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湖南線
은
湖南線
을 背景으로 한
박춘석
作曲, 손로원 作詞로
손인호
가 부른 노래이다. 追加로 後날 이 노래에서 着眼하여
김수희
의 노래 '
南行列車
'가 나왔다.
이 노래를 作曲할 때 樂譜를 歌手
손인호
에게 주고나서 아무런 反應이 없자 가져갔더니 그 뒤 作曲家 박춘석이 映畫錄音을 하다가 時間을 내어 그동안 받아온 新曲들을 錄音할 때 손인호가 박춘석에게 "先生님 지난週에 주셨던 '
비 내리는 湖南線
' 樂譜 가지고 계십니까? 그거 오늘 錄音 안하나요?" 하고 물어보니 錄音하는 途中 伴奏하던 오아시스 레코드 管絃樂團의 기타演奏者가 마지막에 음 하나를 틀렸는데도 그냥 發賣되었다. 이 曲이 히트할 줄 몰랐던 것이라는 後日談이 있다.
家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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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이 메인 離別歌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 내리는 湖南線에 헤어지던 그 人士가 野俗도 하더란다
- 다시 못 올 그 날짜를 믿어야 옳으냐 속는 줄을 알면서도 속아야 옳으냐 罪도 많은 靑春이냐 비 내리는 湖南線에 지나가는 列車마다 怨讐와 같더란다
政治的 影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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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曲家 박춘석은 平生 政治와는 無關한 삶을 살아왔지만 이 노래로 한동안 警察에 召喚당하는 等의 苦楚를 겪었다. 內務部 治安局은 이 노래가
신익희
當時 민주당 候補의 別世를 哀悼하는 뜻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歌詞를
신익희
의 未亡人이 붙이지 않았느냐고 執拗하게 質問하였고 또 이 노래가
民主黨
의 擔架처럼 불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調査 結果 이 曲은 신익희가 他界하기 3個月 前에 만들어졌다는 事實이 드러나 풀려났지만 作詞者인 손로院은 괴로움을 많이 當했다.
[1]
[2]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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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康俊晩 (2004年). 《韓國現代史散策 1950年代篇 3卷》. 人物과사상사. 39쪽쪽.
- ↑
박춘석. “트로트에 실어본 서울 엘레지”. 《월간조선》. 1994年3月: 534쪽.