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赤壁歌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本文으로 移動

赤壁歌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赤壁歌
대한민국 大韓民國의 無形文化財
戰勝者 송순섭 (國家無形文化財 第5號)
김일구 (國家無形文化財 第5號)
윤진철 (國家無形文化財 第5號)

赤壁歌 (赤壁歌)》는 《 三國志演義 》에서 赤壁大戰 을 바탕으로 한 판소리 다섯 마당 中의 하나. 一名 《華容道타령(華容道-)》이라고도 하며, 《觀優戱》에도 紹介되어 있다.

판소리의 바탕이 되는 敍事의 基本이 明確히 小說이라는 點에서 다른 판소리 作品과 區別된다. 順調 · 憲宗 · 哲宗 의 3代에 걸쳐 活躍한 名唱이며, 8名槍 中의 한 사람인 모흥갑 이 《赤壁歌》로 有名하였다는 點으로 보아, 1810年 以前부터 판소리로 불려 왔다고 推定된다. 中國 代의 小說 《 三國志演義 》의 赤壁大戰에서 曹操 가 크게 敗하는 대목이 그 內容이다. 內容은 韓國人의 情緖에 맞게 創作 또는 修正된 部分도 많다. 特히 本來 英雄譚에 가까운 赤壁大戰 이야기를 軍士들의 立場에서 支配層을 嘲弄하기도 하는 等 그 觀點이 相當部分 改作되어 있는 作品이다. 主로 兩班層이 많이 듣고 찾았으며, 前近代에는 《赤壁歌》의 陵/不能 如何에 따라 소리꾼에 對한 待接이 달라졌다고 한다. [1]

構成 [ 編輯 ]

① 超앞(廳-初費두) ② 三顧草廬(三顧草廬) [2] ③ 朴網派 싸움 或은 장판교 싸움 ④ 共鳴이 吳나라에 들어가 活躍하는 대목 [3] ⑤ 軍事설움타령 [4] ⑥ 위진 軍事 奮發 ⑦ 公明氣風(孔明祈風) ⑧ 자룡彈弓(子龍彈弓) ⑨ 오·韓 양진 軍事 奮發 ⑩ 赤壁大戰(赤壁大戰) ⑪ 새타령 ⑫ 曹操 敗走 ⑬ 장승타령 ⑭ 華容道 伏兵 ⑮ 曹操 生還(~더질더질)

音樂的 特徵과 눈대목 [ 編輯 ]

赤壁歌는 基本的으로 男性的인 社說과 男性的인 聲音을 主로 使用한다. 高弟(古制)일수록 羽調(羽調)를 主로 使用하며 平調(平趙)와 界面調(界面調)는 極히 一部에 使用할 뿐 거의 使用하지 않는다. 또한 설렁制 와 같이 高音과 좋은 聲量을 必要로 하는 唱法을 많이 驅使하는 境遇도 대단히 많다. 音樂的으로 뛰어나 '눈대목'으로 分類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三顧草廬 (羽調-진양)
  • 父母설움 (界面調-진양)
  • 妻子설움 (界面調-중중모리)
  • 아내설움 (界面調-중모리)
  • 公明氣風 (羽調-자진모리)
  • 자룡彈弓 (羽調-자진모리)
  • 赤壁大戰 (羽調, 號令調-자진모리)
  • 새타령 (界面調-중모리)
  • 장승타령 (界面調-중중모리)
  • 軍事占考 (界面調·京드름)

《赤壁歌》의 名唱과 戰勝 [ 編輯 ]

前記한 모흥갑 以外에도 송흥록, 방만춘, 주덕기, 박유전, 박만순, 정춘풍, 김창록, 서성관, 이창운, 李捺致 等이 赤壁歌를 잘했다. 이 가운데에 방만춘은 赤壁大戰을 더늠으로 하였고, 박만순은 華容道와 장판교 싸움, 朱德基는 자룡彈弓을, 정춘풍은 公明 氣風 가운데 祝文을, 김창록은 軍事설움, 李捺致는 새타령을 더늠으로 하거나 새로 짜 넣었다고 한다. 近代에는 宋萬甲, 李東伯, 金昌龍, 정정렬, 조학진, 박기홍이 모두 赤壁歌를 잘했고, 宋萬甲의 弟子인 장판개가 또한 赤壁歌를 잘했는데, 赤壁歌를 한番 하면 千張의 먼지가 떨어질 만큼 豐富한 聲量을 자랑하였다 한다. 이들 以後에는 유성준에게 배운 임방울, 이동백과 유성준에게서 배운 정광수, 유성준과 정정렬에게서 배운 김연수, 宋萬甲에게 배운 박봉술, 조학진에게 배운 박동진이 赤壁歌의 名唱으로 有名하였으며, 김채만 바디를 이은 한승호나 정응민 바디를 이은 정권진 또한 赤壁歌를 잘했다.

現在 赤壁歌의 全판은 다음과 같이 傳承되고 있다. (津한 글씨: 赤壁歌 藝能保有者)

  • 박봉술 바디 : 宋萬甲 → 박봉래 → 박봉술 송순섭 , 김일구 , 안숙선 - 송순섭, 김일구 重要無形文化財 指定
  • 박동진 바디 : 정춘풍 → 박만순 → 박기홍 → 조학진 → 박동진 강정자 , 김양숙 - 강정자 國家無形文化財 名譽保有者 指定
  • 김채만 바디 : 李捺致 → 김채만 → 박동실 → 한승호 → 戰勝者 없음
  • 유성준 바디 : 유성준, 이동백 → 정광수 → 戰勝者 不確實
  • 김연수 바디 : 정정렬, 유성준 → 김연수 → 오정숙 , 이일주
  • 정응민 바디 : 박유전 → 정재근 → 정응민 → 정권진 → 윤진철 - 윤진철 國家無形文化財 指定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過去에는 소리 광대가 소리하러 들어가면 "赤壁歌 할줄 아십니까?"라고 물어서 萬一 못한다고 하면 "春香歌 할줄 아시오?" 하고, 亦是 못한다고 하면 "沈淸歌 할줄 아냐?"라고 對話의 格을 낮추었다고 한다. - 名唱 박동진 證言.
  2. 固形(古形)의 《赤壁歌》 창본에는 超앞과 三顧草廬가 모두 없다.(강도근, 유성준-정광수 系統) 또 後代의 창본 가운데 이 대목이 있는 境遇에도 超앞에 桃園結義와 같은 場面을 揷入하는 境遇(박동진, 박봉술, 한승호)가 있고 그냥 아니리로 處理하고 바로 三顧草廬 대목으로 들어가는 境遇(정권진, 김연수)도 있어 그 傳承이 매우 다양하다.
  3. 이 대목은 現在 傳承되고 있는 바디마다 모두 構成이 다르다. 박동진 系統과 정권진 系統은 舌戰群有(說戰群儒)와 注油激動(周瑜激動)은 勿論 公明次戰(孔明借箭)까지 모두 부르고 있으나, 박봉술 系統과 한승호 系統은 "舌戰 群有가 분분헐제, …… 辱脫公明 가소롭다. 三逸爲한 十萬全을 一夜霧中(一夜霧中) 借得(借得)하니……."와 같이 疏略하게 言及만 하는 程度에서 끝내고 있다.
  4. 바디마다 多少 差異는 있으나 基本的으로 "古堂賞 鶴髮兩親"으로 始作하는 父母설움(界面調-진양)과 子息생각(界面調-중중모리), 아내생각(界面調-중모리)는 그 骨格이 거의 類似하며, 여기에 初夜생각, 노랑돈 설움이 敷衍되기도 한다.(정광수, 정권진, 金延壽, 박동진)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