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州 石壯里 遺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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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州 石壯里 遺跡
(公州 石莊里 遺蹟)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私的
種目 私的 第334號
( 1990年 10月 31日 指定)
面積 8,334m 2
時代 舊石器 時代
所有 國有 및 事由
管理 公州市
位置
공주 석장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공주 석장리
公州 石壯里
公州 石壯里(大韓民國)
住所 忠淸南道 公州市 石壯里桐 98番地 外 15筆地
座標 北緯 36° 26′ 48″ 東京 127° 11′ 23″  /  北緯 36.44667° 東經 127.18972°  / 36.44667; 127.18972
情報 文化財廳 國家文化遺産포털 情報

公州 石壯里 遺跡 (公州 石莊里 遺蹟)은 公州市 石壯里桐 에 있는, 舊石器 時代 遺跡이다. 1990年 10月 31日 大韓民國의 史跡 第334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公州에서 大田으로 가는 錦江가에 있는 舊石器時代의 遺跡이다. 舊石器時代란 人類가 돌을 깨뜨려 道具로 使用하고 사냥이나 물고기잡이, 植物採集을 통해 生活限 文化段階를 말하는데, 人類가 태어나 1萬年 前까지의 時期로 보고 있다.

찍개·긁개·주먹도끼·새기개 等의 石器類가 다양하게 出土되었다. 後期 舊石器層의 집자리에서는 숯이 發見되었는데, 이것으로 連帶測定을 한 結果 約 2萬 5千年에서 3萬 年前의 집터임이 確認되어, 當時에 사람들이 이곳에서 生活하였음을 알게 되었고 戰後 時期에도 살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꽃가루를 調査한 結果 이 一帶에 소나무·전나무·木蓮·白蛤을 비롯한 다양한 植物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舊石器時代의 自然環境을 理解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우리나라 舊石器時代에 사람이 살았음을 처음으로 알게해 준 重要한 遺跡이다.

特徵 [ 編輯 ]

이곳은 1964~1992年까지 13次에 걸쳐 發掘調査된 地域으로 南韓에서 最初로 發見된 最大의 先史文化 遺跡이다. 延世大 손보기 博士팀이 1964年부터 發掘調査를 해서 처음으로 밝혀냈고, 1974年에는 敎科書에도 실리게 되어 先史時代의 大衆化를 열었던 遺跡이다. 石壯里 博物館이 2006年에 세워졌다.

이곳 石壯里 舊石器 遺跡은 先史時代 電氣·中期·後期의 다양한 文化層이 形成되었으며 집터, 불땐자리_ 사람의 털과 짐승의 털, 불에 탄 穀食낟알 等 住居地가 發見되었고, 긁개·찌르개·자르개·주먹도끼·주먹대패 等 打製石器 3,000餘 點이 發掘 出土되어 先史文化를 硏究할 수 있는 貴重한 資料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배밑바닥 模樣의 石器는, 1914年 리로서는 廢止된 뒤 自然部落의 이름으로 남아있던 石壯里의 이름을 따왔다. (以後 이 遺跡이 有名해져서 法整理 名稱이 石壯里로, 桐 昇格에 따라 石壯里東으로 變更된다)

元來 이름은 '公州石壯里舊石器遺跡' 였으나, 2011年 現在의 名稱으로 變更되었다. [1]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文化財廳考試制2011-116號 Archived 2017年 8月 25日 - 웨이백 머신 , 《國家指定文化財(私的) 指定名稱 變更 및 指定·解除 考試》, 文化財廳長, 大韓民國 官報 第17560號, 392-412面, 2011-07-28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