된다. 稅銀 氏에게는 키워야 할 딸이 있고, 서로 依支하고 보듬어야 할 家族이 있다. 오늘도 稅銀 氏는 그날의 웅덩이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다.

민수 氏와 稅銀 氏는 事件 發生 2年 7個月 만에 國家에 責任을 묻기로 했다. 이들의 訴訟을 代理하는 法律事務所 法科治癒는 지난해 11月 8月 大韓民國을 被告로 한 損害賠償請求訴狀을 行政法院에 提出했다. 原稿는 민수 氏 男妹 세 名, 민수 氏의 아내 茶 氏 等 總 4名이다. 訴訟의 要旨는 警察이 法에 明示된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 犯罪가 發生했고, 그로 인해 被害를 입었다는 것이다. 訴訟을 하자는 提議가 처음 온 것은 2020年 봄이었다. 大韓神經精神學會는 調絃病 患者가 强力犯罪를 저지르는 事件이 繼續 發生하면서 關聯 法 改正에 나선 狀態였다. 學會는 이들에게 國家 對象 損害賠償 訴訟에 나서 달라고 說得했다. 精神疾患者를 國家가 책임지고 管理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1年을 꼬박 苦悶했다. 辯護士에게 事件을 說明하기 위해 當時를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앞섰다. ‘돈 때문에 訴訟 하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서웠다. 하지만 金 氏 男妹는 마음을 다잡았다. 家族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괜찮아져서 訴訟을 하게 됐느냐”는 質問에 민수 氏는 말했다.

“괜찮아져서가 아니라 괜찮아지려고 訴訟을 하는 기다.
이렇게라도 해야 抑鬱함이 풀릴 것 같으니까.”

안인득이 아닌 國家에 責任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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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et 6

金 氏 男妹가 訴訟을 決心한 건 안인득을 警察이 제대로 管理만 했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안인득이 事件을 저지르기 前 數個月 동안 住民들은 안인득의 汚物投擲, 暴行, 暴言 等으로 애를 먹고 있었다.

안인득의 主要 타깃은 윗집인 506號 住民 崔某 量(當時 19歲)과 그의 叔母 姜某 氏(57)였다. 안인득은 윗집에서 自身의 집에 벌레를 뿌린다는 妄想에 시달리고 있었다. 2018年 9月부터 事件 前까지 다섯 番에 걸쳐 506號 玄關門에 鷄卵, 간醬 等 汚物을 投擲했다.

直接 威脅도 일삼았다. 2019年 2月 28日, 안인득이 出勤을 하는 姜 氏에게 鷄卵을 던지고 辱說을 했다. 姜 氏는 申告했지만 警察은 “賃貸아파트라 이런 申告가 많다. 和解하라”고만 한 뒤 돌아갔다.

3月 10日, 안인득은 駐車 是非가 붙은 사람의 얼굴을 加擊하고 망치를 휘둘러 特殊暴行 嫌疑로 警察에 立件됐다. 兄은 警察에 “동생이 精神病歷이 있다”고 알렸지만 警察은 별다른 措置 없이 안인득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3月 12日과 13日, 안인득은 이틀 連달아 崔 羊을 따라가며 辱을 했다. 집에 들어가는 崔 孃을 뒤따라가 招人鐘까지 눌렀다. 崔 量은 1級 視覺障礙로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腦病變 障礙로 몸의 半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高等學生이었다. 13日 姜 氏가 警察에 再次 申告해 “안인득이 더 以上 이런 짓을 못 하게 해 달라”고 呼訴했지만 警察은 안인득에 口頭 警告를 주는데 그쳤다.

3月 末 안인득은 晉州의 한 廚房用品店에서 凶器를 샀다. 事件 當日 그가 住民들에게 휘두른 것과 같은 凶器였다.

兄은 連絡이 닿지 않는 동생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까 걱정이 됐다. 4月 4, 5日 이틀에 걸쳐 안인득을 立件했던 警察署에 電話를 했다. “동생을 强制入院 시킬 方法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警察은 “事件을 檢察에 넘겼으니 檢事에게 問議하라”고 答했다.

檢察廳 民願室도 責任을 떠넘겼다. 職員은 “檢事를 만나더라도 强制入院은 어렵다”며 法律救助公團을 찾아가라고 勸했다.

法律救助公團은 “行政機關이 處理해야 한다. 洞事務所나 市廳으로 가라”고 했다. 洞事務所에서는 “强制入院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事件 當日인 4月 17日 子正이 넘은 時間 안인득은 注油所에서 揮發油를 샀다. 3時間 半 뒤, 안인득은 自身의 집에 불을 질렀다.

안인득에게 集中的으로 괴롭힘을 當하던 崔 量은 그날 안인득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稅銀 氏의 조카이자 민수 氏의 딸도, 두 사람의 어머니도 世上을 떠났다.

안인득에 對한 申告 및 事件 進行

매뉴얼이 作動하지 않을 때

精神健康福祉法은 自身이나 다른 사람을 해칠 危險이 큰 精神疾患者의 精神疾患者를 自身의 意思에 反해 입원시키는 이른바 ‘비(非)字의 入院’을 許容하고 있다. 患者의 人權을 侵害할 수 있는 措置인 만큼 嚴格한 節次와 要件을 갖춰야 한다.

이中 ‘行政入院’은 警察이 精神科 專門醫나 專門要員에게 要請해 危險하다고 判斷될 境遇 地自體長이 節次를 거쳐 最長 2週 間 입원시키는 制度다. 緊急한 狀況에는 警察官과 醫師 同意 아래 最長 3日 間 患者를 입원시킨 뒤 繼續 入院이 必要한지 決定하는 ‘應急入院’ 制度도 있다.

안인득은 △他人에게 威脅을 加한 前歷이 있고 △暴行, 辱說 等 攻擊的 性向이 持續된 境遇로 行政入院이나 應急入院을 充分히 檢討할 만한 狀況이었다.

안인득이 該當됐던 精神疾患者 ‘비자의 入院’ 判斷 基準

하지만 안인득은 어떤 措置도 받지 않았다. 안인득 本人이 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行政入院과 應急入院 모두 現場에서 無用之物이 됐다.

비자의 入院 中 行政入院은 有名無實하다. 行政入院에는 專門의 診斷이 必要한데 精神疾患者로 보이는 사람을 專門醫에게 强制로 護送할 法的 根據가 없다. 應急入院은 要件이 더 까다롭다.

者·打海 危險이 크고, 狀況이 急迫해 다른 入院節次가 不可能할 때만 可能하다. 當場 눈앞에서 事件이 벌어지지 않는 以上 警察이 人權侵害 論難을 무릅쓰고 應急入院 節次를 밟기 어렵다.

이동진 서울대 法學專門大學院 敎授는 “家族이 입원시키도록 하는 것이 論難을 避하는 길이기 때문에 行政入院은 입원시킬 家族이 마땅치 않은 境遇로 制限된다. 應急入院度 嚴格한 節次를 거쳐야 해 活用이 어렵다”고 指摘했다.

까다로운 節次 탓에 現場에서는 大部分 ‘保護入院’李 活用된다. 家族에 依한 保護入院이 全體 비자의 入院의 80~90%를 차지한다. 保護入院은 家族 中에서도 直系血族, 配偶者, 民法上 後見人 中 2名이 申請하고 醫師 診斷이 있으면 可能하다. 하지만 안인득처럼 혼자 살며 直系血族이나 配偶者가 없는 境遇 適用이 不可能하다. 1人 家口가 늘어나는 韓國 現實에서 漸漸 더 實效性이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백종우 大韓神經精神學會 法制理事는 “盧父母 中 한 名과 살거나 直系 家族이 없는 調絃病 患者들이 死角地帶”라며 “1人 家口가 늘며 精神疾患者를 보살펴줄 家族이 없어지고 있다. 重症精神疾患者에 對한 責任을 家族이 아닌 國家가 지는 ‘國家責任制’가 導入돼야 한다”고 말했다.

先進國에서는 비자의 入院을 申請할 수 있는 權限을 廣範圍하게 열어둔다. 美國 32個州에서는 ‘利害關係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자의 入院을 申請할 수 있다. 日本도 ‘精神障礙人 또는 그 疑心이 있는 사람을 아는 사람은 누구든’ 申請 權限을 認定한다. 英國은 申請權者를 精神保健專門要員 또는 患者의 家族 또는 親知로 規定하는데 直系家族이나 同居人은 勿論 兄弟姊妹, 祖父母, 조카 等이 包含돼 있다.

一般 市民의 安全을 保障하면서도 精神疾患者의 人權을 지키기 위해 ‘司法入院制度’ 導入을 提案하는 專門家들도 있다. 法院이 入院을 決定하기 때문에 獨立性이 保障되고, 患者 本人이 도움을 받아 自身의 意思를 法廷에서 表現할 수 있는 節次도 包含돼 있다. 이동진 敎授는 “비자의 入院은 强制措置人 만큼 國家가 責任을 지고 主導하고, 그 안에서 本人과 家族의 意見을 反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外來治療命令制가 活性化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地自體長이 精神醫療機關長의 請求를 받아 비자의 入院 患者가 退院하는 代身 最長 1年까지 外來治療를 義務的으로 받도록 하는 制度다. 退院한 患者가 아니더라도 醫師 判斷으로 危險한 患者는 外來治療를 義務的으로 받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精神障礙人 人權團體度 어쩔 수 없는 境遇 비자의 入院이 必要하다는 點은 認定한다. 다만 그런 狀態까지 가지 않도록 事前에 管理해야 한다고 指摘한다. ‘精神障礙와 人權 波濤손’의 박환갑 事務局長은 “비자의 入院이 必要한 水準까지 狀態가 惡化되기 前에 미리 相談하고 外來治療를 받도록 하는 等의 管理가 必要하다”며 “狀態가 惡化된 患者를 입원시키는 措置는 必要하지만, 暴力的인 病院 移送 過程, 患者를 閉鎖病棟에서 强制로 治療하는 方式 等 問題點이 먼저 改善돼야 한다” 指摘했다.

웅덩이를 만들지 않는 法

事件 後 나라가 被害者이자 遺族인 稅銀 氏와 민수 氏에게 진 責任은 治療費 5000萬 원이 全部다. 放火罪, 殺人罪, 傷害罪 等 强力犯罪被害者는 연 1500萬 원, 總 5000萬 원 限度에서 治療費를 받을 수 있다. 殺害된 조카를 救하려다 칼에 맞아 重傷을 입은 506號 姜 氏는 手術과 再活治療가 이어져 이미 5000萬 원을 다 썼다. 姜 氏의 딸은 때때로 電話로 安否를 묻는 稅銀 氏에게 자꾸만 “希望이 없다”고 말한다.

“저희 같은 사람들은 精神과 相談하고 藥 먹으면 돼요. 근데 506號 살던 叔母는 腦手術을 또 해야 할 수도 있고, 손에 感覺이 안 돌아와서 再活治療度 繼續 받아야 한대요. 그런 분들은 治療費를 平生 받을 수 있어야 하잖아요. 나라에선 그 조차도 안 된다고 하대요.”

不足한 治療費, 어려워진 生計보다도 힘들었던 건 누구도 責任을 지지 않는다는 事實이었다. 왜 住民들의 申告가 제대로 處理되지 않았는지, 왜 안인득은 제때 治療받지 못했는지, 속 시원히 答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慶南地方警察廳 眞相調査팀이 事件 以後 調査를 벌여 警察 措置가 未洽했다고 認定했지만 關聯 警察 5名을 輕懲戒하고 2名을 警告 處分 하는데 그쳤다.

稅銀 氏와 민수 氏는 訴訟을 準備하기 始作한 뒤에야 對象 없는 怨望의 正體를 조금씩 確認하고 있다. 다른 누군가는 이들이 빠졌던 웅덩이에 다시 빠지지 않도록, 1000日 分의 苦痛을 다져 길을 고르고 있다.

發刊일 2022年 3月 18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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