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委員 (1794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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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國圖志》

委員 ( 中國語 : 魏源 , :讓渡(良圖), :묵심(默深), 1794年 ~ 1857年 )은 中國 淸代 後期의 思想家이자 學者이다.

生涯 [ 編輯 ]

湖南省 소양시 素養縣 出身이다. 1822年에 巨人(擧人)李 되고, 1844年에는 進士가 되었다. 이 期間에 延納(捐納) 賣官(買官)으로 內閣中서(內閣中書)의 官職에 就任한 以外는, 大體로 장쑤省 (江蘇省)에서 地方官을 歷任하여 民衆의 生活에 密着된 實際的인 政治를 行하였으나 地主(知州)로 끝났다. 靑年 時代에는 龔自珍 과 함께 유봉록 (劉逢祿)에게서 公羊學 을 受學하고, 다시 强小布政司(江蘇布政使) 下掌令(賀長齡)에게 招請되어 〈黃조경세門便(皇朝經世文篇)〉의 編輯을 實質的으로 主宰하였고, 이것들을 통하여 現實 政治·經濟·社會에 對한 깊은 關心과 客觀的 認識이 뒷받침된 學問의 方法論을 確立했다. 阿片 戰爭 때 兩强總督(兩江總督)인 유겸(裕謙) 밑에서 英國軍과 싸웠다. 그 經驗에 따라 그는 前後에 《海國圖志(海國圖志)》, 《聖武記(聖武記)》를 咀嚼하여 中國의 民族的, 封建的 危機를 呼訴하면서 革新을 主張하였다. 今文學(今文學)의 立場에서 《 市警 (詩經)》·《 書經 (書經)》에 對한 硏究를 勸奬하고, 《서고미(書古微)》를 咀嚼하여 公羊學을 發展시켰다. 그 外에 西北지리(西北地理)·佛敎의 硏究에도 關心을 가졌다. 著書는 前記한 것 外에 《고미당내집(古微堂內集)》, 《桐外執(同外集)》, 《童詩集(同詩集)》, 《元使臣便(元史新篇)》 等 多數가 있다.

海國圖志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