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藝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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藝脈 (濊貊)은 韓半島 北部와 滿洲 에 살던 古代 集團으로, 오늘날 大多數의 學者들이 韓民族 의 祖上들로 看做한다. [1] [2] [3] [4] 그러나 如前히 이에 關한 다양한 見解들도 提示된다.

예(濊)와 맥(貊)을 갈라 보는 見解에서는 濊族은 搖動 요서 에 걸쳐 있었고 貊族은 그 西쪽에 分布하다가 古朝鮮 末期에 서로 합쳤다고 본다. 藝脈을 單一種族으로 보는 見解로 藝脈은 고조선의 한 構成部分이었던 種族으로 古朝鮮 中心勢力이었다고 본다. [5]

歷史 [ 編輯 ]

藝脈은 맥(貊·?) 또는 예(濊·穢·?)로도 불렸는데, 西쪽으로는 董狐 (東胡), 東쪽으로는 肅愼 (肅愼)과 接해 있었다.

藝脈은 紀元前 2~3世紀 頃부터 쑹화江 , 鴨綠江 流域과 東海岸 一帶( 韓半島 平安道 · 咸鏡道 · 江原道 , 中國의 랴오닝 省 지린 省 )에 걸쳐 定着하며 活動한 民族이다. 扶餘 · 高句麗 · 沃沮 · 東濊 等으로 부르는 여러 族屬들은 모두 藝脈에 包括되며, 여기에 扶餘 의 한 갈래로 漢江 流域에 자리잡고 커진 百濟 亦是 예맥족의 나라이다.

三國志 》〈 魏書 〉「동이전」에 따르면 濊族은 虎狼이에 祭를 지냈다는 記錄이 있는데, 郭璞의 《 爾雅 (爾雅)》, 《 日本書紀 》 等을 根據로 '맥(貊)'李 곰을 의미했고 예족과 貊族의 關係가 檀君神話 에 反映되었다는 主張이 있다. [6] 이로부터 檀君神話(檀君神話)에는 하늘과 太陽을 崇拜하는 薦新族(天神族)李 곰을 토템 으로 하는 貊族(貊族)과 虎狼이를 토템으로 하는 濊族(濊族)을 平定하고 服屬시키는 事實을 說話로 傳하는 神話 로 남았다고 여긴다. [5]

다만 檀君王儉이 最初로 文獻上 登場은 13世紀 末《三國遺事》이고, 一然이 三國遺事에서 引用한 文獻 《고기(古記)》는 現傳하지 않는다. 甚至於 交叉檢證上 連帶도 맞지 않다. 1145年 著述한《삼국사기》에 平壤의 元來 主人인 先人王儉(仙人王儉)을 言及하므로 적어도 高麗 中期에 神話의 構成이 있었지만, 이 때에 '檀君' 이름은 분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新羅 統一 以後 檀君 信仰의 中心地였던 平壤의 狀況을 現在에 把握하지 못하므로이전 時代의 神話를 傳承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檀君'이라는 이름을 비롯하여, 神話의 全體 構想은 《三國遺事 를 썼던 時期가 지난 13~14世紀 以後의 일이다.

評價 [ 編輯 ]

大韓民國 學界에서는 濊貊이 例와 脈으로 區分되지만 서로 다른 系統이 아닌 하나의 系統이며, 다만 細部的으로 갈라진 갈래로 보는 見解가 一般的이다. 卽, 例와 脈은 社會政治的으로 區分되지만 種族上으로는 거의 같았다고 여긴다.

藝脈 內部에서 여러 集團들이 競爭하며, 優勢한 集團이 周邊 勢力을 倂合하면서 漸次 勢를 키워나갔다. 檀君神話 에 傳하는 說話처럼 하늘과 太陽을 崇拜하는 薦新族(天神族)李 곰을 토템 으로 하는 貊族(貊族)과 虎狼이를 토템으로 하는 濊族(濊族)을 平定하고 服屬시켜 古朝鮮 을 構成하는 宗族集團을 이루었다. 以後 代表的 예맥족人 扶餘 에 그 勢力이 繼承되어 韓半島 중남부에 居住했던 土着民과 더불어 韓民族 形成의 根幹을 이루었다는 見解가 多數이다. [7]

近代 歷史學의 端初를 열었다고 評價받는 신채호 는 扶餘史를 注目하였다. 신채호 는 《 毒蛇新論 》에서 旣存의 記者-馬韓-新羅로 이어지는 正統論을 否定하고, 扶餘主族論(扶餘主族論)을 提起하였다. 신채호 는 民族史 가운데 가장 主動力을 지닌 種族이 ‘主族(主族)’으로 看做하며, 夫餘族 乙 主族으로, 周邊의 지나族 (支那族)  · 말갈족   · 흉노족   · 烏桓族   · 일본족 等은 客族(客族)으로 보았다. 이는 "4千年 民族史는 夫餘族 盛衰所長(盛衰消長)의 歷史"라는 한마디로 要約 可能하다.

扶餘 의 터전은 只今 中國 쑹화江 流域을 中心이었다. 그곳에서 東扶餘 가 나오고, 그 東扶餘에서 高句麗 의 支配層이 된 朱蒙 集團(桂婁部 王室)이 나왔다. 朱蒙 集團은 鴨綠江 一帶에 進出하여 卒本扶餘, 곧 高句麗 를 세웠다. 鴨綠江 流域에서 이미 살았던 住民들 一部(沸流·온조 集團)가 다시 南쪽으로 내려가 漢江 流域에서 百濟 를 세웠다. 따라서, 高句麗와 백제 모두 扶餘에서 分離하여 發展한 集團이 發達한 나라이다.

伽倻 가 있던 慶尙南道 地域에서도 靑銅 솥을 비롯해 北方 遊牧民族이나 扶餘 系統의 遺物들이 나온다. 이는 扶餘 사람들의 움직임이 韓半島 南東部까지 影響을 미쳤다는 證據이다. 게다가 高句麗 를 繼承한 渤海 時調 大祚榮 도 渤海는 “扶餘, 沃沮, 變한, 朝鮮의 땅과 바다 北쪽 여러 나라의 땅을 完全히 掌握했다.”고 하여 扶餘를 自身들의 오래 된 祖上 나라로 보았다. 中國 宋나라 때의 歷史冊 ‘武經總要’에서도 渤海가 “扶餘에서 떨어져 나온 集團으로 本來 예맥의 땅이었다.”고 하여 渤海가 高句麗와 백제처럼 扶餘에서 갈라져 發展하였다고 본다. [8]

論難 [ 編輯 ]

예·맥 또는 藝脈은 特히 高句麗 의 種族起源과 關聯하여 硏究 關心을 둔다. 이들의 關係에 다양한 見解들을 提起하나 現在로서는 定說이 없다. 高句麗 의 種族 起源에 對해서는 濊族설, 貊族설, 예맥족설, 예맥족에서의 分化설, 元來는 濊族인데 名稱上 貊族이라는 설, 高句麗 는 여러 種族이 結合된 나라이므로 地域에 따라 大水貊(大水貊)·小水貊(小水貊) 等 조금씩 다른 不足이 있었다는 見解 等 上程 可能性은 모두 學說로 提示하한다. [5] [9]

  • 朝鮮 정약용 은 脈은 種族 名稱, 例는 地域 또는 江의 이름이라고 보아 藝脈은 貊族의 아홉 갈래(九貊) 中의 하나를 指稱하였다고 하였다.
  • 中國 의 링春城(凌純聲)도 例는 예수(濊水)地域에 居住했던 貊族이라고 하여 丁若鏞과 同一하게 理解하였다.
  • 日本 微視나 쇼에이 는 先進(先秦)文獻에 보이는 脈은 北方族의 汎稱이며, 例는 진대(秦代)의 文獻에서 처음 보이는데 한대(漢代)에 汎稱되는 例는 高句麗·扶餘·東濊를 包括하는 民族名이라고 보았다. 藝脈이라는 呼稱은 現實的인 民族明과 古典的인 北方族에 對한 汎稱인 脈을 結合시켜 便宜的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하면서, 高句麗를 指稱한 脈은 民族名人 濊族 內의 特定한 部族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곧 韓代 以後의 脈은 例와 同一한 系統의 實體라고 본다.
  • 윤무병(尹武炳)은 藝脈이라는 名稱은 司馬遷 의『 詐欺 』에서부터 쓰였는데, 예족과 맥족을 합쳐 부르는 말이 아니라 藝脈은 貊族人 高句麗를 指稱하였고, 漢代 以後의 例와 맥(濊貊)은 同一系統 內에서 各各 區分 可能한 實體였다고 보았다.
  • 루이이푸(芮逸夫)는 韓民族을 藝脈과 한(韓)의 養鷄 構成 예맥족 中 濊族은 韓半島 中北部와 松花江·吉林·嫩江(嫩江)地域 等에 살았고, 貊族은 산동·要領·渤海灣 沿岸 等에 居住했으며, 居住地域에 따라 例와 脈이 區分되었다고 보았다.
  • 김정배(金貞培)도 예·맥·한은 同一系 族屬으로서 그 分布地域의 差異에 따라 區分한다고 보았다.
  • 理獄(李玉)은 貊族과 濊族은 元來 中國 山西省 (山西省)· 河北省 (河北省) 方面에 各各 居住하다가 漸次 東으로 移動했으며, 紀元前 3世紀 무렵 長春 農安 方面에 먼저 定着했던 濊族은 이어 移動해온 貊族에게 밀려 南으로 왔다가 古朝鮮 에 쫓겨 요동군(遼東郡)에 隸屬되어 예군(濊君) 南呂(南閭)의 集團이 되었다. 이 禮儀 一部가 貊族에 吸收되어 西紀前 2世紀頃 새로운 種族인 濊貊이 成立한 高句麗族(高句麗族)이라고 主張하였다.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Pai, Hyung Il (2000). 《Constructing "Korean" Origins: A Critical Review of Archaeology, Historiography, and Racial Myth in Korean State-formation Theories》 . 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86쪽. ISBN   9780674002449 . As the first "Koreans", the Yemaek are considered responsible for the formation of Tan'gun's kingdom of Kochoson  
  2. Xu, Stella Yingzi (2007). 《That Glorious Ancient History of Our Nation: The Contested Re-readings of "Korea" in Early Chinese Historical Records and Their Legacy on the Formation of Korean-ness》. Ann Arbor. 220쪽. ISBN   9780549440369 . ProQuest   304872860 . The majority of the Kija Choson and Wiman Choson people were Yemaek, the ancestors of the Korean people   |id= 에 templatestyles stripmarker가 있음(위치 1) ( 도움말 )
  3. Preucel, Robert; Mrozowski, Stephen; Nelson, Sarah (2010). 《Contemporary Archaeology in Theory: The New Pragmatism》 2板. Wiley-Blackwell. 218-221쪽.  
  4. Park, Kyeong-chul (December 2004). “History of Kogury? and China's Northeast Asian Project”.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 6 : 2-5.  
  5. 韓國民族文化大百科(한국학중앙연구원 編輯) 參照
  6. 《韓國史》 1卷, p.145 ~ 146
  7. 권재현 記者 (2005年 10月 10日). ““古朝鮮 建國當時 韓半島 北쪽에 韓族 살고 있었다”” . 東亞日報(네이버) . 2013年 7月 1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8. 임덕철 記者 (2004年 1月 14日). “東北平原 700年 支配한 ‘韓民族의 뿌리’” . 京鄕新聞(네이버) . 2013年 7月 1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9. 韓國고중세寺社田(2007年 嘉藍企劃 出版) 參照

參考 資料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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