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琛
(許琛 ;
1444年
9月 27日
(
陰曆 8月 16日
) ~
1505年
6月 17日
(
陰曆 5月 16日
)
[1]
)은
朝鮮
의
文身
,
是認
이다. 本貫은
陽川
. 字는 헌지(獻之), 號는 이헌(?軒)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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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5年
(
成宗
6) 文科에 乙科로 及第하여 地平, 敎理를 거쳐
同副承旨
,
左副承旨
,
吏曹參判
,
禮曹參判
,
大司憲
,
右承旨
,
左承旨
를 지내고 한 때 全羅道觀察使로 選定을 베풀기도 했다. 燕山君 때
刑曹參判
,
兵曹參判
을 하다가 戊午士禍 때 左遷되어 慶尙道觀察使로 있다가
兵曹參判
,
好調參判
,
刑曹參判
,
吏曹參判
으로 特進官을 겸하고
吏曹判書
等을 지냈다.
[2]
當代의 有名한 學者인 신종호,
曺偉
, 兪好仁 等과 함께 學問과 德行으로
이름
을 떨쳐 世子(
연산군
)의 信任을 받았다.
1489年
에 《三綱行實》을 整理하였으며,
1504年
에
右議政
을 거쳐
左議政
이 되었다. 成宗 때
윤비
廢位를 反對했기 때문에
甲子士禍
때에는 火를 면할 수 있었다. 그는 燕山君의 옳지 못한 政治를 바로잡으려고 努力하였으나 이를 이루지 못하고 病으로 死亡하였다. 諡號는 문정(文貞)이다.
關聯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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電氣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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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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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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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안국, 《모재집》 卷14, 虛 문정공 行長
- ↑
1502年
에
領議政
人
한치형
이 別世한 後 大規模 人事異動이 있었는데
左議政
人
成俊
,
右議政
人
이극균
도 昇進을 하고
吏曹判書
人
姜龜孫
,
戶曹判書
人
노공필
,
兵曹判書
人
이극돈
,
刑曹判書
人
박안성
,
工曹判書
人
박숭질
도 大擧 辭職하거나 다른 자리로 移動을 했다.
領議政
에
成俊
,
左議政
에
이극균
,
右議政
에
柔順
이 任命되고
吏曹判書
에 許琛,
戶曹判書
에
이집
,
兵曹判書
에
姜龜孫
,
刑曹判書
에
김수동
,
工曹判書
에
김응기
等이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