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크사버 볼프강 모차르트
(
獨逸語
:
Franz Xaver Wolfgang Mozart
,
1791年
7月 26日
~
1844年
7月 29日
)는
오스트리아
出身의 피아니스트이자, 作曲家이며, 흔히 '音樂의 신동'이라는 別名으로 有名한 作曲家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의 아들로 알려져있다. 모차르트의 아들이라는 點 때문에, 種種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2歲
(
獨逸語
:
Wolfgang Amadeus Mozart II
)라는 別名으로도 알려져있다. 初期
浪漫主義 音樂
과 後記
古典主義 音樂
을 代表하는 音樂家이다.
生涯
[
編輯
]
神聖 로마 帝國
의 首都였던
빈
에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의 여섯 아이들 中 막내로 태어난 그는 自身보다 손위에 있던 兄과 누나들이 次男이었던 兄
카를 토마스
를 除外하고는 모두 幼兒期에 死亡하여 事實上 次男으로 자랐다. 프란츠 크사퍼가 태어난지 4個月 만에 아버지
볼프강 모차르트
가 死亡하였고, 카를 토마스와 프란츠 크사퍼 兄弟의 어머니인
콘스탄체 베버
가
덴마크
의 外交官인
게오르크 니콜라우스 폰 니센
과 再婚하면서 그의 밑에서 자랐다. 프란츠 크사퍼는
親아버지
의 才能을 꼭 빼닮았고 德分에 養아버지와 어머니의 期待를 한 몸에 받으며 다섯 살 때부터 音樂活動을 始作하였다. 그는 親아버지와 親했던 音樂家인
요제프 하이든
과
안토니오 살리에리
,
요한 네抛무크 훔멜
等을 師事하며 才能을 키워나갔고, 11살에 自身의 첫 作品인 《
피아노 4重奏曲 G短調 Op.1: 1樂章
》을 發表하기도 하였다. 이윽고 13歲 때인
1805年
4月
에
빈
에 있는
테아터 안 데어 빈
에서 첫 公演을 가졌는데, 當時의 사람들로부터
모차르트
가 살아 돌아왔다는 極讚을 받았다. 이로서 有名稅를 탄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2歲'(
獨逸語
:
Wolfgang Amadeus Mozart II
)라는 藝名을 使用하며 當時
오스트리아領
폴란드
에 屬해있던 都市인
리비우
를 中心으로 音樂敎師와 피아니스트, 作曲家로서 왕성히 活動하였다.
1838年
에 다시
빈
으로 돌아온 그는 親아버지
볼프강 모차르트
의 故鄕인
잘츠부르크
로 가서 아버지 모차르트를 기리기 위해 設立한 音樂堂인
모차르테움
의 設立式에서 首席 指揮者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841年
부터는
카를스바트
(오늘날
체코
의
카를로비바리
)로 移住해 그곳에서 弟子인
에른스트 파우어
를 가르쳤다.
1844年
에 그곳에서
胃癌
으로 死亡하였다. 프란츠 크사퍼는 平生을 獨身으로 살았고, 그의 兄인
카를 토마스
亦是 結婚을 하지 않았으므로 두 兄弟를 마지막으로 모차르트 家門의 代가 끊겼다. 프란츠 크사퍼는 生前에 훌륭한 音樂家로서 相當한 名聲을 누렸고 아버지
볼프강 모차르트
못지 않은 成功을 거두었으나, 모차르트의 아들이라는 點에 발목을 잡혀 死後에는 名聲이 빛을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