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國時代 新羅의 學者, 文章家, 官僚. [要約] 최치원 南北國時代 新羅의 學者, 文章家, 官僚이다. 黨을 中心으로 한 國際 秩序를 認定하면서도 新羅의 固有性과 土着性을 알리려고 하였다. 特히, 사람에 道가 있고 사람은 나라의 差異가 없다고 主張하여, 人間 中心의 普遍性과 그에 따른 多樣性을 强調하여 新羅의 世界化를 이끌었다. 다만, 生存 當時 新羅가 衰退하여 政治 理念과 思想은 新羅 社會에서 實現되지 못하고, 以後 高麗 國家의 體制 整備에 影響을 미쳤다. 그의 文章은 東아시아 文書의 形式을 그대로 反映한 것이어서 朝鮮時代에도 特別히 注目을 받았다. [家計 및 成長 背景] 최치원(崔致遠)의 正確한 死亡 時期는 알 수 없지만, 857年(헌안왕 1)에 태어나 908年(孝恭王 12) 以後까지 活動하였다. 최견일(崔肩逸)의 아들이자 僧侶 賢俊(賢俊[賢儁, 賢雋, 玄準])의 동생으로, 최인연(崔仁?[崔彦?]) · 최서원(崔棲遠(崔栖遠))과는 4寸 乃至 6寸의 兄弟 사이였다. 최견일은 861年(景文王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