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스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포카스
Flavius Phocas Augustus
로마 皇帝
在位 602年 - 610年
前任 마우리키우스
後任 이라클리오스
身上情報
宗敎 칼케돈 基督敎

포카스 ( 라틴語 : Flavius Phocas Augustus , ? - 610年 )은 602年 前任 皇帝 마우리키우스 로부터 帝位를 簒奪하여 東로마 皇帝 가 되었고 610年 叛亂으로 帝位에서 쫓겨났다.

608年 포카스가 로마를 訪問한 記念으로 세운 기둥 (로마, 포룸 로마눔)

포카스가 帝位에 오르기 前에 對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다. 602年 마우리키우스에 對한 叛亂이 일어났을 때 白人 大將이었던 그는 叛亂軍을 이끌로 콘스탄티노폴리스 로 進擊하여 마우리키우스를 몰아내고 皇帝가 되었다. 當時의 歷史家에 따르면 그의 外貌는 붉은 곱슬머리에 툭 튀어나온 짙은 눈썹은 코에 닿을 만큼 길었고 醜한 몰골이었다. 또한 殘忍한 性格으로 邪惡한 拷問을 즐겼다. [1]

포카스의 治世 8年은 帝國의 暗鬱함만을 가져온 期間이었다. 그는 恐怖 政治로 수많은 競爭者와 官僚들을 拷問해 죽였고 前任 皇帝의 側近과 조금이라도 疑心이 가는 사람은 모두 처형당했다.

603年 前任 皇帝 마우리키우스와 親分이 있던 사산조 페르시아 호스로禹 2歲 는 포카스에게 戰爭을 宣布하고 포카스에게 등을 돌린 나르세스라는 將軍과 合勢해 포카스의 帝國軍을 攻擊했다. 포카스는 서둘러 아바르族 과 强化를 맺고 全 兵力을 東部로 召集해 戰爭에 들어갔으나 軍事 行動마다 失敗하였다.

나르세스度 身分을 保障한다고 속이고 首都로 불러 몰래 處刑해 버렸다. 結局 페르시아는 608年 小아시아 의 大部分을 占領하고 보스포루스 海峽 까지 進出하였다. 아바르族과 슬라브족 도 續續 帝國의 領土로 進出하였다.

그러나 포카스는 帝國을 統合하기는커녕 東部의 유대人 들을 迫害하고 이에 反撥한 유대人은 그리스도人 들을 虐殺했다. 東邦의 混亂과 外敵의 侵入으로 포카스는 漸漸 더 偏執症的인 不安 狀態로 빠져 들어갔고 殘忍한 拷問과 肅淸이 이어지고 帝國 全域이 거의 無政府 狀態로 統制가 不可能하게 되었다.

이러한 混亂을 보고 있던 카르타고 總督 이라클리오스(헤라클리우스)는 608年 軍隊를 모아 帝國을 다시 掌握하려고 試圖하고 두 아들에게 軍隊를 주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進軍하게 했다.

그 아들 中 하나인 젊은 헤라클리우스 테살로니키 에서 거의 1年을 머물면서 軍隊를 自己便으로 만들고 가는 곳마다 歡迎을 받았다. 드디어 610年 10月 3日 首都에 入城한 이라클리오스는 포카스를 붙잡아 處刑하고, 10月 5日 皇帝가 되었다.

포카스는 이라클리오스에게 處刑될 때 여러 조각으로 잘려 사냥개들에게 던져졌다고 한다.

各州 [ 編輯 ]

  1. 존 줄리어스 노리치, 남경태 驛 《비잔티움 年代記》第1卷:創建과 混亂, 바다출판사, (2007) 460쪽

外部 링크 [ 編輯 ]

  • 위키미디어 公用에 포카스 關聯 미디어 分類가 있습니다.
前任
마우리키우스
(582 - 602)
비잔티움 帝國의 皇帝
602年 - 610年
後任
이라클리오스
(610 - 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