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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次 모로코 危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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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次 모로코 危機
모로코 危機 의 一部

第2次 모로코 危機 以後인 1912年 3月 30日 모로코에 駐屯 中인 프랑스軍
날짜 1911年 4月 - 1911年 7月 1日
場所
結果 프랑스-스페인 條約
交戰國
독일 제국 獨逸 帝國

대영 제국 大英帝國
프랑스 프랑스 第3共和國

스페인의 기 스페인
指揮官

독일 제국 빌헬름 2歲
독일 제국 테오발트 폰 베트만홀베그

독일 제국 헤르만 빌베르크

영국 조지 5歲
영국 에드워드 그레이
프랑스 아르망 팔리에르
프랑스 조제프 카요
스페인 알폰소 13歲

스페인 호세 카날레야스

第2次 모로코 危機 ( 獨逸語 : Panthersprung ) 또는 아가디르 危機 모로코 에서의 地域住民들의 叛亂에 프랑스軍이 介入하자, 1911年 7月 1日 獨逸이 自國國民 保護를 口實로 모로코의 아가디르 港(港)에 戰艦 '판터號'를 派遣하면서 發生했다. 獨逸은 自國의 利益을 保護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나, 事實은 프랑스를 威脅하기 위한 行動이었다. 이 아가디르 事件으로 그해 여름과 가을 동안 戰爭 이야기가 오르내렸으나, 國際協商이 繼續된 끝에 1911年 11月 4日 會談이 妥結됨으로써 危機를 넘기게 되었다.

이 會談에서 모로코는 프랑스領이 되었으며, 代身 獨逸은 프랑스領 콩고 領土의 一部를 割讓받았다. 스페인은 처음에는 이러한 決定에 反對했지만, 英國의 仲裁를 통해 1911年 11月 27日 프랑스-스페인 條約을 締結함으로써 모로코에서의 프랑스-스페인 境界를 若干 修正할 수 있었다. 1911 ~ 1912年에 열린 列强의 協商으로 탕헤르와 그 周邊地域은 國際化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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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