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隣村記念會
追慕事業

金性洙 先生 誕生 120周年 記念 學術大會

‘先覺者 인촌을 再照明한다’

2011年은 日帝强占期 敎育家이자 企業家, 言論人으로서 民族의 實力을 키우고 民族魂을 일깨웠으며 光復 後에는 大韓民國 建國의 礎石을 닦는 데 獻身한 仁村(仁村) 金性洙(金性洙·1891∼1955) 先生이 誕生한 지 120周年 되는 해다. 隣村記念會와 東亞日報社 고려대학교는 이를 記念해 9月20日 午後 2∼6時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仁村記念館에서 ‘先覺者 仁村을 再照明한다’는 主題로 學術大會를 開催했다. 현승종 隣村記念會 理事長과 한승주 國際政策硏究院 理事長 等 各界 人士와 市民 600餘 名이 參席해 隣村의 崇高한 삶을 되돌아보고 그 顯在的 意味를 照明했다. 學術大會는 진덕규 이화여대 이화學術院長(政治學), 한용진 高麗大 敎授(敎育學), 李榮薰 서울大 敎授(經濟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名譽敎授(言論學)의 主題 發表와 綜合討論 順으로 進行됐다.

일제강점기 민족혼을 일깨우고 광복 후에는 나라의 초석을 닦는 데 헌신한 인촌 김성수 선생의 탄생 120주년을 맞아 20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제발표자와 종합토론자로 나선 학자들은 건국 교육 산업 언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인촌 선생의 국가와 사회에 대한 공헌을 조명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日帝强占期 民族魂을 일깨우고 光復 後에는 나라의 礎石을 닦는 데 獻身한 인촌 金性洙 先生의 誕生 120周年을 맞아 20日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仁村記念館에서 記念 學術大會가 열렸다. 主題發表者와 綜合討論者로 나선 學者들은 建國 敎育 産業 言論 等 다양한 側面에서 仁村 先生의 國家와 社會에 對한 貢獻을 照明했다. 이종승 記者 urisesang@donga.com
主題1 인촌과 大韓民國의 建國
진덕규 이화학술원장 진덕규 이화學術院長

一方的 아닌 ‘모두의 最善’ 追求 光復直後 理念葛藤 調停者 役割

진덕규 이화學術院長은 ‘인촌 金性洙와 大韓民國의 建國’ 主題의 發表를 통해 光復 直後 左右 理念 對立이 極甚하던 狀況에서 隣村의 自由民主主義와 市場經濟에 對한 信念이 大韓民國 建國의 基礎로 이어졌다고 分析하며 “隣村은 大韓民國 建國의 最大 株主와도 같은 存在였다”고 評價했다.

光復 直後의 南韓은 政治的 大混亂期였다. 呂運亨의 建國準備委員會, 박헌영의 朝鮮共産黨 等 左翼 陣營과 인촌 및 古下 宋鎭禹의 한국민주당, 李承晩의 獨立促成中央協議會 等 右翼 陣營, 金九의 臨時政府 勢力이 極甚한 葛藤 속에 角逐했다. 隣村은 이 混亂의 波高에서 信託統治 反對와 國際 情勢를 考慮해 實現 可能한 選擇으로서 南韓 單獨政府 樹立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左翼의 共産主義 政權 樹立을 沮止했다. 그럼에도 李承晩 大統領이 獨裁의 徵兆를 보이자 未練 없이 副統領職을 辭任했다.

晉 院長은 隣村의 實踐 樣式을 ‘傳統的 文化主義’, ‘啓蒙的 實踐主義’, ‘妥協的 統合主義’로 定義하며 “隣村은 그의 實踐 樣式을 바탕으로 民族的 民主主義를 選擇해 한국민주당의 政綱 政策은 勿論이고 實際의 政治活動에서도 그대로 表出했다”고 評價했다. 特히 隣村의 妥協的 統合主義는 自身의 主觀이나 一方的인 意志의 貫徹이 아닌, 協議와 討論의 過程을 통해 모두에 依한 最善의 摸索을 追求하는 行爲原則이었다고 强調했다.

主題2 敎育的 人間像으로서 인촌
한용진 고려대 교수 한용진 高麗大 敎授

24歲에 中央學校 引受 始作으로 敎育救國 ‘큰그릇 리더십’ 보여줘

隣村은 24歲에 中央學校를 引受함으로써 敎育事業에 投身한 것을 始作으로 平生 敎育救國(敎育救國) 信念을 가졌던 敎育家이기도 했다. 한용진 高麗大 敎授는 ‘敎育的 人間像으로서 인촌’을 主題로 한 發表에서 敎育家로서 信念이 굳었던 隣村의 삶 自體에 녹아 있던 ‘敎育的 人間像’을 探索했다. 여기서 ‘敎育的 人間像’은 一般的으로 敎育을 통해 만들어지는 人間像이라는 意味를 넘어 타고난 資質과 함께 주어진 環境과 自己 選擇的 主體 形成 能力이 複合된 것을 意味한다.

韓 敎授는 敎育的 人間像에 ‘인덕(仁德)의 對人으로서의 敎育者’ ‘공(公)과 神의(信義)를 中心으로 한 座右銘’ ‘歷史的 意識人으로서 立地(立志)의 선비’ 等이 包含된다고 밝혔다.

그는 人物로서의 인촌을 表現한 ‘民族의 巨星’ ‘爲人’ ‘英雄’ 等의 여러 表現 等을 綜合해 보면 인촌에게서 볼 수 있는 面貌는 바로 사람들을 包容하는 ‘큰 그릇(大器·大氣)’이자 ‘어른’의 風貌였다고 밝혔다. 앞에 나서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꿈을 펼칠 수 있는 空間을 만들어 주는 大人이었다는 것. 韓 敎授는 “‘孟子’에서 對人이란 ‘自己 몸을 바르게 함에 남이 바르게 되는 字를 이른다’고 했다”며 “敎育者로서의 隣村이 이에 該當한다. 保守와 進步로 便 가르는 韓國 社會에서 가장 要求되는 人間像日 것”이라고 意味를 附與했다.

主題3 京城紡織의 經濟私的 意義
이영훈 서울대 교수 李榮薰 서울大 敎授

‘土種資本 尖兵’ 京城紡織 創業 韓國의 大企業群出現 土臺 닦아

李榮薰 서울大 敎授는 ‘京城紡織과 創業者 金性洙의 經濟私的 意義’ 發表에서 1980年代 以後 이른바 民衆·民族主義 歷史觀에 依해 貶毁되어 온 植民地 時期 企業家精神을 再評價하며 京城紡織을 設立하고 經營한 金性洙 김연수 兄弟가 20世紀 韓國 文明史에 있어서 토인비가 提示하는 ‘創造的 少數’에 該當한다고 說明했다.

일찍이 京城紡織은 最初의 近代的 大企業으로 民族企業이라는 硏究가 나온 바 있지만 1980年代를 지나며 民衆·民族主義 觀點에서 韓國의 近·現代史를 解釋하는 흐름이 커지면서 이런 觀點의 硏究가 繼承되거나 評價받지 못했다.

李 敎授는 最近에 와서야 植民地 時期 企業家의 活動을 再評價하는 硏究가 나오고 있다며 주익종 落星垈經濟硏究所 硏究院의 著書 ‘大軍의 斥候’를 引用했다. 大軍의 斥候란 大韓民國 成立 以後 생긴 企業 大軍의 맨 앞에 서서 그들이 갈 길을 提示한 先驅的 存在였다는 뜻이다. 李 敎授는 週 硏究院이 冊에서 使用한 表現을 引用해 京城紡織과 金性洙 兄弟가 20世紀 韓國 經濟와 企業의 歷史에서 ‘뛰어난 學習者’였으며 ‘成功的인 後發者’였다고 紹介했다.

李 敎授는 “오늘날 韓國의 發展을 만든 ‘社會的 能力’에 關心을 가져야 하며, 그 重要한 要素의 하나로 ‘企業家 能力’을 獨立運動 中心의 政治史에서 解放시켜 올바르게 評價해야 한다”고 强調했다.

主題4 인촌과 韓國 言論
정진석<br />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鄭鎭奭
한국외국어대 名譽敎授

言論 통해 民族力量 培養에 獻身 채널A서 放送 言論 새歷史 期待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名譽敎授는 ‘인촌 金性洙와 韓國言論’ 發表를 통해 日帝 植民地 20年과 光復 後 10年間 수많은 言論人에게 活動 空間을 提供하고, 言論을 통해서 韓國 現代史의 큰 물결을 바른 方向으로 誘導한 隣村의 業績이 크다고 强調했다. 鄭 敎授는 “國內에서 獨立의 方略을 摸索하고 外國 獨立運動을 事例로 삼아 連繫를 試圖했으며 默默히 民族의 力量 培養에 獻身했던 人物이 金性洙였다”고 評價했다.

日帝强占期 國內 抗日運動의 中心機關은 言論이었다. 鄭 敎授는 “言論은 抗日 論調를 펼치면서 民族意識을 잃지 않도록 글로써 깨우치고 새로운 思想을 導入하는 窓口 役割을 맡았다”고 말했다.

當時 新聞社는 人材의 集結處이기도 했다. 隣村은 言論人과 文人들을 新聞社라는 當代의 尖端 組織에 包容해 民族 言論이 機能을 發揮하도록 했으며, 光復 後에는 이들이 政界 學界 文化界 等 多樣한 分野에서 活動할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고 鄭 敎授는 評價했다.

鄭 敎授는 동아일보가 1963年 동아방송을 開局해 新聞과 放送으로 報道와 批判 機能을 强化했으나 1980年 新軍部에 依해 廢房되는 悲運을 맞게 된 것을 想起하며 “이제 동아일보가 디지털 뉴미디어 時代의 綜合編成放送人 ‘채널A’를 準備 中이므로 隣村의 維持를 되살려 放送 言論의 새로운 歷史를 쓸 것으로 期待한다”고 말했다.

綜合討論會서 나온 인촌 行跡과 面貌

“브나로드 運動-맞춤法硏究 支援 韓國 社會 敎育과 發展의 原動力”

“隣村이 中央學校, 보성전문과 京城紡織을 引受해 발전시킨 活動은 敎育과 産業으로 國權 回復을 摸索하는 路線이었다.”(신용하 울산대 碩座敎授)

“간디가 隣村의 便紙에 보내온 答狀은 抗日보다 ‘朝鮮人다운 魂을 찾아야 한다’는 內容이었다. 이에 隣村은 民族獨立을 위한 民族文化 되찾기 運動을 積極的으로 벌였다.”(백완기 學術院 會員)

主題發表에 이어 進行된 綜合討論에는 최정호 울산대 碩座敎授, 백완기 學術院 會員, 신용하 울산대 碩座敎授, 김중순 高麗사이버大 總長, 김학준 단국대 理事長, 精英樹 인하대 敎授, 주익종 落星垈經濟硏究所 硏究員, 이옥순 印度文化硏究所長이 參與해 隣村의 面貌와 行跡을 紹介하고 그 意味를 살폈다.

최정호 敎授는 “隣村의 동아일보는 創刊 趣旨가 民族啓蒙이었다. 韓國에서 言論이 ‘無官의 帝王’ ‘社會의 木鐸’이라고 불리는 데는 그의 業績이 크다”고 說明했다. 김중순 總長은 “野黨의 뿌리도 인촌에서 始作하는 等 隣村의 遺産이 많다. 獨立鬪爭과 建國 過程에서 隣村의 役割은 影響力이 持續的인 만큼 浮刻시키는 努力이 必要하다”고 强調했다. 김학준 理事長은 “光復 直後 인촌과 동아일보의 反託과 單獨政府 樹立 支持에 對해 一部에서 ‘反統一勢力’이라는 꼬리票를 붙이지만 1990年代 公開된 옛 蘇聯 文書를 통해 當時 判斷은 正確했음이 立證됐다”고 말했다. 精英樹 敎授는 “동아일보가 브나로드 運動을 施行하고 맞춤法 硏究를 支援한 것은 大韓民國의 社會 敎育과 發展의 原動力이 됐다”고 評價했다.

주익종 硏究員은 “臨政에서 活動한 金九 先生의 行跡에 우리가 感動하듯, 日帝强占期 國內에서 民族의 힘을 키운 隣村의 實力養成運動에서도 感動을 받을 수 있도록 關聯 硏究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옥순 印度文化硏究所長은 “동아일보가 印度를 支配하는 英國을 辛辣하게 批判한 것은 바로 日帝를 批判한 獨立運動이었다”고 評價했다.

이날 學術大會는 이종은 國民大 敎授의 社會로 進行됐다. 현승종 隣村記念會 理事長은 開會辭에서 “隣村의 리더십과 비전, 包容力을 되돌아보면서 오늘날 어떤 스승이 切實한가를 짚어볼 수 있는 자리”라고 세미나의 意義를 밝혔다. 한승주 國際政策硏究院 理事長은 祝辭에서 “公船事後(公先私後)의 信念으로 늘 謙遜하고 남을 配慮하며 낮은 姿勢로 臨했던 隣村은 ‘過去完了’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所重한 가르침을 주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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