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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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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항 (崔錫恒, 1654年 ~ 1724年)은 朝鮮 後期의 文臣·學者이다. 本貫은 全州 . 字는 여구(汝久), 號는 손와(損窩), 諡號는 忠奸(忠簡). 領議政 최석정 의 아우이다.

生涯 [ 編輯 ]

肅宗 때 文科에 及第해 檢閱, 奉敎 等을 지내고 正言, 地平을 거쳐 平安道 暗行御史로 民情을 다스리며 貪官汚吏들을 摘發해서 肅宗의 寵愛를 받았고 正言, 地平, 副校理까지 지냈으나 己巳換局으로 罷職되고 甲戌換局으로 再登用되어 普德, 副修撰, 兼弼善, 사인을 거쳐 承旨 가 되고 大司諫 , 大司憲 을 거쳐 承旨로 있을 때 張禧嬪의 賜死를 反對하다 慶尙道觀察使로 밀려나고 以後 大司諫 承旨 를 거쳐 開城留守가 되고 大司諫 , 都承旨 , 副提學 , 大司成 을 거쳐 吏曹參判 , 藝文館 提學 으로 老論 大臣들과 맞섰다. 以後 吏曹參判 , 大司憲 , 藝文館 提學 을 거쳐 吏曹參判 , 副提學 , 大司憲 을 거쳐 刑曹判書 로 昇進, 吏曹判書 가 되며 老論이던 김창집 , 이이명 等과 對立했고 刑曹判書 , 兵曹判書 , 左參贊 , 漢城府判尹 , 吏曹判書 , 戶曹判書 를 두루 하며 警鐘의 側近으로 同知義禁府事를 한 뒤 判義禁府事 , 漢城府判尹 , 吏曹判書 , 刑曹判書 , 兵曹判書 를 거쳐 地境言辭를 겸하고 判義禁府事 , 兵曹判書 를 하며 藥房提調를 겸하다가 知經筵事와 判義禁府事 를 거쳐 兵曹判書 , 藝文館 提學 에 이어 兵曹判書 , 右參贊 , 刑曹判書 를 거쳐 藝文館 提學 , 左參贊 , 判義禁府事 를 지낸 뒤 京畿道觀察使를 거쳐 左參贊 , 吏曹判書 를 지내고 江華有數와 兵曹判書 , 判義禁府事 , 禮曹判書 를 거쳐 景宗 때 判義禁府事 , 兵曹判書 , 吏曹判書 를 한 뒤 辛壬士禍로 實權을 掌握해 右賓客을 겸하고 吏曹判書 , 左參贊 , 兵曹判書 를 거쳐 右議政 이 되고 左議政 까지 昇進한다.

評價 [ 編輯 ]

當時 少論 4代身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著書로 《손臥遊고(損窩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