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재 이단하 內外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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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재 이단하 內外 옷
(畏齋 李端夏 內外 옷)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國家民俗文化財
種目 國家民俗文化財 第4號
( 1965年 10月 12日 指定)
數量 1襲(6點)
時代 朝鮮時代
所有 蛜蝛
住所 江原特別自治道 旌善郡  
情報 文化財廳 國家文化遺産포털 情報

외재 이단하 內外 옷 (畏齋 李端夏 內外 옷)은 江原特別自治道 旌善郡 에 있는, 朝鮮 中期의 文臣 이단하(1625~1689)와 그의 夫人이 입었던 服飾 遺物이다. 1965年 10月 12日 大韓民國의 國家民俗文化財 第4號로 指定되었다.

槪要 [ 編輯 ]

朝鮮 中期의 文臣 이단하(1625~1689)와 그의 夫人이 입었던 옷과 머리 裝飾品들이다. 외재 李端夏는 宋時烈의 弟子로 顯宗 3年(1662) 文科에 及第하였고 肅宗 때에는 大提學에 올랐으며 右議政을 거쳐 左議政까지 지냈던 人物이다. 在職할 때에는 청렴하기로 이름이 났고 죽은 뒤에는 그의 學問과 忠誠心을 높이 여겨 나라에서 ‘문충(文忠)’이란 諡號를 내렸다.

이 遺物들은 左議政 時節 외재 李端夏가 입었다고 傳해지는 중치막 1點과 그의 夫人이 입었던 大禮服 1點, 누비저고리 1點, 그리고 머리 裝飾品인 烽臺 1點, 다리 1點, 도투락댕기 1點, 龍潛 1點 等 모두 7點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치막은 士大夫들이 官服 속에 입거나 겉옷으로 平素에 입는 옷인 創意의 一種으로, 只今의 두루마기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同情이 없고 소매가 넓고 길며 옆이 터져있는 흰 모시로 만든 겉옷이다.

大禮服은 綠色으로, 어깨와 밑部分에 金실로 수놓은 넓은 단이 있고 안쪽은 붉은色으로 線이 둘러져 있다. 뒤가 앞보다 길고 소매가 길고 넓으며, 소매 끝에는 洪(紅)·黃(黃)色의 줄과 덧댄 小賣人 흰色의 汗衫이 붙어 있다. 大禮服을 입을 때 큰 머리를 하기 위해 使用했던 것으로 보이는 103cm나 되는 假髮과 紫朱色 바탕에 金箔을 입힌 도투락댕기, 桐(銅)에 金을 입힌 龍무늬가 있는 비녀, 그리고 붉은色 바탕에 鳳凰무늬를 金箔한 烽臺 등은 함께 使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外 누비저고리는 防寒用으로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服飾은 時代에 따라 그 樣式이 달라지는데 이 遺物은 時代와 着用者를 알 수 있는 것으로, 朝鮮 中期의 複式 形態를 硏究하는데 重要한 資料이다.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