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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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 (Ernst Friedrich "Fritz" Schumacher, 1911年 8月 16日 ~ 1977年 9月 4日)는 國際的으로 影響力 있는 英國의 經濟學者이다. 그는 獨逸에서 태어나 1930年 로드 奬學生으로 選拔되어 英國 옥스퍼드 뉴칼리지에서 經濟學을 工夫했으며, 스물두 살 때부터 美國 컬럼비아대학에서 經濟學을 講義했다. 巨大技術과 物質主義에 根源的 挑戰을 던지며, 人類의 '생각의 大轉換'을 이루어낸 極少數의 創造的 人物이다. E. F. 슈마허는 1911年 獨逸 본에서 태어나 第1次 世界 大戰과 大恐慌을 겪으며 窮乏한 幼年時節을 보냈다. 英國 옥스퍼드 大學에서 經濟學을 工夫하고 스물 두 살의 나이에 美國 콜롬비아 大學의 敎授가 되었다. 그러나 未來가 保障된 敎授職을 버리고 戰雲이 감돌던 獨逸로 歸國했다. 1934年 나치의 迫害를 避해 英國으로 避身했지만 敵國 國民이라는 理由로 收監되었다. 1945年 第2次 世界 大戰이 끝난 後 英國 政府의 要請으로 福祉政策의 基礎를 닦았으며, 世界 平和를 위해 提案한 金融制度는 그 有名한 '케인스 플랜'에 反映되었다. 1950年부터 20餘 年間 英國 國立石炭委員會 諮問을 맡으며 再生 不可能한 資源에 基盤한 西歐文明의 終焉을 豫告했지만 注目받지 못했다. 1955年 經濟 諮問官으로 버마를 訪問하면서 '佛敎經濟學'이라는 새로운 經濟哲學을 提示했다. 人道에서 悽慘한 貧困을 目擊하면서는 地域 規模에 알맞으며 使用하기 쉽고 生態的인 '中間技術' 槪念을 創造했다. 이는 機械中心에서 人間中心으로 나아가게 하는 實質的 代案으로 받아들여졌다. 1965年 '中間技術開發그룹'을 發足해 全 世界에 中間技術을 普及하고, 第3世界를 돌며 自給經濟를 支援했다. 1973年 첫 著書 『 작은 것이 아름답다 』를 出刊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單 한 文章은 한 時代의 象徵이 되어 퍼져나갔다.

實際 經驗이 없는 理論化에 不滿을 느낀 그는 여러 分野에 進出하여 企業家, 言論人, 經濟學者로 알려졌으며 戰爭 中에는 옥스퍼드에서 暫時 學業을 再開했다. 獨逸의 英國 占領 地域 統制委員會 經濟 諮問官, 英國 石炭公社 經濟 諮問官, 英國 土壤協會 議長, 스코드 바더 社 理事를 歷任했으며, 開發途上國을 위해 中間 技術 槪念을 創案하고 中間技術開發集團을 設立하여 議長으로 活動했다. 以後 農村 開發에 對한 그의 勸告案은 수많은 開發途上國 政府에서 注目받았으며 1974年에는 大英帝國 指導者 勳章(CBE)을 받았다.

現代 環境 運動史에서 最初의 全體主義的 思想家로 評價받는 슈마허는 매우 다양한 關心事를 하나의 틀 속에 버무릴 줄 아는 偉大한 經濟學者였다. 主要 著書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混沌으로부터의 逃避』, 『굿 워크』, 『經濟 成長의 根源』 等이 있다. 末年에는 人類의 未來를 위해 나무의 潛在力을 硏究했으나 1977年 講演 巡廻 途中 死亡하면서 그 思想은 結實을 맺지 못했다. 그가 生의 마지막에 우러러본 것은 한 그루의 나무였다. [1]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작은 것이 아름답다” . 2018年 2月 5日에 確認함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