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아일리아 에右度키兒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本文으로 移動

아일리아 에右度키兒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皇后 아일리아 誘導키아의 肖像

아일리아 에右度키兒 또는 아테나이스 (Aelia Eudocia, 401年 警 - 460年 )은 東로마 帝國 테오도시우스 2歲 의 아내로 아테네 出身의 皇后 였다.

에右도키아는 아테네의 大學敎授이자 소피스트 人 레온티우스라는 사람의 딸이었는데 一說에 따르면 아버지의 遺産을 오빠들이 나누어 주지 않는 바람에 아테네를 떠나 콘스탄티노폴리스 로 와서 皇帝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女는 아름다운 美貌와 헬레니즘 에 精通하고 세련되고 優雅한 그리스어 를 驅使했다. 皇宮에서 皇帝 테오도시우스의 누나인 풀케리아 에게 拔擢되어 基督敎 로 改宗하였고 이름을 아테나이스 에서 아일리아 리키니아 에右度키兒 로 바꾸고 421年 6月 7日 테오도시우스와 結婚하였다.

이듬해 皇帝와 그女는 리키니아 에右毒시아 라는 딸을 낳았고 423年 아우구스打( Augusta ), 卽, 皇后의 地位를 갖게 되었다. 媤누이인 풀케리아는 誘導키아에게 反感을 갖第 되었고 그女의 헬레니즘的인 背景으로 인해 더욱 그女를 미워하게 되었다. 그女는 皇宮에 그리스的인 雰圍氣를 많이 가져왔고 東로마 帝國이 그리스와 融合되는 데 많은 影響을 끼쳤다.

438年 부터 그女는 예루살렘 으로 巡禮旅行을 떠났고 안티오키아 를 訪問했을 때는 그곳에 많이 남아있은 헬레니즘의 歷史와 文化를 讚揚하는 演說을 했다. 예루살렘에서는 性 스테파노 의 遺骨과 聖 베드로 헤로데 아그리파 1歲 에게 監禁되었을 때 묶였던 사슬 等 많은 城遺物을 가져왔다.

예루살렘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와서 곧 그女는 皇帝와 사이가 나빠졌다. 6世紀 의 歷史家인 요한 말랄라스는 皇宮의 집社長人 파울리누스와의 姦通을 疑心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에右도키아를 미워하던 皇帝의 누나 풀케리兒의 陰謀때문인 것으로 推定된다. 에右도키아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고 皇帝는 사람을 보내어 皇后의 司祭와 報祭를 죽였다. 皇后는 餘生을 예루살렘에서 보내다가 그곳에서 쓸쓸히 죽었다.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