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준
(徐錫俊,
1938年
9月 24日
~
1983年
10月 9日
)은
大韓民國
의 官僚·行政人이다.
1962年
3月
經濟企劃院
事務官이 되고 1980年 經濟企劃院 次官, 商工部長官 等을 歷任했으며
1983年
아웅산 墓所 爆彈테러 事件
으로 死亡했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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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慶尙北道
星州郡
出生으로
星州高等學校
2學年 在學 中 檢定考試를 거쳐
서울大學校
外交學科에 入學해 1960年에 卒業하였다. 1964年부터 2年間 AID奬學金을 받아 美國
밴더빌트 大學校
大學院 經濟學科에서 修學하였다. 大學을 卒業하기 前해인 1959年 高等考試 行政科에 合格하고, 1962年 3月 經濟企劃院
事務官
을 始作으로 經濟官僚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主로 經濟企劃院에 勤務하면서 1967年 物價政策課長, 1969年 物價政策局長, 1973年 經濟企劃局長, 1974年 次官補, 1977年 次官(1980年에 다시 次官)을 歷任하는 等 重要한 職位를 두루 거쳤다. 그러면서 物價政策의 轉機를 마련하였다. 從來의 個別品目을 對象으로 價格을 안정시키는 物價政策에서 果敢하게 脫皮하여, 綜合的인 物價需給對策으로 物價安定을 꾀하는 合理的인 物價政策을 導入하였다. 이 밖에도 1973年 重化學工業推進委員會 企劃團副團長, 靑瓦臺 經濟制1首席祕書官, 1979年 12月 國務總理室 行政調整室長, 1980年 5月 經濟企劃院 次官을 거쳐 1980年 ∼ 1982年 商工部長官, 1982年
韓國開發硏究院
諮問委員을 歷任하였다. 商工部長官으로 在職하던 時節에는 重化學工業 投資調整을 마무리하고, 輸出 200億달러의 實績을 올리기도 하였다.
1983年 暫時 美國
하와이 大學校
東西文化센터에 가 있다가 副總理 兼 經濟企劃院長官에 拔擢되어 45歲의 나이로 最年少 副總理가 됐다. 就任한 지 3個月 만인 1983年 10月, 當時의
全斗煥
大統領을 遂行하여 17泊 18日間의
西南아시아
·
太平洋
6個國 巡訪길에 나섰다가 10月 9日
미얀마
의 數도
양곤시
內 아웅산墓所에서 北韓의 工作員이 裝置한 爆彈이
爆發
하여 殉國하였다.
紅條勤政勳章(紅條勤政勳章), 自由中國 一等京城勳章(一等景星勳章), 벨기에 大十字勳章(大十字勳章), 룩셈부르크 大十字勳章을 받았다.
學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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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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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12回
高等考試 行政과
合格
- 經濟企劃院 物價政策局長
- 經濟企劃院 經濟企劃局長
- 經濟企劃院 次官補
- 經濟企劃院 次官
- 行政調整室長
- 重化學工業推進團 副團長
- 商工部 長官
- 副總理 兼 經濟企劃院 長官
家族 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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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否認 : 유수경(兪水敬,
국민대학교
服飾學科 敎授)
- 딸 : 서이영 (1968年 ~ 1995年 6月) -
삼풍백화점
崩壞로 死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