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次 다나카 가쿠에이 內閣
(
日本語
:
第1次田中角??閣
)은
다나카 가쿠에이
가 第64代
內閣總理大臣
으로 任命되어,
1972年
7月 7日
부터 1972年
12月 22日
까지 存在한
日本의 內閣
이다.
槪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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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年 7月 5日
自由民主黨 總裁 選擧
에서 다나카 가쿠에이가
후쿠다 다케오
를 누르고 次期 總裁로 選出된 것에 依해 다음捺印 7月 6日에 召集된 第69回 臨時國會에서 衆議院 및 參議院 兩院에서의
首班 指名 選擧
를 통해 다나카가 內閣總理大臣으로 指名, 곧바로 內閣을 發足했다.
第1次 다나카 가쿠에이 內閣 時代의 主要 事件은 다음과 같다.
- 中華人民共和國
과 日本間의 國交正常化에 合意하는
中日共同聲明
이 1972年 9月 29日 中華人民共和國
베이징
에서 調印됐다. 이 共同聲明에서 日本은 中華人民共和國을 唯一한 合法 政府로 認定하고
中華民國
科의 外交 關係도 斷絶됐다.
閣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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補充 說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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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케·아리타는 當初 閣僚에 指名되면서도 그 直前에 있었던 自由民主黨 總裁 選擧에서
후쿠다 다케오
를 支持했다는 理由로 入閣을 拒否했다. 그 後 후쿠다의 說得에 應하는 形態로 入閣했다.
미키는 所謂 無任所代身으로서 立脚하여 8月 29日에 이른바 副總理로서 指名을 받았다. 이 때문에 7月 7日의 引證館 任命式 및 官報 揭載 司令에서의 國務 代身으로서의 序列은 마지막으로 돼 있지만 같은 해 12月 22日
第2次 다나카 가쿠에이 內閣
의 發足에 따르는 閣僚 地位 喪失의 官報 揭載에서는 羅列 順序에서 첫 番째로 돼 있으며 또한 같은 第2次 內閣에서도 國務大臣으로서의 筆頭로 羅列돼 있다.
政務 次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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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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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內閣名은 內閣總理大臣의 姓을 따서 標示한다.
- 城으로는 內閣의 區分이 안 되는 境遇에 한해서 이름까지 標示한다.
- 이름 뒤의 數字는 次數를, 個(改)는 改造內閣을 意味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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