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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萬卷의 손길]돌봄 殺人 - 京鄕新聞
김萬卷 政治哲學者

知的 障礙 아들을 殺害한 아버지
40年을 保護者 이름으로 살았다
벼랑 끝에 몰리며 죽음을 擇했다

社會는 그 生命을 돌보기 위한
責務를 다했는가? 묻고 싶다

“죽을罪를 지었습니다. 反省하고 懺悔합니다. 反省하고 懺悔합니다. 反省하고 懺悔합니다. 反省하고 懺悔합니다. 反省하고 懺悔합니다. 反省하고 懺悔합니다.” 지난 5月3日 大邱地方法院 法廷에서 예순이 넘은 아버지가 吐露한 絶叫에 가까운 懺悔였다. 都大體 아버지는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이토록 고통스러워했던 걸까?

아버지의 非公式的인 罪名은 ‘돌봄 殺人’이었다. 아버지는 知的 障礙가 있는 서른아홉 살 아들을 殺害한 嫌疑로 裁判長에 섰다. 1984年 아이가 이 世上에 온 以後 아버지는 職場도 그만두고 아이의 돌봄을 專擔하다시피 했다.

아들이 스무 살이 되자 施設에 맡기기도 했지만 10年 만에 腦出血로 쓰러졌다. 더는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아들과 再活病院에서 6年을 보냈다. 그사이 아들은 몸을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憂鬱症에 걸렸다.

아버지를 무너뜨린 건 2021年에 일어난 交通事故였다. 발가락 絶斷을 비롯한 여러 損傷을 입었지만 合意金은 고작 50萬원이었고, 交通事故 治療를 支援하던 保險社는 治療費와 藥劑費를 返還하라는 訴訟을 提起했다. 거의 40年 동안 아들을 至極하게 돌보던 아버지의 選擇은 아들을 보내고 自身도 목숨을 끊는 일이었다.

法廷에서 檢事는 懲役 5年을 求刑하며 말했다. “被告人은 다니던 職場을 그만두고 40年間 아들을 돌봤다. 犧牲과 努力이 안타깝다. 그러나 生命은 絶對的인 價値를 지닌다. 社會에는 넘지 말아야 할 禪이라는 것이 있다.”

檢事의 말은 옳다. 하지만 이 말엔 우리가 함께 돌아봐야 할 內容도 있다. 社會에서 넘지 말아야 할 線이 絶對的 價値를 지닌 生命이라면, 그 生命을 지키기 위해 社會는 무얼 하고 있는가? 社會는 그 生命을 돌보기 위한 義務를 다하고 있는가?

김영옥과 류은숙은 <돌봄과 人權>에서 이렇게 쓴다. “社會가 안 하거나 못하고 있는 돌봄이 떠넘겨지는 자리, 健康한 사람들이 人間의 脆弱性과 相互依存性을 보지 않아도 되게 하는 자리, 그것이 ‘保護者’라는 자리다.”

大槪 이 ‘保護者’의 자리는 家族의 몫이 된다. 앞의 事件에선 아버지가 돌봄을 專擔했지만 大體로 女性, 特히 엄마의 몫이 된다. 司會가 누군가에게 保護者라는 딱紙를 붙이는 瞬間, 保護者가 된 이들은 單純한 法的 義務를 넘어 돌봄을 遂行하는 主體로서 道德的 義務마저 지게 된다. 甚至於 未成年者조차도 ‘保護者’로 呼名되는 瞬間 그 義務를 벗어날 길은 없다.

이 義務가 ‘道德的’이라는 말은 돌봄이 良心의 問題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萬若 保護者가 돌봄을 더는 할 수 없는 狀況이 되어 施設에라도 맡기게 되면, 마치 家族을 사람이 살지 못할 곳에 버리고 오는 듯한 마음의 呵責에 시달리게 된다.

무엇보다 保護者의 存在는 돌봄을 保護者-依存하는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孤立된 行爲로 만든다. 주된 保護者가 있다는 事實은 다른 이들에겐 돌봄 義務가 없다는 論理로 이어지기 十常이다. 그러다 보니 돌봄이 必要한 사람에게 事故라도 생기면 그 責任은 保護者에게 고스란히 轉嫁된다. 여기에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남에게 被害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社會的 壓迫은 돌봄을 더 孤立된 일로 만든다.

萬若 돌봄을 修行하는 이들이 貧困하거나 敎育 水準이 낮다면 돌봄 自體가 더 甚한 孤立으로 이어질 수 있다. 貧困은 生計 그 自體를 威脅할 뿐 아니라 작은 移動權조차 制限한다. 게다가 貧困과 敎育 水準은 必要한 情報의 不在로 이어진다. 앞선 事件의 아버지가 障礙人 支援活動事業의 存在를 알게 된 時期는 交通事故를 겪고 난 2021年이었지만, 關聯된 活動補助서비스 事業이 始作된 건 2007年이다. 40年 동안 아들을 돌보면서도 이런 支援事業의 存在를 몰랐던 게다.

障礙, 疾病, 老化와 같이 人間이 살면서 當然히 겪거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함께 돌아보아야 할 共通의 몫이라 볼 수는 없는 걸까? 그 일을 社會가 擔當할 몫이라 한다면 흔히 말하는 ‘民弊’가 되는 걸까?

아쉽게도 우리는 ‘삶이 힘들다’고 歎息하면서도, 그 삶을 더욱 힘겹게 만드는 障礙, 疾病, 老化가 當場 나의 일이 아니라면 外面하는 듯하다. 너의 苦痛은 네가 알아서, 民弊가 되지 않게, 보이지 않게 돌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더하여 保護者라는 名分으로 그들에게 돌봄의 무게를 穩全히 지운 채 傍觀하거나 最小限의 補助만 할 뿐이다. 이렇게 孤立된 돌봄은 돌봄이 必要한 사람뿐만 아니라 돌보는 사람마저 병들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선 社會가 돌봄 殺人의 共犯이다.

김만권 정치철학자

김萬卷 政治哲學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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