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아벨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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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라르와 엘로이즈

피에르 아벨라르 ( Pierre Abelard , 1079年 ~ 1142年 4月 21日 )는 或은 피터 아벨라드는 中世 프랑스 哲學을 代表하는 哲學者이자 神學者로, 中世 哲學史 全體를 支配한 普遍 論爭 에서 빠질 수 없는 人物이다. 라틴語 이름은 페트루스 아벨라르두스(Petrus Abaelardus)였다. 흔히 스콜라 哲學 의 아버지라 불린다.

生涯 [ 編輯 ]

아벨라르는 1079年 프랑스 西部의 都市 낭트 隣近 르팔레 라는 곳에서 榮州이자 노트르담 大聖堂 의 修士神父를 지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1] 普遍 論爭의 養畜을 形成했던 唯名論 實在論 사이에서 自身만의 獨特한 認識論 形而上學 體系를 構築했으며, 家庭 敎師로 가르쳤던 弟子이자 後에 로마 가톨릭교회 修女 가 되는 엘로이즈와의 사랑으로도 有名하다. [2]

아벨라르는 當時 實在論 陣營을 代表했던 샹布衣 기욤 과 親分을 쌓은 뒤, 1102年 파리 近郊에 入城, 敎育者로서의 名聲을 쌓아가기 始作한다. 그리고 自身의 立場을 보다 分明히 하게 됨에 따라 意見 差異를 克服하지 못하고 結局 기욤과 訣別하게 된다.

普遍 論爭에 對한 아벨라르의 立場 [ 編輯 ]

기욤은 各其 다른 事物을 하나의 槪念으로 묶는 共通的인 存在者, 卽 普遍者가 事物들 사이에 存在하는 差異와는 關係없이 實在함을 主張했다. 이를테면 '人間'과 같은 種(種) 및 有(類)의 槪念들은 '철수'나 '영희'와 獨立的인 한便으로 하나의 ' 實體 '로서 存在한다는 것이다. 이에 아벨라르는 '종'이나 '유' 等의 一般 槪念들이 但只 言語의 産物에 不過하다는 唯名論 의 立場을 拒否했다. 實際로 普遍 槪念들이 텅 빈 嗜好에 不過하다면 그러한 槪念들이 包含된 文章 또한 아무런 意味가 없거나 意味가 있다고 해도 理解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듯 部分的으로는 기욤의 實在論을 받아들였는데, 다른 한便으로는 그러한 槪念의 實在性이 物理的인 것이 아니라 觀念的이라고 主張함으로써 기욤을 反駁했다. 普遍者가 普遍的이고 一般的일 수 있는 것은 但只 人間의 思考에 依한 것일 뿐, 그것이 通常的인 意味에서 或은 플라톤的 意味에서 實在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벨라르에 따르면 普遍 槪念은 人間의 오성 이 具體的인 事物들에 對한 經驗을 土臺로 各各의 類似한 屬性들을 추려낸, 卽 抽象한 結果物이다. '人間'이라는 槪念은 '撤收'와 '영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서 發見되는 共通된 屬性 을 통해 成立된다. 이렇듯 아벨라르는 實在論과 唯名論의 二分法的 論理에서 벗어나 人間 思考의 經驗的 側面과 抽象的 側面을 모두 重視함으로써 中世 普遍 論爭의 限界를 克服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立場은 槪念論 이라고도 불린다.

著書 [ 編輯 ]

書簡 形式의 自敍傳인 Historia Calamitatum ( 英文 飜譯本 )가 있으며, 死後에는 엘로이즈와 交換한 便紙들도 出刊되어 以後 수많은 文學 作品들에 모티브를 提供했다.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榮州이자 노트르담~: 《世界風俗史》(下), 파울 프리샤우어 지음, 이윤기 옮김(1992,까치) 12쪽 參照.
  2. 엘로이즈와의 사랑에 對해서 仔細한 것은 《世界風俗史》(下), 파울 프리샤우어 지음, 이윤기 옮김(1992,까치) 12~16쪽 參照.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