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性暴力, 우리는 서로의 證言者다 ??
오늘은 조금 길고 무거운 主題로 始作하려 합니다. 지난달 5日 發送한
레터
에서 5·18 光州民主化運動 當時 投入된 戒嚴軍이 女性을 相對로 수많은 性犯罪를 저지른 事實이 드러났다고 傳해드렸는데요.
그 以後의 이야기를 플랫이
單獨 取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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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月 28日, 光州市 北區 全南大 김남주記念홀에서 5·18 民主化運動眞相糾明調査委員會 主催로 懇談會가 열렸어요.
이
懇談會
는 戒嚴軍 等에 依해 性暴力 被害를 입은 이들이 1980年 以後 44年 만에 처음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앞서 委員會는
1980年 5月 18日부터 이듬해 1月까지 이어진 示威·連行·拘禁·調査 等 過程에서 一部 戒嚴軍이 恣行한 强制醜行, 强姦, 性拷問 等 被害 主張 事件 52件에 對해 調査
했습니다. 그 中 被害者가 死亡하거나 調査를 拒否하는 件 外에 19件이 把握됐고, 지난해 12月 總 16件에 對해 '眞相糾明' 決定을 내렸죠. 이 決定이 特히 重要한 理由는
調査의 法的 權限을 가진 國家機關이 過去事 性暴力 事件의 被害 實相을 糾明한 게 처음
利器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때까지 數字로만 存在했습니다. 1番 被害者, 24番 被害者, 181番 被害者 하는 式으로요. 그런데 一部가 먼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委員會에 要請했고, 오랫동안
數字 뒤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이들이 만나서 마침내 손을 잡게 됐죠.
이 만남은 의미하는 바가 큰데요, 于先
?
숨어서 孤立돼있던 性暴力 生存者가 함께 世上에 나와 첫발을 내디뎠다는 點
입니다. 1980年, 스물한 살 버스案內孃으로 일하던 이미영氏(假名) 얘기를 볼까요.
그날, 空輸部隊員들이 버스에 타더니 사람들을 毆打했습니다. 버스 바닥에 피가 흥건하게 흘렀죠. 이들은 李氏를 버스에서 내리게 한 뒤, 貯水池까지 끌고 가 强姦했습니다. 그런데 事件 以後 버스 會社에서는 '이미지가 墜落한다'며 입團束을 시켰습니다. 李氏는 平生 頭痛 때문에 神經安靜劑를 먹고 있고, 數次例 自殺 試圖도 했습니다. 그는 被害를 當할 때 눈을 감은 것을 後悔한다고 말했어요. "눈을 감는 瞬間 被害者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날 以後 눈을 감으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잠을 自己가 힘들었습니다.
性暴力은 被害者에게 平生 크나큰 苦痛을 남깁니다. 이들이 제대로 治癒하고 回復하기 위해선 個人的으로도, 社會的으로도 많은 努力과 支援이 必要하죠. 그런데 1980年代의 家父長的 社會 雰圍氣와 性暴力에 對한 通念은 被害者들을 더욱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李氏는 오랫동안 家族에게도 被害 事實을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2019年 아들이 職業 軍人이 되었는데, 李氏는 事情도 말하지 않고 痛哭하며 말렸습니다. 아들은 엄마가 왜 軍人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집에 잘 오지 않습니다.
이날 懇談會에서 李氏는 文房具에서 파는 '눈깔沙糖'을 가져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44年은 제게 不利했고 地獄이었거든요. 앞으로는 이 沙糖처럼 달콤하게 살고 싶어요. 다른 건 모르겠고 아주 반갑다는 거 하나하고요, 우리 熱心히 끝까지 가자는 거요."
이番 調査의
또 다른 意義는
?
'목소리의 連帶'가 큰 結果를 낳았다는 點
입니다. 性暴力, 그것도 無慮 40餘年 前의 性暴力 事件을 이제 와서 證明한다는 건 宏壯히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調査 過程에서 被害者들의 陳述이 하나하나 쌓인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여러名의 이야기가 마치 퍼즐 조각처럼, 그날들의 場所와 狀況을 再構成하는 役割을 했기 때문이죠.
委員會에서 調査를 맡은 윤경회 팀長은
"19名이 證言했기 때문에 한 사람의 被害가 다른 사람의 被害 事實을 牽引했고, 뒷받침하는 證據가 됐다"
며 "國家 暴力 事件에서 性暴力의 類型이 드러날 수 있었다"고 說明합니다.
被害者들은 이날 懇談會에서 自助모임을 만들자고 論議한 狀況입니다. 國家를 相對로 한 精神的 被害 損害賠償請求 訴訟도 함께 進行할 計劃입니다. 플랫 亦是 오늘 1回 記事를 始作으로 連續 報道를 이어갈 豫定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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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목소리가 멀리까지 가 닿을 수 있도록, 入住者 여러분도 함께 連帶하고 應援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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