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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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운사
韓雲史
作家 情報
本名 韓間남
出生 1923年 1月 23日 ( 1923-01-23 )
일제강점기 日帝 强占期 忠淸北道 槐山
死亡 2009年 8月 11日 ( 2009-08-11 ) (86歲)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國籍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職業 是認
書藝家
劇作家
大衆音樂 作詞家
映畫 시나리오 脚本家
映畫 脚色家
映畫俳優
學歷 忠淸北道 淸州高等商業學校 卒業
日本 주오 大學校 哲學과 中退
서울大學校 佛語佛文學科 中退
活動期間 1946年 ~ 2009年
장르 詩文學
書藝
戱曲
映畫 脚本
映畫 脚色
受賞 1965年 靑龍映畫賞 脚本賞
子女 한上院 (넷째아들)

한운사 (韓雲史, 1923年 1月 23日 ~ 2009年 8月 11日 )는 大韓民國 是認 , 書藝家 , 劇作家 , 映畫 시나리오 脚本 作家, 映畫 脚色家 , 映畫 俳優 이다.

生涯 [ 編輯 ]

履歷 [ 編輯 ]

本館 淸州 韓氏 이고 忠淸北道 槐山郡 에서 出生하였으며 本名은 한間남이다. 淸州商業高等學校를 卒業한 後 1946年 서울大學校 佛文科에 在學 中 KBS 라디오 드라마 「어찌하리까」로 放送界에 데뷔하였다.

1948年 放送作家로 活動을 始作했으며 1961年 '玄海灘은 알고 있다' 等 小說과 1965年 映畫 '빨간마후라' 等 20餘篇의 映畫시나리오, '南과 北' 等 라디오 및 드라마 放送臺本을 執筆했으며 2002年 韓國放送 映像産業振興院 放送人 名譽의 殿堂에 登載됐다. 또한 韓國日報 文化部 部長, 한국방송작가협회 理事長, 韓國펜클럽 代表, 한국방송공사 理事, 韓日親善 協會 副會長 等에 자리하며 放送界의 發展에 貢獻을 하였다. [1]

韓國文學과 放送界에 足跡을 남긴 한운사를 기리는 資料展示館이 故鄕인 청안면 邑內로 45-6(읍내리 473)에 位置한 生家 터에 事業費 10億 9000萬 원을 들여 地上 2層 規模((239.59m 2 ))의 한운사記念館이 建立되었다. [2]

大鐘賞 脚本賞?청룡상 脚本賞?한국일보 演劇映畫上?第9回 放送引上(放送功勞 部門)을 받았고, 2009年에 銀冠文化勳章이 追敍되었다. [3]

主要 經歷 [ 編輯 ]

家族 關係 [ 編輯 ]

建築家 한만원(韓晩元)李 첫째아들, 디자이너 돌리앙한(한도원(韓度元))이 둘째아들이며 그와 雙둥이兄弟인 作家 한중원(韓重元)이 있고 1988年 기타 演奏者 데뷔한 기타리스트 兼 作曲家 한上院(韓尙元) 은 그의 넷째아들이다.

作詞 代表作 [ 編輯 ]

  • 《南과 北》(1964 라디오 드라마/1965 映畫 主題가)-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박춘석 作曲/곽순옥 노래)
  • 《빨간 마후라》(1964 映畫主題歌)(황문평 作曲/쟈니 브라더스 노래)
  • 《마두라 송》(1985) (김남균 作曲/精髓라 노래)
  • 《레만湖에 지다》(1979 KBS 同名 外國 드라마 主題가) (外國曲/임택수 編曲/5.너랑 나랑 노래)
  • 《눈이 내리는데》(1960 KBS(HLKA) 라디오 드라마 어느 하늘 아래 主題가/1969년 映畫 主題가) ( 손석우 作曲/ 최양숙 원곡/ 韓明淑 , 블루벨즈 노래)
  • 《잘 살아 보세》(1972) (김희조 作曲/전석환 編曲/새마을 合唱團 노래)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韓國歷代人物綜合情報” . 2018年 5月 16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8年 5月 16日에 確認함 .  
  2. 오인근 (2013年 6月 16日). “한운사 記念館 開館式 갖고 本格 運營” . 《대전일보》 . 2018年 5月 14日에 確認함 .  
  3. “韓國歷代人物綜合情報시스템” . 2018年 5月 16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8年 5月 16日에 確認함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