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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신동아

史記에 길을 묻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

混用無挑(昏庸無道)의 政治

  • 金映洙 | 史學者, 中國 史記 專門家

    入力 2016-01-22 14: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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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年 大韓民國’을 代辯하는 表現 中 하나가 ‘混用無挑(昏庸無道)’다. 暗鬱하고 혼란스러운 政治와 이를 부추긴 勢力들에 對한 날 선 批判이다. 極端的 表現이라는 指摘도 있지만 우리 現實이 그만큼 엉망진창이라는 視角을 反映한다.
    大學 敎授들이 年末 年例行事처럼? 發表하는 ‘올해의 四字成語’로 지난해엔 ‘混用無挑’가 選定됐다. ‘混用(昏庸)’은 ‘어리석다’는 뜻인데, 具體的으로는 ‘頭腦가 모자라고, 어떤 才能도 없는’ 狀態나 사람을 가리킨다. ‘無挑(無道)’는 ‘道가 없다’는 뜻인데, 大槪 ‘大逆無道(大逆無道)’나 ‘荒淫無道(荒淫無道)’라는 表現에 담아 쓴다. ‘大逆無道’는 順理나 常識을 멋대로 거스르는 짓이나 그런 者를 가리키며, ‘荒淫無道’는 淫蕩하기 짝이 없다는 뜻이다. ‘無挑’는 德을 베풀지 않는 暴惡한 政治, 그로 인해 造成된 暗鬱하고 混亂한 政治 狀況, 그런 政治를 일삼는 統治者를 나타내는 單語로 數千 年 동안 使用됐다.



    2015年 大韓民國 自畫像

    ‘混用’은 比較的 後代에 登場한 單語다. 宋나라 때 文學家 蘇東坡(蘇東坡)가 ‘獅子代父(思子台?)’라는 作品에서 어리석고 멍청하다는 뜻으로 使用한 事例가 確認되고, 그 後 몇몇 文人이 비슷한 뜻으로 使用했다. 같은 宋나라 때 사람 王命靑(王明?)은 ‘玉조신지(玉照新志)’에서 政治가 暗鬱하다는 뜻으로 ‘混用’을 使用한 바 있다.
    ‘無挑’의 出戰은 ‘論語(論語)’의 ‘季氏(季氏)’篇을 비롯해 ‘韓非子(韓非子)’ ‘詐欺(史記)’ 等으로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社會와 政治의 紛亂, 바른 길을 걷지 않는 것, 普遍的 常識과 整理를 벗어나는 것, 程度를 걷지 않고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과 暴君, 할 말이 없거나 方法이 없는 것 等 다양한 뜻으로 使用됐다. 特히 ‘詐欺’의 ‘진섭세가’에선 ‘벌無挑(伐無道)’라고 해서 暴惡한 君主를 討伐한다는 意味로 使用됐다.
    2015年 한 해 우리의 狀況을 代辯하는 單語로 이렇듯 대단히 否定的인 두 單語가 합쳐진 ‘混用無挑’가 選定된 것은 衝擊的이다. 그래서 或者는 지난 15年 동안 ‘교수신문’에 發表된 ‘올해의 四字成語’ 中 가장 强力하다는 寸評度 내놓았다. 그만큼 우리 狀況이 엉망이라는 指摘일 게다. 더욱이 統治者에게 붙일 수 있는 最惡의 修飾語가, 그것도 合成이라는 부자연스러운 方式을 통해 選定될 程度라면 얼마나 深刻한 現實 認識인지 斟酌할 수 있다.
    混用無道한 統治者와 그것을 바로잡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긴 側近들의 行態에 對한 徹底한 批判과 秋霜같은 責任 追窮이 따르지 않으면 狀況은 더 惡化되기 마련이다. 歷史上 混用無道한 統治者들의 行態와 最後, 그리고 그들을 混用舞蹈하게 만든 要因을 살펴보자.



    中國 10代 混用無挑 君主

    中國은 數千 年 王朝體制를 거치면서 約 600名의 皇帝나 王을 稱한 帝王을 輩出했다. 여기에 春秋戰國時代 諸侯國의 最高統治者인 國軍을 합치면 그 數는 더 늘어난다. 그런데 거친 統計이긴 하지만 이들 帝王 中 제 命에 죽은 者가 折半을 조금 넘을 程度라고 하니 帝王이란 자리가 얼마나 不安한 자리였는지 알 수 있다. 分裂期나 混亂期엔 非正常的으로 죽은 帝王의 數字가 더 늘었다.
    하지만 이 數値의 裏面을 좀 더 파고들면 그렇게 非正常的으로 삶을 마감한 帝王 大多數가 混用無道한 君主였다는 씁쓸한 事實을 確認할 수 있다. 이들 帝王 中 中國 네티즌이 選定한 10代 混用無挑 君主의 行跡을 簡略히 紹介한다. 이들보다 훨씬 混用無道한 者도 많지만 行跡이 比較的 뚜렷한 人物들로 限定했다.

    貪慾의 化身

    混用無道한 統治者의 거의 모든 特徵을 두루 갖춘 君主로는 周나라 女王(?王)을 들 수 있다. 女王은 무엇보다 탐욕스러웠다. 特히 영이工이라는 奸臣輩를 앞세워 무거운 稅金을 물리고 各種 特惠를 獨占하게 해 사사로운 利益을 잔뜩 챙겼다. 이에 代父 豫良否가 이렇게 直言했다.
    “王室이 衰退하고 있습니다. 영이共이란 者는 利益을 獨占하는 데만 關心이 있고 닥쳐올 큰 災殃은 모릅니다. 무릇 利益이란 萬物과 天地自然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獨占하면 그 被害가 커집니다. 天地萬物을 모든 사람이 같이 나눠 써야 하거늘 어찌 獨占할 수 있겠습니까. 그랬다간 많은 사람의 憤怒를 招來해 큰 災殃에 對備할 수 없습니다. 이런 式으로 王을 이끌면 王이 오래 자리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무릇 王이란 利益을 開發해 위아래로 公平하게 나눠야 합니다. 神과 人間과 萬物이 모두 알맞게 利益을 얻게 하고, 幸여 怨望이 있지는 않은지 걱정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只今 王께서 利益을 혼자 차지하려는 것이 果然 옳은 일입니까. 匹夫가 利益을 獨차지해도 盜賊이라 부르거늘 王이 그리하면 王을 따르는 사람이 줄어듭니다.하지만 女王은 그의 警告를 듣지 않았고, 끝내 영이功을 高位職에 任命해 權力을 掌握게 했다. 輿論의 批判이 거세지자 女王은 위나라 무당을 불러 誹謗하는 사람을 監視하게 하고, 그렇게 해서 摘發되면 죽였다. 그러자 誹謗하는 사람은 줄었지만 民心이 떠나고 權力層 內部의 마음도 떠나기 始作했다. 이에 女王은 自身이 誹謗을 없앴다며 기뻐 날뛰었다. 그러자 小功(召公)李 忠言했다.
    “그것은 말을 못하게 막은 것입니다. 百姓들의 입을 막는 일은 洪水를 막는 일보다 深刻합니다. 막힌 물이 터지면 被害가 엄청난 것처럼 百姓들 또한 같습니다. 따라서 물을 다스리는 者는 물길을 터주고, 百姓을 다스리는 者는 말을 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 百姓들에게 입이 있는 것은 大地에 山川이 있어 使用할 財物이 나오는

    것과 같고, 大地에 平野, 濕地, 沃土 等이 있어 입고 먹는 것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百姓들로 하여금 실컷 말하게 하면 政治의 잘잘못이 다 드러납니다. 좋은 일은 實行하고 나쁜 일은 防止하는 것, 이것이 바로 財物을 生産해 입고 먹는 것에 쓰는 方法입니다. 百姓들은 속으로 생각한 다음 입으로 말하며, 充分히 생각한 다음 行動으로 옮깁니다. 그런 그들의 입을 막는 일이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勿論 女王은 듣지 않았다. 結局 紀元前 841年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女王을 내쫓았다. 女王은 체(?)라는 곳으로 도망갔다가 쓸쓸히 죽었다.
    週 幽王(幽王)은 寵愛하는 愛妾 褒姒(褒?)를 웃기려고 危急한 狀況에서나 피우는 烽火를 隨時로 피우다가 정작 外敵이 쳐들어왔을 때 아무도 救援하러 나서지 않는 바람에 褒姒와 함께 悽慘하게 殺害당했다. 周나라는 都城을 빼앗기고 한瞬間 亡했다. 坪왕이 艱辛히 收拾해 都邑을 洛陽으로 옮겼으나 겨우 命脈만 維持하다 소리도 없이 歷史의 舞臺에서 사라졌다.



    부끄러움을 가르쳐라

    ?混用無道한 統治者들의 또 다른 特徵이자 共通點은 부끄러움을 몰랐다는 事實이다. 自身의 能力이나 權威를 過信하는 誇大妄想에다 이를 부추기는 奸臣들의 阿附가 합쳐진 結果라 할 수 있다. 무슨 짓을 하든 잘했다고 꼬리치는 者들을 곁에 두고 寵愛하니 自身의 잘못을 全혀 깨닫지 못하고, 이것이 自身의 能力과 자리에 對한 過度한 執着과 化學的 反應을 일으켜 結局 精神的으로 深刻한 問題를 일으켰다.
    反省할 줄 모르는 權力과 權力者는 結局 獨裁나 暴力으로 흐르고, 그 最後는 例外 없이 悲慘했다. 自身을 망치는 것은 當然했고, 더 나아가 百姓과 나라를 망치는 結果를 낳았다. 망가진 나라를 復舊하는 데는 엄청난 힘과 時間이 必要하다. 그래서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는 잘난 人材 熱로도 모자라지만, 나라를 망치는 데는 混用無道한 統治者 하나면 充分하다고 하는 것이다.
    統治者가 混用舞蹈하게 되는 原因을 파고들면 個人이나 牌거리의 사사로운 欲心과 만나게 된다. 이러면 公私 區分을 못하게 되고, 結局 부끄러움을 모르는 破廉恥한 人間으로 變質된다. 先賢들은 이런 問題의 根源을 家庭과 敎育에서 찾았다. ‘性理大典’에선 “사람을 가르치려면 반드시 부끄러움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敎人使人, 必先使有恥). 부끄러움이 없으면 못할 짓이 없다(無恥則無所不爲)”고 했다. 自身의 言行이 남과 社會에 被害를 주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만 그릇된 言行을 일삼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러려면 어려서부터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淸나라 때 學者 顧炎武(顧炎武)는 “청렴하지 않으면 받지 않는 것이 없고(不廉則無所不取),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不恥則無所不爲)”고 했다.
    混用無道한 統治者 大多數가 부끄러움에 對한 敎育을 받지 않았다. 設使 받았다 해도 그것을 實踐으로 옮기게 할 마땅한 制度的 裝置나 멘토度 없었다. 結局은 自己修養, 卽 後天的 努力에 依한 資質에 依存할 수밖에 없었다는 結論에 到達한다.
    이런 結論은 王朝體制에서나 只今 우리 現實에서나 何等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狀況이 쉽게 나아질 것 같지 않기에 國民의 絶望은 더욱 깊어진다. 2016年의 展望을 더욱 暗鬱케 하는 指標들이 2015年을 내내 휩쓸었고, 그 決定打가 ‘混用無挑’로 整理됐을 뿐이다. 大韓民國 歷史의 時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國民도 ‘混用’과 ‘無挑’의 늪으로 빠져드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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