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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海監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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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海監營 (黃海監營)은 朝鮮時代 의 8個 도(道) 가운데 하나였던 黃海道 의 行政, 私法을 擔當하던 종2品 觀察使 가 勤務하던 곳이다. 現在의 道廳(道廳) 所在地 및 道廳 建物에 該當한다.

沿革 [ 編輯 ]

監營 建物 [ 編輯 ]

海州 (海州) 所在 黃海監營에는 代表的으로 다음과 같은 같은 建物이 있었다.

監營 隣近 施設 [ 編輯 ]

  • 해主婦(海州府) : 海州 地域의 行政, 司法, 治安을 擔當하는 種5品 海州판관(海州判官)의 官廳 (監營 東北쪽, 海州邑城 北門 안쪽에 位置)
  • 客舍 (客舍) : 各種 儀禮를 行하거나 監營을 訪問한 官員의 宿泊 用途로 使用되던 建物 (監營 東쪽에 隣接)
  • 中營(中營) : 監營 所屬 軍士를 指揮하는 鄭3品 中軍 (中軍)의 勤務 空間 (客死 東쪽에 位置)
  • 靑短禹헌(靑丹郵軒) : 靑端役(靑丹驛) 察訪 의 勤務 空間 (海州邑城 東門 안쪽에 位置)
  • 純名門(順明門) : 海州邑城 南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國家指定文化財 國寶級 第72號) [5]

監營 建物 活用 [ 編輯 ]

1910年 日帝强占期 가 始作된 後에도 宣化堂 建物 等이 黃海道 道廳으로 繼續 活用되었으나, 1927年 에 같은 位置에 廳舍를 新築하면서 宣化堂 等 主要 建物이 撤去되었다. 芙蓉堂은 韓國戰爭 時期에 消失되어 基壇 部分만 남았었는데, 2003年 에 復元되었다.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1871年 刊行된 《해서읍지(海西邑誌)》의 記錄에 따르면 1471年에 監營을 풍천에서 黃州로 옮기면서 黃海道가 되었다. 監營 所在地는 以後 여러 次例 黃州와 海州를 오가다가 海州에 定着하였다.
  2. 修養館(首陽館)이라고 불렀다.
  3. 宣化堂 建物이었으나 內衙로 用途가 轉換되었다. 內衙의 中心 建物이 된 예전 宣化堂(修養館) 建物을 그대로 修養館이라 指稱하기도 하였다.
  4. '해鉏布政門(海西布政門)'이라는 扁額이 걸려 있었다. 해서는 黃海道를 뜻한다.
  5. 現在는 城門이 있던 터만 남아 있다. 城門은 日帝强占期 때 道路를 擴張 開設하는 過程에서 黃海道靑 正面 앞으로 石築氣團 部分만 移轉되어 正門으로 使用되었다가 나중에 모두 撤去(또는 다른 곳으로 移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