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橫城 中金利 三層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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橫城 中金利 三層石塔
(橫城 中金里 三層石塔)
대한민국 江原特別自治道 有形文化財
種目 有形文化財 第19號
( 1971年 12月 16日 指定)
數量 2期
時代 南北國 時代
所有 共有
位置
횡성 중금리 삼층석탑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횡성 중금리 삼층석탑
橫城 中金利 三層石塔
橫城 中金利 三層石塔(大韓民國)
住所 江原特別自治道 橫城郡 갑천면 구방리 512
座標 北緯 37° 32′ 45″ 東京 128° 4′ 2″  /  北緯 37.54583° 東京 128.06722°  / 37.54583; 128.06722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橫城 中金利 三層石塔 (橫城 中金里 三層石塔)은 江原特別自治道 橫城郡 갑천면 횡성댐 望鄕의 동산에 있는, 南北國 時代 新羅의 三層石塔 2基이다. 1971年 12月 16日 江原特別自治道의 有形文化財 第19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東西로 서 있는 雙塔으로, 塔을 품었던 절터는 民家와 耕作地로 變하여 塔 以外의 다른 遺物은 남아있지 않다.

2層 基壇(基壇)위에 3層의 塔身(塔身)을 올린 모습이며, 두 塔이 거의 같은 規模와 樣式을 갖추고 있다. 基壇에는 기둥模樣과 佛法을 守護하는 8副腎中(八部神衆)을 彫刻하였고, 塔身의 몸돌에는 기둥模樣만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面의 받침이 5단씩이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위로 둥근 머리裝飾이 남아 있다.

基壇에 裝飾된 彫刻手法이나 各 部分의 짜임새로 보아 統一新羅時代에 세운 것으로 推定된다.

復元 [ 編輯 ]

日帝强占期 에 東塔이 解體되어 搬出되다가 霧散되었으나, 石材는 流失되고 塔은 崩壞된 채 放置되었다. 1975年 崩壞된 東塔과 倒壞 直前의 西塔을 全面 解體 復元하여 제 모습을 찾았다. [1] 갑천면 中金利에서 塔鈍智로 불리는 곳의 밭 가운데 東西로 約 8m의 距離를 두고 三層石塔 2期가 서 있었다. 記錄이 남아 있지 않아 正確한 年代를 밝힐 수 없으나 基壇免席의 八部衆像과 屋蓋石 等 各 部分의 彫刻 手法과 瓦片들로 미루어 8世紀 末에서 9世紀 初의 것으로 推定된다. 1985年 횡성댐을 만들면서 元來 자리가 水沒되어 횡성댐 望鄕의 동산으로 移轉되었다. [1]

各州 [ 編輯 ]

  1. 김승기 (2010年 7月 28日). “悲運의 中金利 三層石塔” . 橫城뉴스 . 2013年 2月 18日에 確認함 .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