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文氏
(淑儀 文氏,
1426年
~
1508年
)는
文宗
의
後宮
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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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貫은
남평
이다. 曾祖父는 贊成事
문달한
(文達漢), 祖父는 判中樞院事
문효종
(文孝宗), 아버지는 判通禮文士
文民
(文敏)이다. 17歲 때인 1442年(世宗 24) 世子(
文宗
)의 後宮(承徽)이 되었으며, 文宗이 죽은 後 世祖 때 所用, 死亡 後 明宗 元年 淑儀로 乘車하였다. 後嗣없이 1508年(中宗3年) 83歲로 죽었으며, 墓는
仁川廣域市
西區
심곡동에 있다. 숙의 文氏 墓에서는 墓誌銘이 出土되었는데, 白瓷에 鐵分 成分의 顔料로 글씨를 쓴 이 墓誌銘은 가로 16.5cm, 세로 25.3cm, 두께 2.2cm 크기로, 現在 仁川市立博物館에 所藏되어 있다.
一部에서 文氏의 아버지를 "文民地(文敏之)"라고 하는데
[1]
, 《
朝鮮王朝實錄
》의 숙의 文氏 冊封 記事나
문효종
의 졸기 等 當時에 쓰여진 여러 記錄에는
文民
(文敏)이라고 적고 있다
[2]
[3]
.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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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出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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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한준 (2012年 3月 16日).
“西歐의 人物 / 熟議文氏(淑儀文氏)”
. 인천일보
. 2012年 7月 21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 ↑
《朝鮮王朝實錄》世宗 96卷, 24年(1442 壬戌 / 名 正統(正統) 7年) 6月 26日(乙卯) 1番째記事
- ↑
《朝鮮王朝實錄》世宗 104卷, 26年(1444 甲子 / 名 正統(正統) 9年) 6月 11日(己丑) 2番째記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