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熟議 鄭氏 (宣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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熟議 鄭氏
淑儀 鄭氏
朝鮮 宣祖의 後宮
身上情報
出生日 1564年
死亡日 1580年 11月 3日 (陰曆)
家門 東來 鄭氏
父親 정순희
母親 해평 尹氏
配偶者 宣祖

熟議 鄭氏 (淑儀 鄭氏, 1564年 ~ 1580年 陰曆 11月 3日 )는 朝鮮 宣祖 의 後宮이다.

生涯 [ 編輯 ]

出生과 入宮 [ 編輯 ]

本貫은 東萊 이며, 1564年 (明宗 19年) 아버지 정순희와 어머니 해평 尹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祖父인 정한룡은 정광보 의 아들이며 中宗 臺에 領議政을 지낸 정광필 의 兄이기도 하다. 外家로는 윤두수 윤근수 가 熟議 鄭氏의 外叔父들이다.

士大夫家의 女息으로 1580年 (宣祖 13年) 5月 26日, 民事噂議 딸 閔氏( 正賓 閔氏 ), 홍여겸의 딸 洪氏( 正賓 洪氏 )와 함께 後宮으로 揀擇되었다. 鄭氏는 種2品 熟議(淑儀)에 봉해져 어의동(於義洞)에 있는 宮으로 入宮하였다. [1]

死亡 [ 編輯 ]

先祖修正實錄 》의 記錄에 依하면 하지만 入宮한지 여섯달 지난 11月 1日, 親庭에서 出産 後에 死亡하였다. [2] 宣祖 는 以後 後宮이 解散에 臨迫할 時에 親庭이 아닌 宮闕 안에서 出産하도록 命하였다. 宣祖實錄과 熟議 鄭氏의 墓誌銘에는 11月 3日에 死亡하였다고 記錄되어 있다. [3] 宣祖는 熟議 鄭氏가 死亡하였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 마음이 便치 않았다고 한다. [4]

 
熟議 鄭氏(淑儀 鄭氏)가 拙했다.
조종조에는 大闕의 法이 너무 嚴하여 後宮이 孕胎를 하면 親庭집으로 보내어 分娩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金氏(金氏)와 鄭氏가 잇달아 産苦病(産苦病)으로 죽자,
上( 宣祖 )이 治療를 잘못하여 그런 것인가 疑心하였다.
그래서 이때부터 後宮이 孕胎하면 大闕 안에서 解散을 기다리게 하는 法令을 만들었다.

? 《 先祖修正實錄 》 14卷,
宣祖 13年(1580年 名 萬曆(萬曆) 8年) 11月 1日 (丁卯)

家族 關係 [ 編輯 ]

  • 祖父 : 정한룡(鄭漢龍) - 정광보 (鄭光輔)의 아들
  • 조某 : 文化 류氏 (文化 柳氏) - 류계金(柳繼金)의 딸
    • 아버지  : 정순희(鄭純禧)
  • 外祖父 : 潤邊 (尹?, 1493~1549)
  • 外祖母 : 팔거 玄氏 (八? 玄氏, ?~1544) - 現允命(玄允明)의 딸

各州 [ 編輯 ]

  1. 宣祖實錄 》 14卷, 宣祖 13年(1580年 名 萬曆(萬曆) 8年) 5月 26日 (甲午)
    熟議를 揀擇하다
  2. 先祖修正實錄 》 14卷, 宣祖 13年(1580年 名 萬曆(萬曆) 8年) 11月 1日 (丁卯)
    熟議 鄭氏의 졸기
  3. 《熟議鄭氏墓誌銘 (淑儀鄭氏墓誌銘)
    ··· 11月 3日 記事일에 졸하니 17歲였다. (中略)
  4. 석담日記 》, 栗谷 李珥
    11月. 熟議 鄭氏(淑儀 鄭氏)가 죽었다.

    記事일에 賃金이 便치 않으시니, 鄭氏의 죽음을 듣고 놀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